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주방일지를 올립니다.

몇 주간 주말의 십만대군을 정신없이 치러내느라, 그리고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식사당번 '빵꾸'를 메워대느라,

정신줄을 놓고 살았나봅니다.

정신없이 노트에 끄적여댔던 일지를 추려보니 이런.. 한 줌도 안되네요.^^

여튼 정신 줄 놓고 살았던 두 주 간의 기록입니다. 

 

 

2월 27일 (SD)

지난 월요일의 기억을 더듬어서 쓰자면... 그날도 채운샘의 점심당번 날이었다. 그래 한번 혼나지 두 번 혼나랴! 미리 전날 밤에 벽과 가스렌지 옆 콘센트, 김치 냉장고 측면부를 닦아 놓았으므로 마음 놓고 두 발 뻗고 잤던 기억이 난다.

시간은 열한시. 채운샘께서 당도하사 지중해식 마늘향 볶음밥을 해 주셨다. 지중해식 마늘향 볶음밥 만드는 법. 먼저 포도씨유로 달군 볶음팬에 다진 마늘을 노릇하게 볶은 뒤에 밥과 재료를 넣고 볶는다. 이렇게 해야 마늘향이 골고루 퍼지며 지중해의 풍미가 가득해진다. 국적불명의 정체불명 볶음밥은 가라! 볶음밥 하나도 갖은 정성이 있고서야 비로소 제 맛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재료 준비가 끝나고 상차림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는다. 밥도 맛있고 분위기도 화기애애. 이게 아닌데! 뭔가 올게 더 있는데... 밥을 다 먹고 뒷 정리를 하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어디 튄 김치국물은 없는지... 밥통에 밥풀이 말라 비틀어져 있지는 않은지... 이상하리만치 모든 게 순조로운 하루다. 채운샘은 꾸중은 고사하고 요즘 손이 거칠어진다며 친근하게 속내를 터 놓기까지 하신다.

그 순간 눈 녹듯 모든 긴장이 풀리며 속 좁고 생각 짧은 나의 모습이 오히려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저녁시간 손이 거칠어진다고 걱정하시는 채운샘을 위해 선생님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드리려고 했다. 넌지시 선생님께 다가가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고 핸드크림을 짜려고 하는 순간,

“아니 지금 이 더러운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라고!”

아 제자의 짧은 생각, 저의 불찰이옵니다. 역시 선생님은 호락호락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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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해완)

주방세미나의 첫 모임이 있는 날! 저 너머 문탁에서 달려오신 나선미쌤과 달군, 다영언니, 나 이렇게 넷이서 시작했다. 뭔가 거창한 것을 해보자는 취지는 아니었다. 이렇게 주방매니저를 맡게 되었으니 내침김에 좀 더 공부해보자, 그 공부한 것을 실전으로 써먹어보자, 그리고 막힌 것이 있으면 같이 풀어보자...

책은 무주로 귀농한지 10년차이신 장영란 선생님의 <자연 그대로 먹어라> 봄, 여름 편을 읽었다. 달군은 열심히 읽었지만, FTA의 습격(?)을 받아 그 전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우리들은 날라리로 읽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모두들 책이 너무 좋다는 것에는 만장일치였다. 레시피만 쭉 나열한 일반 요리책과는 달리, 실제로 장영란 쌤네 가족의 사는 이야기가 각 음식마다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그 스토리 덕분에 정말로 그 식재료의 기운이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가끔은 주방일지를 이렇게 써 봐도 되겠다 싶었다.

가령 ㅡ 오늘은 ‘부추편.’ 부침요리밖에는 할 줄 모르는 럭키가이 영대의 구세주. 그 풍미나 맛이 세련되어서 전을 해먹으면 정말 맛있는 재료. 특히 봄부추는 인삼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거! 오늘은 ‘청국장편.’ 김치도 잘 먹지 않으려고 하는 갑자서당 아이들에게 수행의 기회를 주는 요리. 냄새가 유니크 하지만 한 번 중독되면 벗어날 수 없다. 단, 연구실에서 청국장요리를 해먹으려면 (정말) 잔~뜩 사놓아야 한다는 거! (한두 개 가지고는 그냥 된장국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 ㅡ 음식윤리의 도시편, <밥 그대로 먹어라>! (^_^)

