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은 심히 창대했으나 시작은 미미하기 그지 없었던 오행 주방의 한 달이 지났습니다.

경험, 실천, 성실성, 순발력 등이 총체적으로 부재하는 상황속에서

주방살림을 맡은 저희 도화당원들은 우리의 유일한 카드인 막강 도화살을 이용해

주방 달력 채우기와 선물 탁발(자칭 탁발, 타칭 구걸..^^;;;) 로  부임 첫 달을 간신히 넘겼습니다.

지난 한 달 간 가장 뼈저리게 느낀 점은 주방 살림이 정말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가 멀다않고 쓸고 닦고 치워도 주방의 일거리는 한이 없더군요.

이제껏 주방살림을 맡아오신 모든 전임 매니저들과 온 평생을 가사일로 보내시는 우리 어머님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지난 한 달간 어리버리 도화당원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연구실 식구들,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셨던 주방 당번들,

귀한 식재료들로 주방의 곳간을 채워주신 연구실 학인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구요~~

어떻게해야 더 맛나고 건강한 밥상을 만들 수 있을지,

어리버리 도화당원들은 좀 더 고개 숙이고 공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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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에서 귀한 식재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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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명절 특수를 누렸지요! 선물받은 음식은 쟁여 놓지 않고 바로바로 식재료로 사용하는데

그러고도 이처럼 많은 식재료들이 넘쳐났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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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들기름과 고급 된장 고추장! 그리고 냉동실엔 그 비싸다는 고추가루가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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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학인들 머리가 머지 않아 검어질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검은 콩이 들어왔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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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근.젠> 세미나팀에서는 전기 압력밥솥을 선물해주셨어요!

귀한 선물로 매일같이 잡곡밥 잘 지어먹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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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매니저 셋이 돌아가며 일지를 썼는데요, 다시 읽어보니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아무리 추려보아도 멋모르는 매니저들이 맨땅에 헤딩하고 나자빠지는 얘기뿐.  이름은 생략하고 올립니다. 누가 썼는지 알아맞춰 보셔요~)



1월 5일


2011년 12월 22일 동지날. 동지는 음기가 가득 차 극에 이르는 날. 이 날부터 양기가 자라난다. 음기가 일 년 중 가장 센 날이라 귀신이 날뛰는 걸 막으려 양기 그득한 팥죽을 끓여 먹는다. 


동지날 팥죽을 끓이며 입성한 오행주방! 음양오행의 원리를 응용해 연구실 밥상의 품격을 높여보자는 취지로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보다는 도화당桃花黨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듯 하기도) 달력을 뒤적이다 벌써 주방일을 맡은지 보름이 지났다는데 화들짝 놀랐다. 아직 제대로 된 회의는커녕 대청소도 한 번 못했다. 그런데 어느 새 보름이나 지났다니!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내 이중행보(일명 양다리) 탓이 크다. 사실은 두 달 전부터 이미 다른 주방에 몸담아 왔다. 하루 4시간 설거지 알바. 그런데, 내가 알바를 해왔던 그 많은 가게들과 마찬가지로 이 가게도 망하려 한다. 주방 매니저 하기 전에 일도 배우고 돈도 벌 겸 해서 시작한 일인데, 가게 분위기가 휘청 기울더니 연일 싸움터가 계속되고 있다. 


(중략)


오늘은 정재승 선생님 강의가 있는 날. 여섯시에 온다던 그는 강의 시작 십분 전까지 감감무소식. 더불어 그의 수강생들도 시작 시간에 임박해서야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밥당번이던 나와 성복샘은 한식 컨셉의 요리를 듬뿍 해놓고 기다렸는데, 그만 말짱 도루묵이 됐지 뭔가. 


아직 연구실에 주방과 카페가 있다는 인상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듯하다. 강의 시작 전에 일짝 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이사 온 뒤로 정리가 제대로 안 돼서 아직 부족한 게 많다. 여기도 할 일, 저기도 할 일. 눈 뜨면 연구실 일거리 밖에 안 보여서 눈과 마음을 단단히 닫고 지내야 할 정도. 그런 내가 남의 주방에서 승진을 했다!! 이게 될 말인가!!!


얼마전에 출간된 <누드글쓰기>에 적었다.내가 일하는 가게는 왠만하면 망한다고.ㅎㅎ 어서 우리 사장님이 <누드글쓰기>를 읽으시고 나를 놓아주셨으면 좋겠다.



1월 7일


오늘은 갑자서당이 있는 날. 도토리 서당 때보다 사람 수가 줄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주말마다 전쟁터였을 테다. (일요일 의역학 100인분으로 충분하다!) 찬언니와 밥을 했는데 언니의 노련함에 깜짝 놀랐다. 내가 죄다 흘렸다면 언니는 죄다 닦았달까... 게다가 정리정돈도 수준급이다. 지금까지 찬언니와 밥을 거의 안 해봐서 몰랐으나, 그녀는 살림의 여자였던 것이다. 밥은? 아주 잘 되었다msn034.gif


(중략)


저녁에는 구우쌤의 음산하면서도 맛있는 매생이국을 먹었다. 저녁밥상 앞에서 주방 상식 하나를 터득했다. "다시다"와 "다시마"의 차이. 매일매일 다시다 포인트를 계산하는 병철오빠가 가르쳐주었다. 다시다는 국물 맛을 내는 조미료고 다시마는 우리가 요리할 때 쓰는 미역 닮은 애란다. 즉, 도화주방은 "다시다"가 아닌 "다시마"를 써야 하는 것이다. (아~ 왜 이름이 헷갈리게 비슷할까?) 병철오빠의 업무가 막중하다고 하니 사람들이 다시마보다는 다시다를 더 많이 사먹는 것일까? 몸에 좋지 않은데. 중요한 상식을 배워서 기록해놓는다. 1년 후면 현진오빠보다는 더 잘 알 수 있겠지.


