한문 번역학교에서 맹자만 읊고 있다가, 이런 ‘근대성 담론’을 만나게 되는 경험도 흥미롭네요.

 이런 낯선 마주침! 좋습니다

맹자의 땀.......저자가 가설로 내세우는 개념들이나 논의를 펼쳐가는 것으로 봐서 페르낭 브로델을 거칠게나마 정리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여 -그의 주저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읽는 것이 먼저이겠으나 아쉬운대로 그의 강연집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브로델, 김홍식 옮김, 갈라파고스)를 한 번 훑어 봤습니다.

헌데 정리하려고 하니 영 쉽지않네요. 워낙 명확한 개념정의를 내리지 않고, 스스로도 정의는 불필요하고, 해롭기(?)까지 하다고 말하는 걸 보면 딱히 제 문제만은 아닌듯......

역시 물질문명.......을 꼼꼼히 읽어봐야 뭔가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하네요.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쉬우니 눈에 띄는 부분만 인용하고, 생각거리들을 짤막하게 적어 봅니다 

 

 

 

-수백 년 전의 과거는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현재로 흘러옵니다. 마치 아마존 강이 엄청난 물줄기를 토사에 실어 대서양으로 쏟아내는 모습과 비슷하지요

 

-화폐와 도시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일상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아주 최근에 등장한 근대성의 뿌리 깊은 요소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화폐는 아주 오래전에 발명되었습니다. 화폐를 교환이 빠르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도구라고 폭넓게 이해할 때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교환이 없다면 사회도 있을 수 없습니다. 도시를 두고 보자면, 이 또한 선사 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입니다. 화폐와 도시는 수백 년에 걸쳐 가장 일상적인 생활의 뼈대를 이루게 된 구조물입니다. 구조물인 동시에 변화에 적응할 뿐 아니라 변화를 불러오는 승수(乘數)의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도시와 화폐가 근대성을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라는 것은 사전적인 관념을 많이 품지 않은 채 묘사하고, 단순히 관찰하고, 분류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닐까요? 그렇게 들여다보고 또 보여주는 것이 역사가가 해야 할 일의 절반일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역사가의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지요

 

-자본주의라는 명칭이 옳든 그르든 간에, 그러한 실재는 화려하고 섬세하지만 비좁은 층위에 속해 있었고, 경제생활 전체를 장악하지는 못했습니다. 즉 자신의 고유한 요소들을 스스로 번식해가는 독자적인 ‘생산양식’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아주 먼 과거라고 해도 현재와 완벽하게 단절될 수는 없습니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절대적인 단절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달리 말해, 과거의 때가 묻지 않은 현재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삶으로 연장되고 또 누적됩니다........이처럼 항상 다시 묻게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재와 과거의 변증법이야말로 역사가 존재해야 할 이유이고, 역사의 핵심일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긴 시간을 두고 순환(콩종크튀르)’하는 흐름을 타고 자기 존재를 유지해 갑니다. 오늘날에도 자본주의가 기염을 토하는 힘 중의 하나는 쉽게 적응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구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둘이 중세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같은 걸음으로 걸어왔기 때문이고, 자본주의를 경제가 발전하는 동력이라고 내세우거나 경제가 고도로 발전된 상태로 묘사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물질생활의 거대한 등판을 딛고 서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전체의 운동이며, 자본주의는 어떤 형태의 것이든 간에 우선은 그 밑에서 받쳐주는 경제를 바탕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근대국가는 자본주의를 만들어낸 모태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물려받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우호적일 때도 있었고, 적대적일 때도 있었습니다. 또 자본주의가 팽창하도록 내버려두는 경우도 있었지만, 머리를 드는 자본주의를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자본주의는 국가와 한 몸을 이룰 때에만, 즉 자본주의가 국가가 될 때에만 승리합니다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는 ‘밤의 손님’입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을 때 자본주의가 당도한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수직적 위계라는 문제는 자본주의 너머의 문제이고,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문제이며, 자본주의가 출현하기에 앞서 존재하며 자본주의를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비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수직적 위계는 철폐되지 않았습니다

 

-구르는 바퀴의 위아래가 뒤집어지듯이 세상은 변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관통하는 법칙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세상은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과 그에서 배제된 사람들로 나뉩니다. 세상의 구조적인 모습은 여전히 그렇습니다

 

-자본주의는 법률에 근거한 것이든 관행에 근거한 것이든 여전히 독점에 의존합니다

 

-자본주의란 것은 본질적으로 가장 높은 곳의 경제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적어도 그처럼 높은 곳에 올라서려는 경제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자본주의 는 그 밑에 두터운 층 두 개-물질생활과 시장경제-를 겹으로 깔고 앉아, 높은 수익이 나는 영역에서 서식하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를 최상층의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자본주의의 특징과 강점은 이 술수에서 저 술수로, 이러한 행태에서 저러한 행태로 변화하는 능력입니다.

 

-역사는 항상 새로 시작되며 흘러갑니다. 역사는 늘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내고 또 자신을 극복하면서 흘러갑니다

 

-최악의 오류는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이라고만 여기고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사회 질서를 이용해 생존하고, 애초부터 육중한 상대자였던 국가와 대등한 지위에서 맞서기도 하고 공모하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또 사회 구조를 지탱해주는 문화의 역할도 이용합니다. 왜냐하면 문화란 것이 서로 상충하는 조류로 나뉘고 불평등하게 분포하더라도, 종국적으로는 기존 질서를 떠받치는 것이 그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또한 여러 지배 계급과도 결탁합니다. 지배계급은 자본주의를 방어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게 되니까요

 

 

몇가지 짚어봐야 할 문제들

#자본주의의 본질은 독점이라고 보고, ‘시장경제=자본주의’라는 도식을 부정한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와는 달리 경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반反시장이다(anti-market)

#자본주의의 고유한 영역은 생산이 아니라 유통에 있다

#자본주의를 ‘생산양식’으로 보는 것을 거부한다. 즉 자본주의는 근대의 지배적 생산양식이 아니라 역사의 처음부터 있어왔던 “역사의 상수常數”라는 것.

#자본주의가 산업혁명을 통해 출현한 것이 아니라, 좁은 상층 영역에 머물러 있다가 이윤의 극대화가 유리해진 상황이 되자, 생산의 시장경제 영역으로 내려온 것 뿐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양식보다 위에 존재하면서 그것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최상층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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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고 출몰하는 자본주의!

이미 역사와 더불어 보편적 구조가 된 자본주의라면, 그래서 이 세계의 불평등 또한 계속될 것이고, 폐기 또한 불가능하다고 그가 말하는 것이라면, 그 절망속에서, 자본주의와 어떻게 함께 살아 낼 것인가를 한번 더 고민해 봐야할 것 같네요.

어쨌든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꼼꼼히 읽어봐야할까 봅니다. 그리고 근대성 문제를 언급하려면 일단 막스 베버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서구중심주의자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도 좀 의문스럽고.....김상준이라는 양반이 엄청난 과제를 안겨주네요. 대충 생각나는 대로 읽을거리들을 정리해 보고 마무리 합니다.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지중해의 기억’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경제와 사회’ ‘직업으로서의 학문’

김덕영 ‘막스 베버’

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으로’ ‘세계사의 구조’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폭력의 고고학’

주경철 ‘ 대항해시대’ ‘문명과 바다’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사회’ ‘열정으로서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