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휘청거렸던 올 여름이었는데 이제 무더위도 한풀 꺾였나 봅니다.

밤 공기가 많이 시원해 지지 않았나요~?

다들 다시 힘내시고 지나갈 여름과 다가올 가을 따라 잘 흘러가시길^^

으쌰!

 

*상영시간 변경합니다.

8월 26일 일요일 저녁 "7시 30분"

(청지 수업 후 저녁식사와 청소시간이 있어서 7시는 빠듯하기 때문에 7시에서 7시 반으로 시간 변경합니다.

시간이 좀 늦어진 감이 있지만- 감수하고서라도 영화를 보러 와 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더욱 가까이 느껴지겠죵♥ )

 

다다음주 일요일에 상영할 영화는

미국,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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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1979년에 153분짜리로 처음 개봉했었는데 새로운 장면을 추가하면서 전체적으로 재편집해서 2001년에 재개봉(<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이건 무려 202분짜리라는. 둘 중에 어떤 버전을 볼지 아직 배급사와 협의 중에 있습니다.(ㅋㅋ) 좀 무거울 수도 있지만 예전에 이 영화 오프닝을 굉장히 멋지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몹시 기대중이라는!

개인적으로는 오늘 영화 공지할 겸 자료를 찾아보는 일도 굉장히 재밌었어요.

작품, 감독, 배우들 하나하나 어마어마한 스토리들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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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간략한 줄거리>

  미 특수부대의 윌라드 대위(Captain Benjamin L. Willard: 마틴 쉰 분)는 지리멸렬한 전쟁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무언가 새로운 임무를 맡기를 원한다. 그런 그에게 떨어진 임무는 미국의 전설적인 군인이었던 커츠 대령(Colonel Walter E. Kurtz: 마론 브란도 분)을 제거하라는 미군 당국의 비밀스런 지령. 커츠 대령은 이미 군의 통제를 벗어나 캄보디아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부대와 왕국을 거느리고 있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정부의 기밀임무를 맡은 윌라드 대위와 아직 전쟁의 실체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4명의 병사들은 커츠 대령을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들은 우선 캄보디아로 흐르는 강을 타기 위해 킬고어 대령(로버트 듀발 분) 부대를 만난다. 서핑을 위해 전투를 벌이는 광적인 서핑매니아이자 바그너의 '발퀴레'선율을 타고 적에게 포탄을 퍼붓는 킬고어 대령은 윌라드 일행의 첫 모험을 흥미롭게 만든다. 또한 연료부족으로 정글에 갇힌 플레이걸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처참한 전투와 보이지 않는 적의 습격은 윌라드 일행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오고 그들은 점차 이성을 잃어가게 된다. 여기에 식민지 시대의 삶을 고수하고 있는 프랑스인들과의 만남은 그들에게 이 전쟁에 대한 실체를 깨닫게 한다.

  마침내 윌라드 일행은 생사를 뛰어넘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잘려진 머리와 썩어 가는 몸뚱이들이 산재한 곳. 윌라드 대위는 이 잔혹한 왕국의 신으로 군림하는 커츠 대령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베트남 전쟁의 도덕적인 딜레마와 악몽을 들으며 점점 미쳐가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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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전쟁 영화들의 이미지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지 않나요?

단지 직접적인 야만과 잔인함으로 다가오는 폭력의 방식이 아닌 것 같아요-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코폴라만큼 심한 부침과 영욕을 경험한 사람도 드물다. 그의 전성기는 70년대였다. <대부>로 영화사의 흥행기록을 깨며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비평적 찬사를 잃지 않았고, 미국에서 예술영화 붐이 일었던 70년대 중반에는 미국 예술영화의 최전선에서 <대화> 같은 걸작을 빚어냈다가 <지옥의 묵시록> 이후엔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몰락한 뒤, 안간힘을 써왔지만 다시는 70년대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코폴라는 마틴 스콜세지,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영화악동(무비브랫)으로 불렸다. 현장이 아니라 대학에서 먼저 영화를 배운 엘리트 영화광 출신답게 이들은 유럽예술영화풍의 작가주의영화나 영화사적 지식으로 무장한 새로운 영화를 선보였다.