밤에 주방식기들을 정리하면서 내일 치를 주방전쟁을 준비했다. 꼬박꼬박 주말마다 밥해주는 사람들, 참 고맙다. 다른 때보다 몇 배는 고된 일이다. 5번 당번 해달라고 하면 꼬박꼬박 써주는 사람들도 고맙다. 주방의 우렁각시들*^^* 말하진 않아도 다 느끼고 있답니다~ 이렇게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연구실이 굴러가는 것이다. 기계 마디에 기름칠을 칠하듯이 말이다. 연구실에 와서 달군에게 크게 배운 것이기도 하다.


밥하느라 지친 당번들을 위해, 주방의 스피커가 설치되었답니다! MP3나 노트북을 가져가시면 알흠다운 BGM을 깔고 우아하게 밥을 하실 수 있어요. 많이 애용해주세요.



1월 25일


(중략)


오늘의 저녁당번, 시연 & 기원.

일명 야채즙 자매다. 동종업계 종사자의 가열찬 팀웍을 기대했다.


이날의 메뉴는 떡 만두국 + 정화스님 강의 때 채운쌤이 졸인 사찰식 우엉조림의 세속적 리메이크였다. 우엉조림은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문제는 떡만두국. 이 만두로 말할 것 같으면, 지지난 주말, 간만에 얼굴을 내비친 대중지성 삼총사(신나리+황지연+김범철)를 위해 즉석에서 급조해 낸 메뉴다. 남은 두부와 부추를 가지고, 네이버를 뒤져가며 훌륭한 만두 속 만들기에 성공. 그런데 모든 게 완벽했으나 마늘을 아낌없이 넣은 바람에 마늘 만두가 되고 말았다. 이후 2주간 냉실서 잠자고 있던 이들을 오늘 꺼냈다. 명절 분위기도 내볼겸, 모처럼 국물이 그립기도 하고...


그런데 그 만두가 죽이 되어 돌아왔다. 냄비 속을 부리나케 뒤져보아도 만두의 형체를 한 것은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구우 왈 "이럴꺼면 그냥 만두 속을 넣고 끓이지 왜 굳이 빚어서 끓이느라 고생인가" 맞는 말이다. 마늘만두죽을 앞에 넣고 둘러 앉은 우리는 '기본 두 그릇 필수'를 되뇌며 우적우적 떡만 그득한 그릇을 휘져었다. 흉흉한 민심에 주눅 들은 가엾은 당번들은 감히 겸상도 못하고 멀찌감치 만두죽을 들이켰으니, 이로써 부덕한 오행주방의 실체가 만 천하에 까발려진 셈. 어쩌랴, 이 모두 부족한 매니저의 탓인 것을. 죄 없는 밥당번들이 주늑드는 일 없게,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할 것이며 해야 한단 말인가!

내일은 그래도 제리-철현의 탄탄한 라인업이 기다리고 있으니, 일단은 안심. 부디 따끈하고 달콤한 정통 마파두부를 맛볼 수 있길. 


밤 열한시. 마음을 졸이며 미주유통에 내일 배달받을 식재료 리스트를 넘겼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깜깜하기만.



1월 26일


어제 달군의 기대가 헛되게 되었다. 오늘 철현오빠의 요리는 20% 부족했다. 무국에 그만 멸치다시를 넣어버린 것. 덕분에 국이 몹시 비려졌다. (이것은 군대식 무국인가) 그러나 오빠를 탓할 것만은 아니다. 나라고 무국에 멸치다시를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는가. 공부가 필요하다...


(중략)


영대 + 철현의 조합. 저번주에 이어서 이번주도 계속된다. 개그콤비다. 철현오빠는 빛의 속도로 요리를 하는 반면, 영대오빠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방관을 하고 있는가!) 저번주에는 쓰지도 않을 우엉을 미리 다듬었고, 오늘은 제리쌤이 삶아놓은 식기를 씻었다. 원래 내가 해야 하는데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했다ㅋㅋㅋ


유쾌하지만, 주방의 실력향상에는 해악이 될 조합이다. 2월에는 도화당원들이 투입되어 둘 사이를 갈라놓으리.



1월 27일


오늘 점심 당번은  하귀영 쌤과 근영쌤이었다. 11시 전에 와서 주방 점검하고 식단 및 재료를 체크했어야 했는데 늦게 오는 바람에 전달사항을 하귀영쌤께 바로 전화로 얘기하고 말았다. 그것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든 문제가 터지고 만다. (정신차리시게 SD)


여러가지 반찬들 이것저것 내었는데 (동치미, 시금치, 우엉, 마파두부, 멸치, 김치 등) 버섯배추전골과 더불어 풍성하다면 풍성한 점심이었다. 그러나 밥이 풍성하다는 건 반찬 가짓수만은 아닌 것 같다. 갓 새로 한 밥과 나물, 김치, 뜨뜻한 국물만으로도 훌륭한 식사가 될 수 있는 걸 아는데.... 다양한 식단을 고민하기에 앞서 튼실한! 기본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