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28 / 청지 1학년 / 역사 <사마천 - 사기> / 조희주

 

“좋소.”

 

오나라와 월나라의 군주였던 부차와 구천. 둘의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스려야 할 나라와 민중이 있는 한 나라의 왕이었고, 간언을 두려워하지 않는 충직한 신하도 곁에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하나의 결정적 차이 때문에 그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신하의 말에 “좋소.”라고 말하고 따를 수 있는 자세.

오나라 합려의 죽음 이후 왕위에 등극하게 된 부차가, 아버지 합려의 원한을 갚기 위해 월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 소문을 듣고 월나라의 왕, 구천은 그들이 준비를 끝마치기 전에 먼저 공격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충신 범려가 말렸지만 구천은 요지부동. “나는 이미 결정했소.” 결국 구천은 오나라보다 먼저 군사를 일으킨다. 하지만 결과는 범려의 염려대로 ‘행한다 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는’ 상태로 돌아왔다. 아니, 이득이 없는 상태보다 더 악화된 상태로 돌아왔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구천은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상황이 악화되자 그는 범려의 말을 따르지 않았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상황을 타파해나갈 수 있는 묘안에 대해 다시금 범려에게 묻는다. 그러자 범려는 왕 스스로가 볼모가 되어 오나라의 군주를 섬기라는 충격적인(자신의 군주에게 스스로 볼모가 되라고 하는 범려의 말은 내게 신선했다.) 대책을 내놓는다. 더 신선했던 것은 “좋소.”라는 구천의 반응. 아무리 상황이 벼락 끝까지 몰려있다 하더라도 한 나라의 왕이 그런 선택을 하긴 쉽지 않았을 터인데, 구천은 그런 자신을 꺾는다. 그렇게 월나라는 오나라에 머리를 조아리는 수모를 겪게 된다.

이러한 상황 중에 오나라에서는 ‘오자서’라는 자가 외로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월나라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그 용서는 다시 돌아와 오나라에 화를 끼칠 것이라고 부차에게 몇 차례 간언한다. 하지만 부차는 간신 백비의 설득에 넘어가며 오자서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결과적으로 오자서의 간언이 허공에서 사라지고 남은 것은 비극이었다. 오자서 앞으로 보내진 자결을 요구하는 왕의 검과 부차가 생전 마지막 순간에 한 후회의 말, 그리고 백비의 주살됨. 열린 귀를 가지지 못한 군주의 한계는 나라를 몰락으로 이끌었다. 반면 자신을 낮추고 백성들과 수고로움을 함께 나누는 삶에서부터 다시 나라를 꾸리기 시작한 구천은 끝내 제후의 우두머리로 인정받게 된다.

두 나라의 멸과 생을 서술한 이 역사에서 드러나는 가장 극명한 차이점은 두 왕의 태도에 있지 않나 싶다. 정치는 왕과 신하가 함께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범려의 말대로 “…, 신하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따름이다. 즉, 신하들의 말과 행동에 옳고 그름을 구별하여 받아드리는 것의 몫은 왕 자신에게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지인(知人)을 뜻한다. 사람을 알아보는 덕이 당시 권력의 멸과 생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사람을 알아보고, 그들을 믿는 힘. 상황에 맞게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겸손함. 그리고 경청과 받아드리는 자세. 왕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닐까? 구천의 “좋소.”라는 긍정에는 이러한 왕의 덕목들이 응집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