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28/ 청년대중지성-역사/ 정건화

 

적국과의 공생

 

 춘추전국시대의 왕들은 전쟁이 아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들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주변국들을 항시 경계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나라만을 신경 쓰고 돌보는 정치를 펼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그들이 처한 시대의 특성상 그들에게 비폭력이나 민본주의를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처한 시대에 맞는 통치자로서의 덕은 무엇일까?


 『오태백세가, 초세가, 월왕구천세가의 주된 내용은 제후국들 간의 전쟁이다. 이러한 전쟁은 별다른 이유 없는 정복전쟁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원한을 갚는다는 명분하에 벌어진다. 오나라 왕 합려와 그의 아들 부차, 그리고 월왕 구천의 경우가 그렇다. 그들의 경우 서로의 복수는 또 다른 복수로 이어지며 복수의 굴레를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굴레에 의해 왕들과 그들의 국가는 평탄하지 못하게 된다. 구천이 복수에 완전히 성공한 듯 보여도 그가 복수라는 것에 압도되었다는 점에서 그 역시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범려가 구천에 대해서 즐거움은 같이할 수 없다”(p432)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사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원한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통치자로 하여금 원한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적국마저도 자신과 공생관계에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춘추시대의 국가들은 천하를 독자적으로 통치할 힘이 없었으므로 주변국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이렇게 주변국들의 존재가 필연적인 상황에서 한 국가의 힘은 주변국들과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초나라의 회왕이 진나라 장의의 말에 혹해 제나라와의 관계를 끊으려 하자 그의 신하 진진은 진나라가 왕을 중시하는 까닭은 왕이 제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며, “제나라와의 교류를 먼저 끊어 버린다면 초나라는 고립될 것”(p390)이라고 말한다. 또 세가와 본기의 곳곳에서 적국을 침략하고도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는 경우나 중이와 같은 장차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태자들을 타국에서 귀한 손님으로 받아들여 보호해 주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단순히 주변국과 도움을 주고받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초나라 경양왕이 주나라를 도모하려 하자 주나라 왕의 사신으로 온 무공은 초나라를 설득하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원래 호랑이는 고기에 비린내가 많고 자신을 보호하는 발톱과 이빨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호랑이를 사냥하려고 하오. 만약에 못 안에 사는 미록에게 호랑이 가죽을 씌우면, 미록을 사냥하는 사람은 호랑이를 잡는 것보다 만 배는 될 것이오.”(p407) 주변국과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그들 위에 군림하려고 할 때 그 나라는 커다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루고도 얼마 못가 멸망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므로 복수에 휩쓸리지 않는 통치자의 덕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적대적인 위치에 있는 국가조차도 멸망시켜버려야 할 완전한 적으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덕을 잘 실천한 왕은 초나라의 장왕이다. 장왕은 자신의 사신을 죽인 적국에 쳐들어갔다가도 그 나라의 통치자가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면 이 사람은 군자로구나!”하고 물러가곤 했다. 그는 속담에 소를 끌고 남으 밭을 지나가면, 밭주인이 그 소를 빼앗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남의 밭을 지나가면 죄를 짓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소를 빼앗으면 또한 지나친 것이 아닙니까?”(p360)라는 신숙시의 물음에 영향을 받아 복수가 아닌, ‘정의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벌였다. 자신의 적국일지라도 군자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면 그가 간섭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