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첫째주 일지 나갑니다!



1월 30일 (다영)


한 주의 시작. 월요일 점심. 당번은 추언니와 채운쌤이었다. 


(중략)


점심은 훌륭했다. 특별초빙한 추 셰프께서 개인의 기호에 따라 계란을 3단계로 요리해주셨기 때문이다. 웰던, 미디엄, 레어! '커피와 떡볶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가 모토이신 3층 강학원계의 까다로운 미식가 채운쌤이 extremely well-done으로 주문하는 고비가 있었지만, 무사히 통과했다. 선생님은 계란 후라이 겉만 보고도 medium인지 well-done인지 구분하셨다. '세 개 다 완숙'이라고 말했던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내 후라이의 노른자 깊숙한 곳에 미세한 액체 상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채운쌤! 한치의 날계란도 용납치 않으신다. 


5m 전방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한 눈에 캐치하시는 채운쌤은 월요일 낮, 11시 30분 경에는 부족한 주방의 구석구석을 보시고는 그때마다 소리 높여 부르셨다. "도화야! 여기 와서 봐바라." "주방아! 이것좀 봐라." 내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개~ 속으론 웃음이 터지는데, 감히 선생님 호령 앞에서 입을 열 수 있나. 그저 쪼르르 달려가 넙죽 고개를 조아리고 경청했다. 과연 배식대가 끈적끈적하고 수납칸 모서리에 붉은 양념이 발려 있다. 


"언제 주방더러 손님 유치하라 했어, 이런 걸 잘 하란 말이야! 이러니까 내가 미치지. 안 미치고 배겨?" 선생님의 분노는 조금만 참으면 된다. 지속시간 약 1시간. 에너지가 다 되면 자동적으로 충전모드로 들어간다. 그동안은 평화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선생님 배터리가 자꾸 열 받아서 재생시간이 줄어들면 어쩌나. 나도 모르게 부족하나마 '청결은 제가 맡겠습니다' 하고 믿기지 않는 말을 했다. 웃으시면서 "그래, 네가 맡아라." 하시는데 다행히 선생님도 그 말을 믿진 않으시는 눈치였다. 앞으로 양념 두는 곳 바닥이나 싱크대 아래, 가스렌지 뒤(벽), 싱크대 쪽 벽은 특히 신경써서 닦도록 하자.


특히 월요일 점심이나 비교적 당번 일이 한가한 때에는 주방 담당들이 솔선수범 나서서 날카로운 눈으로 구석구석 살피며 일을 투척해주도록 하자. 보일 때마다 나서서 치워야 함은 물론이고. 경계령을 발동시켜서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까딱했다간 "앞으로 주방에서 안 먹어. 지금 먹는 양의 반으로 줄일거야" 라고 하신 말을 정말 실행하실지 모른다. 연구실에 와서 공부하는 모든 분들이 안심하고 드실 수 있게 월수금은 특히 깨끗한 주방데이를 선포하며 당번들과 함께 청결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키도록 하겠다. 



1월 31일 (해완)


오늘은 나의 담당날인데도 불구하고 부엌에 거의 들어가지를 못했다. 문탁쌤이 일일알바를 주셨기 때문에 밖에 나갔다와야 했다. 달군이 대신 맡아주었다. 밤늦게 뒷정리를 하고, 수영언니가 가져다준 건어물 세트까지 넣어놓고 나니 하루가 가버렸다. 오늘은 대신 평소에 느꼈던 것을 간략하게 쓰겠다.


