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과의 전쟁

고소남 · 고소녀 전성시대

 

(지금보다) 어릴 적 한참 RPG 게임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일단 마을에 또래들이 모두 게임을 했기 때문에 같이 놀 수가 없었고, 온라인 공간의 놀이가 여러모로 제약이 적었다. 무엇보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자유로웠다. 이러한 인터넷 공간의 장점(?)인 익명성 뒤에 숨으면 누구든 용감해진다. 현실에서는 쭈구리지만 게임에서 열나게 현질(게임아이템을 실제 돈으로 구입하는 것)하고 만렙(높은 레벨) 찍어서 고렙의 캐릭터가 되면 기세가 등등해진다. 그러다 그걸 믿고 자칫 매너가 나빠진다. 욕하고, PK(게임 캐릭터를 살해)하고, 해킹까지……. ‘왜 신은 저 자식에게 인터넷을 연결해줬지!’라는 하소연이 절로 나온다.

 

예전에는 이런 매너가 게임차원에서 처벌이 됐는데 이제는 사이버수사대에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한단다. 물론 게임에서는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힘들고, 명예훼손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성'(불특정다수가 볼 수 있고, 쉽게 그 내용이 다른 곳으로 퍼질 가능성 있으면 죄가 성립하며 특히 비방목적이 있다고 인정되면 가중처벌대상)이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협박 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연성이 인정되고 다른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에는 고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의 악플 문화와 네티켓 없는 행동은 분명 문제이고 제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장난 같은 사건을 가지고 신고하거나 소송 하는 건 너무 법을 남용하는 게 아닌가싶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명예훼손을 검색하면 고소하거나 고소당했다는 글이 수두룩하다. 정말 고소남·고소녀 전성시대다! “실제로 명예훼손으로 투옥되는 사례의 28%가 한국에서 발생하고 현재 형사상 명예훼손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158개국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실제로 이 제도가 실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만 유독 명예훼손 소송이 많은 이유를 홍성숙 숙명여대 교수는 우리 사회의 분쟁 해결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소송으로 가지 말아야 할 사안까지 소송으로 간다고 말한다.

 

분쟁해결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비단 네티즌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난 39일 해군이 제주 해적기지 반대한다.’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 김지윤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김종훈 전 외교통상본부장이 쌀 개방 추가협상을 미국에 약속했다고 보도한 한겨레 기자 2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해군과 김종훈 전 외교통상본부장 모두 승소에는 크게 관심이 없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들의 관심은 소송을 통한 국민 겁주기이다.

 

그들이 하필 소송으로 국민을 겁주려는 이유는 뭘까? 일단 비용 부담이 없다. 소송과 같은 형사처벌은 검찰이 담당하기 때문에 국가기구나 권력자는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는다. 또 그들이 제기한 소송은 대부분 무죄판결이 나지만, 소송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소송 한번이면 비용도 안 들고 상대방이 무죄로 풀려나니 죄책감도 적은데다 언론에서 사건을 뻥뻥터트려주니 광고 효과도 좋다. 국민에게 겁주기에는 최상의 도구인 것이다.(방금 전에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돈 봉투를 뿌렸다는 의혹을 제기한 전 당협위원장 A씨를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나는 정치인과 국가기관이 비난을 받고 소송으로 대처하는 것과 게임 유저들이 게임에서의 다툼을 소송으로 해결 하는 게 비슷해 보인다. 사건이야 다르겠지만 결국 그들이 대처하는 방식 과 무죄판결이 날 걸 알면서도 겁주고 위협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자세가 비겁하다. 특히 "국가기관이나 공무원의 경우 굳이 소송이 아니더라도 언론"이나 정부·정당의 대변인 혹은 변호사를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송으로 대처하는 건 옳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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