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에세이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다들 열심히 쓰고 계시겠죠?? ㅎㅎ

예고한대로 저희가 읽은 책들을 기반으로

한 작가를 잡고 써오시면 됩니다.

에세이 발표 후 뒷풀이도 있으니 모두 참석하셔야 합니다.

혹시라도 못쓰셨더라도 함께 공부한 분들의

글에 따뜻한 코멘트를 위해 또한 마무리를 위해 꼭!꼭!꼭! 오셔욤.

 

지난주 채운쌤께서

1909년 20세기 미술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미래주의 선언>과

그것의 현재 버전인 프랑코 베라르디의 <포스트미래주의 선언>을

비교하면서~ 현대 미술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사실 2년 가량 미술을 공부하면서 재밌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도대체 이 미술이 현실과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지

회의하기도 했었더랬습니다.^^;

지금은 엄청난 속도의 시대입니다. 100여년전 <미래주의 선언>에서

그토록 열망했던 속도가 완벽히 구현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절대

행복하지도 만족스럽지도 못합니다. 도리어 더욱 빠르고 더욱 새롭게

계속 끝나지 않는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속도에 치여 살고 있습니다.

공부를 할 때도 무언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사유하기 보다는

(제가 그렇습니다.^^;;) 계속 새로운 지식을 단편적으로 집어넣습니다.

그래서 채운쌤이 말씀하셨듯 우리는 우리가 느끼것에 대해 의미화하고

언어화하는 능력이 이토록! 떨어지는 건가 봅니다.

게다가 더 근본적으로 무언가와의 공감과 소통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확장된 소셜 네트워크가 있지만 그런 관계는 신체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체없는 이상한 불균형적인 관계는 더욱

소통과 공감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채운쌤의 말씀대로 작가는 자신의

물적토대를 벗어나서는 작업할 수 없습니다. 의식하든 그렇지 못하든 생산방식이

달라지면 감수성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시대의 예술가는 이런 물적토대, 이런 감수성에 대해 의심하고 되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이 무능력한 감수성을 가진

이 난관을 뚫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우리가 제가 예술을 공부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겠죠.^^

서양미술을 한바퀴 돌았는데 아주 피상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듯 공부해서 미술 공부를

이제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시작해야 할 듯 합니다. ^^;; 지금까지 쭉 함께하셨듯이

앞으로도 함께 하실꺼라 믿으면서 ㅎㅎ 다음 시즌은 아마 동양미술이 될 듯 합니다.

저와 함께 여러분도 베라르디가 말했듯 각자 자신만의 리듬으로 그렇게 쭉 함께해요.

좀 느리고 모자라지만^^; 공부하는 자체가 재밌고 언젠가는 배운것을 언어화할 수 있는

날이 올거라 믿으면서 ㅎㅎ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