내 생각에, 내가 제일 취약한 부분은 바로 식단짜기 + 적절한 식재료 사용이다. 청소나 정리정돈도 어렵지만 이 분야는 완전히 무지, 꽝이다. 조금만 변동사항이 닥쳐와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것은 식재료 하나하나의 특성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더 빨리 시들어 가시는지, 누구를 어떻게 해야 제일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어느 당번에게 인도해야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지! 하루하루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기분이다. 제발 오늘은 사고 안 치고 정상적인 밥상이 차려졌으면...(ㅠㅠ)


달군 말대로 이제 주방세미나가 시작될 시점이다. 그런데 세미나에서 좀 실용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배우고 싶다. 국의 종류(소금국, 간장국, 된장국.../ 무다시, 멸치다시...)라던가 채소들의 성깔이라던가. 식재료를 도매로 사면 값은 저렴한데 처치하기가 힘들다. 자칫하다간 시들어버리고, 또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사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맛없는데다가 텅 빈 냉장고라는 소문이?!) 그러니 더더욱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의 배움 : 

근영쌤에게 배웠다. 야채를 볶을 때는 양파부터! 양파는 빨리 익지만, 먼저 볶으면 좋은 향(달달한?)이 난다고 한다. 양파부터 볶는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왜 그랬는지는 몰랐는데. 제대로 배웠다^_^



2월 1일 (다영)


어젠 수영언니네로부터 왕 큰 박스로 건어물 5종을 선물 받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2월의 첫날, 오늘은 또 거대 박스 2대가 주방에 도착했습니다. 박정복 선생님은 제주도에서 올라오시면서 부엌을 싹싹 털어서 보내주셨고 박시연 선생님은 산에서 만난 인연으로 얻은 다량의 유기농 쌀과 잡곡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주방에서 '달라, 달라' 조르긴 했지만 막상 여기저기서 마음 써 보내주시고 그 인연의 장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점점 실감하게 되니 이젠 받는 만큼 기쁘기도 하지만 무겁기도 하다. '보내주신 걸 헛되게 하지 않도록 잘 써야 할텐데. 이걸 어떻게 공부에너지로 돌릴 수 있을까. 선물의 기운을 어떻게 해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말린 나물이 많이 들어왔는데... 먹기 전에 빨리 공부해서 이름이랑 요리법을 기억해두어야 겠다.


럭키가이 영대. 달군이 이를 갈았다. 반찬을 두 개 해달라고 하려 했는데. 왠걸, 오늘따라 시간이 남는다는 아웅틴툰이 10시 반부터 부엌에 들어앉아 버마 요리를 해주었고, 구우 쌤이 어제 남은 걸로 다시 크림스파게티를 해주시겠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을 부르는 '만개한 꽃', 도화여라! 결국 럭키가이는 부추 한 움큼 씻어서 전을 부치기만 했을 뿐인데 배식대에는 어제 남은 국에다, 있는 반찬을 죄다 꺼내어 여러 접시가 올라와있고, 버마식 콩요리와 크림스파게티로 가득 차려져 있었노라, 는 배 아픈 이야기... 


(중략)



2월 2일 (해완)


오늘의 점심은 제리 쌤과 기원언니. 메뉴는 직접 말린(^^) 시래기 국에다 봄동무침. 결과는? 퍼펙트(^^).


오늘 베어하우스 이사여서 그 시간에 직접 나가보지는 못하고, 아침에 미리 준비를 해놓았다. 구우쌤이 대신 좀 봐주신다고 하셔서 더 믿음직했다. 다만 봄동을 못 찾는 에러가 있었다. 나는 작은 풀 같은 것을 상상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배추(?)라고 무시했던 2000원짜리 봉지가 바로 봄동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달군의 비웃음. 구우쌤이 원래 봄동이 이것보다 작다고 하셔서 좀 위로가 되었다. 요즘은 우량아들이 나오나보다! 봄동무침이 너무 맛있었던 고로, 다음주에도 이 메뉴를 적극 밀어야겠다.