사실, 오늘은 책보다는 문탁의 주방에 대한 이야기를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산강학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문탁에서 운영하는 ‘찬방’. 34명의 회원이 있어서 다달이 회비로 6만원을 내면, 찬방의 셰프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3개씩 만들어준다고 한다. 그러면 각자 찬방에 가서 챙겨가면 된다고 한다. (현재 지영언니가 여기서 함께 도와드리고 있다*^^* 언니, 많이 배워서 남산에서도 그 기술을 써먹어주!)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 이렇게 번뜩이는 아이디어라니. 정말로 아줌마스럽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실천적이었다. 직접 찬방을 기획하고 또 실제로 운영하는 과정은 진짜로 재미있어보였다. 자극이 많이 되었다. 그래, 우리도 어서 관념주방(?!)이라는 불명예를 씻고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먹을 불끈 쥐고 속으로 외쳤지만 곧바로 현실 직시. 문탁은 문탁이고 강학원은 강학원이다. 우리는 모두 나선미 쌤이 “셰프가 첨에는 12명이 있었는데 배가 산으로 가서 4명으로 줄였어”라고 말씀하셨을 때 충격을 먹고 말았다. 헉...... 그렇다, 문탁은 그냥 주방당번 = 셰프다. (이럴 수가) 그에 비해 우리는 연구실에서 처음 앞치마를 두른 청년들이 주 노동력이니, 빵꾸를 메우기 바쁘거나 1시간 안에 ‘먹을 수 있는 것’을 내놓기가 최대목표다. 초기조건 자체가 아예 다른 셈. 그렇다면 오행주방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ㅎㅎ 주방에 몸을 담근 지 만 3개월을 채워가고 있는 현재, 이제는 획기적인 개혁을 해야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모두 접었다! 대신 작은 거 하나라도 우리가 실질적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궁리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요리초짜이기 때문에 더 강점을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요리는 더더욱 소박하고 단순하게, 대신 친목은 더 끈끈해지는 새로운 밥상문화를 만들어낸다거나 말이다.

나선미쌤이 직접 담그신 효소를 먹으면서 훈훈하게 세미나를 마쳤다. 다음 주까지 가을, 겨울 편을 읽고 각자 계절을 맡아서 간단하게 정리도 해오기로 했다. 실용적인, 너무나 실용적인 세미나가 될 것 같다^^

 

 

  

3월 12일 (달군)

갑자서당 봄 학기가 개강했다. 아이들에게 개강 기념 숙제로 독후감쓰기 과제를 내 주었는데 책 제목이 [콩 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이다. 콩알 하나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이야기. 현란한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작은 콩알 이야기에 과연 눈길을 줄 것인지 궁금했었다. 수업 시간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에 독후감 숙제를 들고 왔길래 역시나 갑자서당 학부모님들 열성이시구나, 탄복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콩알 독후감”이라며 써 온 글들을 읽어보니 재미있게 읽고 쓴 태가 났다.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지난 학기에 폭풍 망치질과 톱질로 다른 아이들을 기죽게 했던 한 친구가 이렇게 썼다. “나는 콩알 하나에 무언가를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콩알은 햇빛과 비를 끌어들여서 그것들을 먹고 자라나기 때문이다.” 작고 시원찮아 보이는 콩알 하나에 우주를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 대단한 매력덩어리 콩알이다.

숙제를 해 온 아이들에게 약속대로 선물을 주겠다며 손을 내밀게 했다. 화려한 포장지를 기대했던 아이들은 자기 손에 떨궈지는 물건을 보고 깔깔 웃음을 터뜨린다. 선물은 콩알 세알.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땅 속의 벌레가 먹고 또 하나는 사람이 먹는다. 그래서 농부들은 콩을 세알씩 심었단다. 뭔가 진지하게 폼 잡고 설명하려는 나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고 아이들은 벌써 생콩을 우적우적 씹어 먹고 난리다. ‘달력의 작은 글씨를 보면 곡우라는 날이 있어. 곡식이 잘 자라도록 비가 내린다는 날이야. 이 날 콩 세알을 화분에 심어보세요.’

이 콩으로 말하자면 낭금 학인 최유미 샘이 주방 선물로 가져다 주신 것이다. 귀한 식재료인데 연구실의 초보 요리사들에겐 선뜻 도전하기 어려운 재료다. 연구실에 온 뒤로 미안하게도 오래 빛을 보지 못했는데 부디 아이들 화분에서 힘찬 싹을 틔워 올리길!

