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받지 못한 ‘35년’

 

4월 4일 사람들로 붐비는 그리스 국회 맞은편에 있는 광장에서 70세 전직 약사가 권총으로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최근에 그리스에 닥친 경제 위기 때문에 “지난 35년간 연금을 부었지만 현 정부는 이 연금으로 생활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유서를 남기며 자살을 했다고 한다. 먼저 그리스에 상황을 잠시 살펴보자면 최근에 경제위기로 인해 그리스 정부는 모든 복지 예산, 임금이 삭감되었다. IMF, 세계은행등의 압력으로 연금지급액의 25%가 삭감되었다. 그리스는 복지 예산이 높은 국가는 아니었다. 복지예산이 한국, 미국보다는 높았지만 국민 전체의 20%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었으며 이 비율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스 복지의 문제점은 복지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분배가 문제였다. 그리스는 복지 사업에 대부분을 민영화 하였기 때문에 복지 사업에 국가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삐걱 거리면서 운영되던 복지 사업마저 이번에 엄청난 예산 삭감을 겪었다.

아무튼 이런 상황을 두고 국내에서는 여러 시선들이 있다. 먼저 가카(MB)께서는 이런 상황을 두고 보편적인 복지는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킨다며, 한국에 양극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 3의 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보 언론에서는 이것을 반박하며 이명박 정부와 보수 언론이 그리스 복지 제도의 ‘보편적 복지’만을 비판하고, 그리스 복지 제도의 시스템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리스에서는 보편적 복지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이 사건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77세 노인의 유언장이다. ‘먹을거리를 찾으려 쓰레기통을 뒤지기 전에 (자살 이외의)다른 존엄한 죽음을 택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35년간 연금을 부었고, 노년에 우아한(?) 삶을 꿈꾸었을 할아버지에게 무지막지한 연금 삭감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먹을 거리를 찾으려 쓰레기통을 뒤지기 전에 다른 존엄한 죽음을 택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말은 무척이나 가슴아픈 말이다.

복지 정책이라는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35년’간 세금을 내야 한다. 할아버지는 이제 35년의 보상을 받을 차례였지만, 더 이상 ‘국가’는 노인의 35년을 보상해주지 못한다. 권총 자살한 할아버지에게는 존엄한 죽음을 택할 다른 방법도, 다른 삶을 살아갈 방법도 없었다. 또 복지 정책이라는 것은 국가에게도 이득이다. 왜냐하면 복지 정책을 통해서 국가를 안정시키고,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의료, 교육, 주거 공간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게 되는 것이야말로 정치에는 이득이기 때문이다.(부정적인 뜻은 아니다.) ‘35년’을 보상해줄 것 같던 복지정책이 ‘35년’을 보상해주지 않았다. 복지라는 것이 이 할아버지를 나약하게 만들었고, 다른 죽음도, 다른 삶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 요인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편안한 노후가 붕괴되었을 때, 연금의 붕괴와 더불어 오는 경제적 궁핍을 할아버지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35년’에 대한 보상이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노후의 ‘삶’이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한 마디로 ‘삶’을 잃은 것이다. 지금 그리스에는 이처럼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에게 새로운 '삶'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35년'에 얽매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새로운 질문은 생기않고 뒤로 갈수록 우울하기만...rabbit%20(17).gifrabbit%20(17).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