아침에 작은 불상사가 있었다. 어제 수영언니가 남은 다시국물이라고 남겨놓고 간 냄비를 열어보니, 희옇고 뿌연 뭔가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침팀(!)의 작품. 장금쌤, 민식쌤, 민교가 계란국을 해먹었는데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것이다. 문제는, 물이 팔팔 끓을 때 계란을 풀어야 했는데, 풀고 끓였다는........... 그래서 계란들은 고체가 되는데 실패했다. 기름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 스스로의 정체성을 애매하게 하고 있었다. 파도 양파도 들어가 있지 않은 그 정체모를 국은 한 숟가락으로도 충분히 느끼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먹은 걸까?!) 구우쌤과 수경쌤의 조언을 받아, 결국에는 싱크대행으로 보냈다. 기를 쓰고 재활용해보려 했으나, 그러기에는 양이 너무 애매했다. 아! 가슴 아파라. 우리, 그러지 맙시다ㅠㅠ


(중략)


오늘의 배움 : 주방에 들어오면 무조건 물부터 올려라.

철현오빠의 한마디. 역시 취사병다운 노하우! 그러나 역시 취사병다운 맛의 깊이..ㅋㅋ 

손 느린 영대오빠에게는 최고의 조언이 되겠다.



2월 4일 (해완)


오늘은 사고의 연속이었다. 하필이면 외부손님들이 많이 오는 토요일에.


점심. 진영오빠가 전날 술을 잡수시고 주무시느라 11시 50분에 도착하셨다. 분노 게이지 MAX! 청비탐 OT를 준비하고 있던 내가 긴급투입되었다. 다행히 찬언니가 침착하고 빠르게 조리를 해서, 별 다른 차질은 없었다. 나는 애꿎은 영대오빠와 철현오빠에게 화풀이를 했다. 어떻게 된 것인고. 영대오빠는 투덜투덜, 괜히 데려왔다면서, 자기 입지가 좁아진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10년지기 친구를 관리하란 말이다.


진영오빠는 자괴하고 참회했다. "나는 2012년에도 이 꼴로 산단 말이야"라고 말해서 영대오빠의 비웃음을 자아냈다.나는 말 없이 누구도 밥당번을 쓰지 않았던 일요일 저녁의 빈칸을 내밀었다. 진영오빠는 기꺼이 적었다. 오늘 청소도 자기가 다 하겠다고 했다. (당연하지!!) 그러나 나중에 들으니 청소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이번에는 다영언니의 분노 게이지를 Max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아~~~~


밥당번 50분 늦은 것은 다시는 그러지 않으면 되고, 청소가 잘 안된 것은 아직 주방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은 주방당번을 많이많이많이 하자^^ 3월에 뵙겠습니다ㅎ_ㅎ


저녁. 4시 40분이 되었는데 주방에 아무도 없다. 가뜩이나 초보 두 명이 붙어있어서 다영언니와 내가 미리 가 있었는데 바람맞고 말았다. 범철쌤이 30분 늦으신다는 통보가 왔다. 수원 외갓집에 갔다가 출발시간을 잘못 잡으셨다고 한다. '동준'이라고 적혀있는 다른 밥당번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셔서 연락도 취할 수 없었다. 40분 경에 오셨다. 우리는 분노를 꾹꾹 참으며 일찍 와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런데... 그분은 요리를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분이었다... 그래서 다영언니와 내가 함께 저녁을 했다. 헐레벌떡 뛰어오신 범철쌤은 주방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아시고 사색이 되셨다. 계속 죄송하다고. 그래서 세척실 청소를 부탁드렸다. 다행히, 점심과 다르게 아주 깨끗하게 뒷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1월동안 주말 주방에 몸을 담아보니, 주말에는 평소보다 곱절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부인들이 많이 오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방이 그동안 선물받은 것을 다시 선물드릴 수 있는 확실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더 맛있게, 더 깨끗하게, 더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릴 것. 그것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강학원에 오게끔 할 것이다. 매일매일이 허덕허덕의 연속이긴 하지만, 특히나 주말에는 방어전술(?)을 펼치기 급급하지만, 요새 쬐끔 욕심이 생긴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정갈한 밥상을 드리자고. 아낌없이 먹거리를 보내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욕심은 왠걸, 아찔함의 연속이었다. 임진년 입춘은 이렇게 시작되는가!

아무래도 3월에는 주말라인업을 잘 짜야 할 것 같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