생각난 김에 또 콩 요리에 도전했다. 메뉴는 역시나 콩죽. 이번에는 콩도 잘 불었고, 그간의 죽 요리 연마로 죽 쑤는데 자신감도 충만하다. 콩을 한 번 삶아 물을 거르고 믹서에 간다. 여기에 다시 콩 삶은 물을 붓고 약불에 저어가며 푹 끓인다. 그러기를 한 시간. 이번에는 메주냄새 안 나는 싱그러운 콩죽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콩죽은 아직 호오가 엇갈리는 메뉴다. 혹자는 콩죽의 맛을 두고 ‘無味의 味’라 평하기도 하고(좋은 얘긴가?!), 물과 쌀과 콩만으로 쑨 죽이라는 얘기에 경악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어쨌든 내가 한 음식이 젤 맛있는 나는(초짜라는 얘기다. 짬밥이 좀 되는 사람은 남이 해주는 밥이 맛있단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 입 가득 죽을 떠 먹었다. 선재스님의 책을 읽어보니 콩죽에 쑥을 넣으면 맛이 산다고 한다. 조만간에 쑥이 나면 선재스님표 쑥 콩죽에 도전해 봐야지.

오늘은 예진 성복 샘과 함께 밥을 했다. 감기로 고생을 하는 예진씨는 부상투혼을 발휘하여 너무나도 훌륭한 우엉 들깨탕을 만들어 주셨다. 레시피는 선재스님의 책을 참고. 평소 나의 습관대로 큰 냄비에 한 가득 흥건하게 다시물을 우려 놓았는데, 예진씨의 말은 이건 자작자작하게 끓여야 하는 거란다. 자작자작?! 자작자작하게 끓이는 탕이 어떤 건지 나는 오늘 그 말뜻을 처음 알았다. 주방에서 밥을 하다보면 남자로서의 태생적인 한계랄까? 그런걸 실감하는 때가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요새 전요리 주자로 밀로 있는 성복샘에겐 쪽파가 들어간 배추전을 주문했다. 박정복샘이 제주도에서 가져오신 메밀가루에 예신씨 할머니네서 온 들기름으로 고소한 배추전을 부쳤다. 몇 번이고 내둥 전만 부치시더니 어느새 도통의 경지에 오르신 성복샘. 이제는 어떠한 두께의 전도 고루 익히는 신기의 경지를 발휘하신다.

식사준비가 끝나고 밥 당번 끼리 밥을 먹으며 식용유의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식용유를 만들 때 쓰이는 화학첨가물이 조리하는 과정에서 휘발된다. 그게 요리하는 사람의 폐에 쌓여 중한 병을 일으킨다고 한다. 기름 앞에서 조리한 사람이 식욕을 잃는 것도 이 때문이란다. 사실 식용유 안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 말 만으로는 몸이 잘 안 움직였더랬다. 몸에 안 좋은 거 따지기 시작하면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우리가 먹는거라곤 고작 전 나부랭인데 매번 질 좋은 기름에 부쳐 먹을 순 없지 않겠어. 뭐 이런 생각. 하지만 식용유에 화학 첨가물이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보니 식용유를 쓸 생각이 싹 사라져 버린다. 앞으로 기름이 들어가는 요리를 좀 줄이더라도 밥상에 좋은 식재료로 만든 먹거리를 올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방 선반을 설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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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이 다영이 해완이랑 주방 씽크대 선반을 만들었습니다.  선반을 만들면서 다들 애먹었습니다. 다영이의 찌든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네요.^^

나무에 두껍게 칠을 하긴 했는데 그래도 여름엔 곰팡이가 필 수 있어요. 식기를 올리실 때 물기를 한 번 닦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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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도 간이 선반을 설치했습니다. 이 위에 양념류와 집기 등속이 올라갈 예정입니다. 물건이 어지럽혀지지 않게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정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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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주 밥상에는 시연샘이 선물해주신 오리쌀이 올라옵니다.

     청둥오리가 키웠다는 유기농 쌀의 맛을 느껴보세요.

 ■ 주방에 선물을 주실 땐 우렁각시처럼 슬며시 놓고 가시지 마시고

     꼭 주방매니저들을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