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게 마련인 생물들과 불사의 생명체들을 받아 이처럼 가득 차게 된 이 우주는 눈에 보이는 생명체들을 에워싸고 있는 눈에 보이는 살아있는 것이며,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의 모상이요, 지각될 수 있는 신이고 가장 위대하고 최선의 것이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벽한 것으로 탄생된 것이 이 유일한 종류의 것인 하나의 천구입니다.” 
  

 1부의 주된 내용은 가장 아름답고 최선의 것으로 탄생된 우주가 ‘좋음’을 어떻게 드러내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주창조의 원리는 '좋음'이다. 그리고 모든 좋은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균형잡힌 것이다.

 지성은 필연을 최선의 상태로 이끄는데, 지성의 궁극적 원리는 좋음이고, 우주는 이 좋음이 실현된 것이다.


 섭리를 부정하는 논리의 바탕이 되었던 원자론과 달리 플라톤의 이야기는 신에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섭리를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의 신은 신의 뜻때로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신이 아니고, 자연의 원리에 따라 만드는 신으로 기독교의 신과는 차이가 있다.


 데미우르고스는 무엇이든 의도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신이 아니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재를 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만드는 자이며, '좋음'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이다. 무언가를 좋고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데미우르고스의 고뇌가 참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질투심에서도 벗어나 있는 데미우르고스는 모든 것이 최대한으로 자기와 비슷하도록 만들기 위해 고심했을 것이다. 이런 데미우르고스의 모습은 당시 나라를 다스리는 자나, 인격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도 실천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최선의 상태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것이 너무 당연하고 검토의 여지도 없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플라톤 이후의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고 하는데 그렇게 내 삶의 환경들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일런지...


 그러나 나는 현재 내 역량대로 존재하고 있으며, 내 존재의 힘을 그대로 현실화시키며 존재하고 있다는 스피노자의 철학이 더욱 편안하게 느껴진다. 힘들고 지친 현실 속에서 지금의 나를 긍정할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