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후기입니다~

 

공통과제에서도 썼듯이 저는 플라톤이 생성을 말한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우리가 철학자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편지식들이 사실은 몹시(!) 근거 없는 편견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ㅋㅋ 역쉬~ 중요한 건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인 듯합니다. 플라톤이나 원자론자들이나 모두들 똑같이 우주를 보고, 우주 안에서 인간을 보고, 생성과 존재를 고민했습니다만 결정적으로 그 안에서 무엇을 질문하는가에 있어서 달랐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두 그룹의 철학을 완전히 갈라놓은 셈입니다.

 

 

저에게 플라톤의 우주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남은 것은 바로 지성(nous)”이었습니다. 지성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물질세계를 작동시키는 필연적 원리법칙입니다. <티마이오스> 식으로 말하면 이게 바로 데미우르고스의 지성입니다. 불완전한 질료를 완전한 설계도에 따라 질서 있게구축할 수 있는 능력.

 

중요한 건 이 법칙이 생장소멸을 반복하는 우주의 운동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성은 언젠가 사라지게 될 유한한 생성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존재인 이데아만 취급합니다(^^;). 플라톤은 생성과 존재를 칼로 무 베듯이 딱 자르는데, (현실에서 가능하긴 한 건지 이상한 이분법이긴 하지만)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운동성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초월하여 모든 운동을 좌지우지하는 영원한 법칙을 상상할 수 있었을 겁니다. 존재는 성생의 외부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을 말뚝처럼 박혀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불완전한 감각기관이 세계를 관찰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신체 중 그나마 가장 덜 불완전한 지성을 통해서만 간신히 접근해볼 수 있는 초월적 경지입니다. 플라톤의 단호함이 멋지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만....ㅎㅎ 여하튼 경험적으로 탐구해서 자연을 알아내려고 했던 원자론자들이나 구체적인 섭생 속에서 치료법을 찾아내려 했던 히포크라테스와는 정말 딴판 다른 태도입니다.

 

이것은 플라톤이 생각하는 인간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보통 운명이란 말을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이 세계 안에서 피할 수 없는 사건과 맞닥뜨렸을 때 사용합니다. 원자론자들이라면 운명을 원자끼리의 우연적인 (그러나 넓게 보면 필연적인) 마주침이라고 설명했을 겁니다. 그러나 플라톤 식대로 하면, 내가 무슨 일을 겪든 그것은 데미우르고스의 지성에 의해 미리 결정된 완전한 필연입니다. 이때의 필연은 우연과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덧없고 일시적인 세상사는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절대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요. 플라톤의 사유는 굉장히 건설적인(?) 느낌입니다. 언제나 아름답고 최선의 상태를 지향하는 열혈청년.

 

 

 

혼자서 <티마이오스>를 읽을 때는 플라톤의 말을 이해하는데 온 정신이 쏠렸는데, 수업에 와서야 지금까지 읽었던 스피노자와 고대 원자론자들과 차이를 비교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플라톤을 생짜로 이해하는 것보다 공통과제를 더 쉽게 쓸 수 있었을 텐데-_-;) 조토론에서 플라톤과 여타의 철학자들을 비교했던 내용을 짤막하게 정리할게요~

 

 

1. 신 : 플라톤의 신은 이 세계의 외부에 따로 존재한다. 이 세계는 신이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서 만들어낸 제작물이다. 반면, 스피노자의 신은 이 전체 세계에 내재해있다. 세계는 이 신이 자기 스스로 분화된 것이다. 스피노자나 플라톤이나 모두 신의 무한한 역량을 말하지만 이 무한한 역량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느냐는 둘 다 천차만별이다!

 

2. 인간 : 스피노자의 세계관에서 인간은 신의 표현이다. 우리의 하찮은 행동들, 손톱만한 역량도 결국 신의 역량의 일부다. 반면 플라톤의 세계관에서 인간은 신의 불완전한 모상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신의 진리에는 도달할 수 없다.

 

3. 불변성 : 원자론자들 역시 원자의 불변성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원자론자들은 원자에게 어떤 초월적인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데, 이들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결국 운동의 불변성이기 때문이다. (원자의 특징 : 쉴 새 없이 운동만 한다는 거) 반면 플라톤이 주장하는 것은 위에서 정리한대로 존재의 불변성이다. 이 세계 자체를 애초에 가능하게 만들어 준 고정된 형상.

 

4. 앎 : 플라톤에게 진리는 데미우르고스와 그의 영원한 설계도다. 따라서 불완전한 몸(soma)을 가진 인간은 여기에 도달할 수가 없다. 반면, 스피노자에게 나의 정신은 현재 내 신체 상태에 대한 관념일 뿐이다. 신체의 역량과 정신은 서로 불가분관계다. 원자론자들은 한 술 더 떠서 가장 확실한 것은 몸의 감각이지 이 감각을 판단하려고 하는 순간 오류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플라톤에게는 얼마나 아느냐가 그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채로 불완전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배웠던 철학자들은 지성에 결핍의 상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스피노자 식으로 하면 이해하는 만큼이 각자의 역량이고 결국은 각자 역량대로 살아갑니다. 원자론자들은 우리가 거짓으로 판단할지언정 감각은 언제나 옳다고 말합니다. 어떤 철학이 옳냐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안다'는 말 하나도 플라톤과 다른 철학자들이 서로 완전히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플라톤은 운동이나 생성을 맞닥뜨렸을 때 이를 알 수 없음(無智)으로 여긴 것은 아닐까요? 히포크라테스가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 알아야 할 수많은 현상들을 나열했을 때, 과연 이것들을 어느 세월에 다 알 수 있을까 싶었는데, 플라톤 역시 마구 움직이는 자연을 보며 고정된 법칙이 없으면 이 번잡한 것들을 알 수 없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엥.

 

(다음 주 발제 택원이 힘내길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