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수유+너머’!

 

 2011년 9월 30일 연구실을 필동으로 옮겼다. 해방촌에서 보낸 5년을 마감하는 것이자  ‘수유+너머’와의 인연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수유+너머’는 내 ‘공부와 밥과 우정’의 거점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수많은 사람과 결별을 했다. 공동체는 만남의 장이면서 또한 결별의 장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수많은 실험을 했고,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으며, 가끔씩 성공의 열매를 맛보았다. 그 카오스의 향연 속에서 좋은 삶이란 성공 자체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의 경계가 없는 것임을 비로소 알았다. ‘수유+너머’를 통해 받았던 과분한 찬사와 참담한 비난, 그 희비의 교차 속에서 찬사와 비난이 결국은 하나임을 배웠다. 


  이미 2008년 가을부터 나는 ‘수유+너머’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동체의 차원에선 세대교체와 지역적, 활동적 분화가 절실한 시점이었고, 개인적으론 새로운 공부와 도약이 필요한 때라고 여긴 탓이다. 하지만 인연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모두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 2009년(기축년) 여름 ‘그 사건’은 도화선이자 시발에 불과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사건들이, 예측불가의 방향에서, 측량할 수 없는 속도로 일어나고 또 일어났다. 그 와중에 간신히 건져올린 질문들 - 공동체의 조직적 진화와 구성원들의 자율성 혹은 연대감의 증식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는 것, 아니 어떤 면에선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는 것, ‘앎과 삶의 일치’를 표방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추구했지만, ‘앎과 삶’ 사이에 가로놓인 간극(특히 정서적)은 상상 이상으로 깊다는 것(나아가 그렇게 ‘깊다’는 걸 충분히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배운 바 ‘실천과 변증’으로 그 (마음의) 심연을 뛰어넘기란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것.

 

  이 질문들은 우리가 겪은 사건들의 양과 질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그래,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그 사건들을 감당할 만한 지혜도, 용기도 없었다. 무지가 번뇌의 원천임을 통렬하게 깨달은 순간들이다. 어쩌면 이 도저한 문턱에 도달하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수유+너머’가 내게 준 최후의, 최고의 선물, 그것은 ‘나의 무지, 나의 번뇌’였다. 하여, 그 터럭 하나까지 잊지 않을 것이고, 그 찰나의 미망까지 용서하지 않을 작정이다. 지난 2년여 동안 내가 겪은 그! 무지로부터의 혁명, 그! 번뇌로부터의 자유가 이제 내가 새로이 들고 갈 화두다. 


  하긴 무슨 말이 필요하랴. 98년 강북구청 뒷골목에서 처음 <수유연구실>을 시작할 때 그러했듯이, 떠날 때가 되었고 다시 시작할 때가 되었을 뿐이다. 다만 그뿐이다! 

 문득 청년 노신이 고향 샤오싱을 떠나면서 한 말이 사무치게 가슴을 울린다. “다른 길을 걸어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그 말이.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과연 이 길 위에선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한편 두렵고, 한편 설렌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내 일상은 앞으로도 ‘공부와 밥과 우정’으로 넘쳐날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원천이므로. 

 

 새로운 이정표 앞에서 ‘수유+너머’의 이름으로 만난 모든 이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함께 했던 시간들이 모두에게 배움의 장이었기를,

설령 지금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굿바이, ‘수유+너머’!


 추신 : 앞으로 내가 활동할 공간은 <감이당>이다. 감이당은 ‘몸, 삶, 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문의역학’을 탐구하는 ‘밴드형 코뮤니타스’다. <남산강학원>의 이웃으로 깨봉빌딩 2층에 터를 잡았고, 홈페이지 역시 당분간 <남산강학원www.kungfus.net>에 더부살이를 할 생각이다. 깨봉은 도깨비방망이라는 뜻이란다. 도깨비방망이와 인문의역학의 만남이라? 이 기이한 마주침이 또 무슨 사건들을 불러올지..............아무튼 흥미진진하다.^^  


                                                 2011년  10월 1일

                                                   필동 감이당에서

                                                       고  미  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