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식물의 사생활' 전반부를 살펴봤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발제를 하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제가 느낀건

제목과는 정 반대로, 식물들의 사생활private life이 너무나 공적common이라는 거였습니다.

어느 것도 고립된 채 자기만의 사적 생활을 즐기는 식물들은 없었지요.

어떤 식물은 벌과, 또 다른 식물은 파리, 모기와, 또또 다른 식물은 새들과,

또또또 다른 식물은 생쥐와, 또 코끼리, 코뿔소, 등등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이 식물들과 우정의 관계에 있었더랍니다.

 

또 하나 식물들에게서 배운 건, 생명이란 얼마나 잉여로운지였습니다.

식물들은 자기들에게는 아무 쓸모도 없는 꿀, 꽃가루 등등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주류 생물학자들은 이를 수정에 대한 대가라고 합니다.

경제주의적 교환관계가 식물들과 동물들 사이에 있다는 거지요.

근데, 제 생각에는 이 얘기가 별로 합당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이를테면, 만약 내가 택배를 보내는데, 택배기사 아저씨가 내 물건을 제대로 전달해준다는 보장이 없다면,

나는 택배비를 선불로 지불할까 생각해 보면, 결코 그럴리가 없다는거죠.

그러나 식물들과 동물들의 관계는 전~혀 다릅니다. 

식물들이 주는 꿀이나 꽃가루는 전적으로 선물입니다.

식물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선물을 주고 봅니다.

자기 꽃가루가 잘 배달되는지, 확인하려 들지도 않고, 확인할 수도 없겠지요.

주류 생물학자들은 여기에 또 이렇게 말할 겁니다.

워낙 배달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에, 꿀도 생산하고, 필요보다 많은 꽃가루로 생산하는거라고.

한편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생명이란 그런 법이죠. 필요 이상 항상 선물을 준비하는 것, 이것이 생명이 사는 법이죠.

그래서 주류 생물학자들은 식물들을 보면 너무나 이상하게 여겨져서는 이렇게 묻곤 합니다.

왜 식물들은 이렇게 효율적이지 못한걸까?

왜 이리 에너지를 낭비하면서까지 자기에게는 별 쓸모없는 것들을 만들까?

이 질문에 존경에 마지않는 크로포트킨의 말을 빌어 대답해 볼까 합니다.

생명은 잉여다. 잉여롭지 않은 생명은 생존자체가 불가능하다!

(자본은 바로 이 생명의 잉여를 자기들것으로 빨아들여 잉여가치라는 것을 만들지요.)

 

마지막으로, 그냥 '식물', '식물' 했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며 보니, 식물들이야말로 정말 너무나 다른 존재들이 있는 곳이더라구요.

식물들의 씨를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니, 정말 희한하게 생긴 것들이 많더라구요.

동물들의 수정란이 걍 동그란 것과는 너무나 달리요.

식물에 비하면 동물의 다양성은 새발의 피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