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3/ 청년 대중지성 / 철학 후기 / 이현진

 

유대민족이 만든 무려한자들의 역사는 참으로 놀랍다. 나는 신으로부터 선택받았기 때문에 엄청난 시련을 당하고 있고 곧 신이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망상을 현실로 만든 게 아닌가. 예전에 좋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에서 하느님은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는 구절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 수업을 들으면서 저 구절만큼 약자의 원한에 사무친 것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강대한 민족에게 압박당하는 괴로움을 선민의식으로 포장한 유대민족처럼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을 하느님이 사이즈별로 특별 제작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시련 자체를 해결하거나 원인을 제거할 생각은 하지 않는게 아닐가. 그냥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는가.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으니 노력할 필요도 없고. 또 상황이 어떻게 꼬여도 나는 신의 부름을 받잡고 있는 것일 뿐이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원한에 찬자의 행복이라는 마취, 마비, 안정, 평화, 안식일, 정서적 긴장 완화, 안도와 같은 것이 아닐지. (아 안정, 평화, 안식일 정서적 긴장 완하, 안도에 꽂히는 걸 보면 나는 약자인건가 +.+?)

 

반면 강자의 번개와 섬광”, 주체와 행동의 문제도 재밌었다. 우리는 주로 주체와 행동을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한다. 주체에게 행동을 컨트롤할 힘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강자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주체와 행동은 나뉠 수 없다. 따라서 활동이 모든 것일 뿐이다. 강자의 활동은 파워풀하다. 그런데 솔직히 강자의 파워풀한 행동‘부정적인 폭주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강자가 하면 폭주도 괜찮은 것일까? 아예 괜찮다 괜찮지 않다는 판단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인지... 흠 어렵도다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