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필요해?

 

크세르크세스는 왜 그리스 정복에 실패했을까,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왜 순식간에 와해되었을까. 이 두 질문은 지난 학기에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으며 통치에 관해 떠올렸던 질문이었다. 당시에 찾았던 첫 번째 해답은 그들의 통치방식에 있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어마어마한 강대국의 왕이었음에도 작은 폴리스인 아테네와 스파르테를 끝끝내 정복하지 못했다. 그리스는 자유민으로 구성된 나름의 민주주의 사회였으나(물론 노예는 존재했지만) 페르시아는 노예와 주인의 관계가 주축이 되는 완벽한 신분사회였다. 따라서 크세르크세스가 정복지의 주민들에게 인자한 감정을 느꼈을 리는 만무했고, 그의 전쟁은 과시를 위한 정복전쟁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던 크세르크세스와는 달리 지성과 무력, 부하들을 사랑할 줄 아는 따듯한 인품을 겸비한 왕이었다. 그는 정복지와 자신의 문화를 융합할 정도의 포용력을 지니긴 했지만, 그곳 백성들의 삶을 고민할 새도 없이 끝없는 영토 확장에 몰입한다.

 

이번 학기에 사기를 읽으며 지난 학기에 떠올렸던 질문에 대답 한 가지를 추가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군자에게는 신하를 다루는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전경중완세가는 군자와 신하의 관계에 대한 사마천의 생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태공망에 의해 세워지고 춘추시대의 패자(覇者)로까지 성장했던 제나라는 신하인 전(田)씨들에 의해 패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희자기가 백성들에게 은덕을 베풀어 지지도가 높아질 때 안자는 경공에게 경고한다. 경공은 그들에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안자의 간언을 무시하고, 결국 전 씨들의 세력은 비대해져 강공을 내쫓고 상국 전화가 제후의 위치에 오르는 일까지 벌어진다. 사마천은 제나라에서 간언을 통해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는 신하와 군자 간의 도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통해 통치자에게 신하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논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나라의 공(公)혹은 왕들과 크세르크세스, 알렉산드로스에게 부족했던 2%는 ‘덕 있는 신하’였다. 그렇다면 전쟁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는 군자, 혹은 ‘리더’에게 어떤 신하가 필요했을까? 진(晉)나라가 조, 한, 위로 분열되면서 중국은 본격적으로 전국시대에 돌입했다. 나라들 간의 극심한 알력을 제압하고 전국을 제패하게 되는 나라는 진(秦)나라이다. 후에 진시황이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초석을 닦는 인물은 바로 효공이다. 효공은 군사적으로는 삼진三晉으로부터 하서를 되찾아 천하통일의 교두보를 세웠다. 또 시대의 개혁가인 상앙을 등용해 제도를 촘촘히 개편하여 진이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만약 상앙이 없었다면 진이 천하통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국가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상앙은 효공이나 손자, 오기와 마찬가지로 참으로 전국시대적인 인물이다. 상앙은 위나라에서 자신의 재능이 인정받지 못하자 진(秦)나라로 떠난다. 상앙은 제왕의 도보다 패자의 도에 감탄하는 효공을 성군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라고 평가한다. 사마천은 상앙에게도 비슷한 평가를 내린다. 사마천은 상앙에 대해 효공의 총애를 받던 경감을 이용해 몇 번이나 자신의 능력을 어필한 점이나, 관직에 오른 뒤 위나라 장군 앙을 속이는 등의 행동을 꼬집으며 굉장히 가증스러워한다. 상앙이 추진한 개혁에서는 그의 인품이 더욱 잘 드러난다. 그의 법은 백성들을 서로 감시하게 하고, 죄 지은 것을 알리지 않는다면 허리를 두 동강 내어버리고, 법령에 대해 칭찬을 해주었는데도 이러쿵저러쿵 토를 단다며 백성들을 변방으로 내쫓게 만든다. 나는 상군열전을 읽기 전까지는 상앙이 기득권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상군열전을 읽고 나니 그의 죽음은 각박한 인격이 부른 당연한 인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마천은 전국시대적인 인물들을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정말로 상앙을 잔인하고 편협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그는 그 시기의 진나라에 필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태자가 법을 어기자 가차 없이 처벌의 잣대를 들이밀 정도로 강단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효공과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몇 번이나 개혁을 주장한다. 그는 조세제도를 정비하여 제정을 튼튼하게 하고 정치제도와 토지를 정비하여 정돈된 국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진시황의 진나라가 금세 쇠한 것 역시 상앙의 이러한 개혁 때문이 아닐까? 상앙은 그의 방식대로 국가를 생각했다. 그는 전국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강대한 하나의 국가가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상앙이 가졌던 백성과 당장 행복을 나눌 수 없더라도 훌륭한 관료들이 완벽한 법과 풍속을 만들어 주면 언젠가는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엘리트 중심적인 가치관은 다른 인물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사보다는 병법가에 가까웠던 손자와 오기 역시 인품 자체가 뛰어난 인물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손자는 병법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궁녀의 목을 따버리고, 오기는 출세하기 위하여 아내를 죽이는 등 잔인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차가운 전국시대의 남자지만 ‘내 군인에게’ 만큼은 따듯하다. 군인과 그 외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이중 잣대는 그들이 천하통일을 위해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었는지 생각해보면 모순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사마천은 하나라, 은나라 시대를 가장 태평성대라고 여긴다. 사마천의 상앙을 향한 비난은 혼란을 전쟁으로 다스리고,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짓밟는 전국시대의 세태에 대한 비난이 아니었을까? 진시황의 진(秦)나라가 금방 무너진 이유는 그 나라가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처럼 끝없는 폭력과 정복을 통해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진(秦)나라를 막강하게 만들어준 상앙의 제도 역시 전쟁을 위한 국가가 되기에 아주 적합한 비정한 제도였다. 사마천은 유여의 생각처럼 ‘윗사람은 순박한 덕으로 아랫사람을 대하고 아랫사람은 충성으로 윗사람을 받들기 때문에 한 나라의 정치가 한 사람의 몸을 다스리는 것처럼 다스려진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원인은 무엇인지는 모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통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스리는 줄도 모르고 다스려지는 줄도 모르는 통치가 가장 이상적이다. 과연 왕은, ‘통치’ 자체는 정말 필요한 것일까? 아주 혼란한 시대에 우리를 이끌어 줄 수 있는 리더는 진정으로 필요한 것일까?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리더’나 ‘영웅’의 존재가 참 멋있고 존경스럽게 보인다. 얼마 전, 길슨생님께서 우리에게 과연 영웅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는 과제를 던져주셨다. 내 생각엔 영웅은 없는 게 가장 좋은 존재인 것 같다. 누구보다 훌륭한 누구는 없다는 스피노자의 생각처럼 각자의 탁월한 능력으로 동등하게 서로를 이끌어주는 풍경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풍경으로 생각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