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27 / 청지1학년 / 역사/ 사마천 - 사기 / 이나라

 

통치자의 덕목

 

춘추시대는 주나라를 중심으로 봉건제도가 이루어지는 철저한 신분제사회였다. 이때는 서로가 회의를 통해 조정하는 “회맹”의 시대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춘추시대를 지나 전국시대로 들어왔다. 이제는 명분, 의리 없이 강자들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시대, 전국 칠웅의 시대가 온 것이다. 초, 연, 제, 조, 위, 한의 일곱 제후국들은 서로가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한다. 지는 순간 자신들의 명예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군신관계가 어그러지고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통치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명예를 쫒아야 하는가?

제나라 위왕 9년 때 일이다. 그는 비방하는 말이 많은 즉묵(제나라 읍)의 대부와 칭찬하는 말이 많은 아읍의 대부에게 의외의 상벌을 준다. 즉묵의 대부에겐 만호의 식읍을 봉하고, 아읍의 대부에겐 삶아 죽이는 형벌을 처한 것. 이러한 의외의 형벌의 중요한 요소는 ‘명예’였다. 즉묵은 위왕의 측근들을 섬겨 명예를 구하지 아니하였고, 대부는 측근들에게 뇌물을 후하게 하여 명예를 구하려고 하여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

싸워서 이겨야 하는 시기, 그것이 바로 전국칠웅이다. 그래서 이때는 어떠한 현인보다 저명한 병법가가 더 눈에 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자의 후손 손빈, 그리고 위나라의 오기이다. 이 둘 모두 전투에서 훌륭한 작전을 피고 명예를 얻었지만 훗날 운명은 달라진다.

손빈은 제나라의 군사가 되어 욕심 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장군의 자리를 마다한다. 그리고 그의 훌륭한 계책으로 방연을 죽이고 위나라 군사를 전멸시킨다. 오기는 병졸 중 종기가 곪은 자가 있으면 제 입으로 고름을 빨아 주기도 하며 병졸들의 신임을 얻을뿐더러 용병에 능했다. 그의 현명함은 노나라에서 위나라로, 그리고 초나라까지 이를 수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명예를 얻기 위하여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명예에 대한 욕심이 많아 결국 화를 입게 된다. 손빈과 즉묵, 아읍과 오기는 어딘가 닮아 있다. 명예를 쫒았기에 명예를 잃었던 아읍과 오기. 그렇다면 통치자는 어떤 덕목을 실천해야 하는 것일까?

정치인 상앙은 진나라 효공 밑에서 법률을 제정하고 ‘안에선 농사 밖에선 싸움’을 하며 진나라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그의 법률은 어쩐지 불편하다. 한 마을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벌을 준다. 또 사람들의 덕 실천에 대하여 상과 벌을 주며 그들의 신체를 덕을 실천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는 위나라 공자 양에게 회담을 하자 말하며 뒤에서 음모를 저지른다. 그가 행한 병법도 무언가 비겁하다. 그에게선 ‘인정’이란 찾아 볼 수 없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 채워 나간다. 그의 욕망이 점점 비대해 짐으로써 더 각박해지고 몰인정해진다. 그에게선 더 이상 정치가가 아닌 ‘욕망’을 채우려는 욕심꾸러기의 면모만 보인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정치가는 정치와는 멀어져 백성을 안정시키지 못한다. 추기자는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안정시킨다는 것은 오음을 다스리는 이치와 같지 않습니까?”(p.625)라고 하였다. 어느새 정치가들에게서는 당연히 생각해야할 ‘백성’의 안정이 자연스럽게 배제되어있다. 타자에 대한 배려조차 보이지 않는다. 즉목처럼 명예에 눈이 멀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절제해가며 백성, 타자의 안락함을 행하게 하는 사람이 통치자의 면모를 갖춘 자이다. 왕혜왕과 보기(보물)을 논할 때 자신의 신하들을 얘기하고, 일찍이 즉묵과 아읍에게 상벌을 내렸던 위왕도 통치자의 면모를 일찍이 갖추고 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