 

 Michael-Jackson-Francis-Ford-Coppola-and-George-Lucas.jpg   (왼쪽부터 마이클 잭슨,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뉴욕 변두리에서 이탈리아계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UCLA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코폴라는 무비브랫 중에서도 가장 지적인 배경을 지녔다. B급영화의 대부인 로저 코먼에게서 영화실무를 배우며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만들기도 했던 코폴라는, 1963년 코먼이 프로듀서를 맡은 최초의 장편영화 <디멘시아 13 Dementia 13>을 만든다.

 1966년 UCLA의 지원으로 부모의 과보호 아래 자라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넌, 이제 어른이야 You’re a Big Boy Now>를 2년 뒤 워너브러더스가 배급하면서 할리우드 메이저와 첫 인연을 맺는다.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만든 첫 영화 <피니언의 무지개 Finian’s Rainbow>(1968)는 많은 제작비를 들였으나 흥행에선 실패했다. 억눌려 살다가 가출하는 여인의 이야기 <레인 피플 The Rain People>(1969)은 개인적 취향이 강한 소품이지만 깔끔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몇 작품의 상업적 실패를 맛보고 있던 코폴라는 1972년 <대부 The Godfather>를 만들어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이탈리아계 마피아 패밀리의 흥망을 다룬 마리우 푸조 원작의 영화가 코폴라에게 맡겨진 것은 이탈리아계라는 것이 감안된 선택이었다. 코폴라는 빚을 갚기 위해 억지로 연출을 맡았으나 결과적으로 그는 엄청난 명예와 부를 쥐게 됐다.

 ‘한시대와 마피아에 관한 웅장한 서사시’라는 비평적 찬사도 쏟아졌다. 2년 뒤에 만든 <대부 Ⅱ>는 오스카상 6개 부문을 석권하며 “1편보다 더 위대한 속편”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비할 수 없는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준 두 대작보다 그에게 더욱 명예로운 작품은 <대화 The Conversation>(1974)였다. 도청으로 먹고 사는 한 미국인의 창백하고 불안한 생활을 묘사한 이 영화는 “미국 대중영화와 유럽 예술영화의 좋은 점을 고루 가진 걸작”이라는 평가 속에 코폴라를 미국 예술영화의 기수로 부상시켰다.

 상업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하늘을 찌를 듯했던 코폴라의 기세는 70년대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제작사 조에트로포사를 창립해 젊은 감독들의 제작을 도와주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졌고, <지옥의 묵시록 pocolypse Now>(1979)의 악몽을 거치면서 그의 예술적 에너지는 급격히 고갈되는 것처럼 보였다.

 베트남전쟁의 경험을 그야말로 악몽으로 묘사한 <지옥의 묵시록>은 거대한 스캔들이었다. 제작비 3천만달러를 들인 <지옥의 묵시록>은 촬영시한을 끝없이 어겨가며 필리핀 정글에서 1년을 보낸 코폴라와 제작진 전부를 패닉상태로 몰고 갔고 그들의 이상한 몰골은 매스컴의 화젯거리로 다루어졌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제작비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리긴 했지만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가진 지나친 자기탐닉증에 비판적 언사를 보냈고, 코폴라도 이를 수긍했다.500Coppola1.jpg

 80년대 들어 코폴라는 계속되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원 프롬 더 핫 One from the Heart>(1982) <럼블 피시 Rumble Fish> (1983) <아웃사이더 The Outsiders>(1983) <카튼 클럽 The Cotton Club>(1984) <페기 수 결혼하다 Peggy Sue Got Married>(1986) <병사의 낙원 Garden of Stone>(1987) <터커 Tucker: The Man and His Dream>(1988) 등을 내놓으며 쉼없이 작품활동을 했지만 어느 것도 70년대의 미학적 성취에도 상업적 성공에도 전혀 미치지 못했다.

 마치 70년대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듯 만든 <대부 Ⅲ>(1990)는 어설픈 안간힘이라는 비아냥만 낳았다. 안쓰러운 그의 안간힘은 계속돼 <드라큘라 Dracula>(1992)를 낳는다. 팀 버튼의 고딕 미장센과 <샤이닝>의 공포를 결합하고 MTV적 속도감까지 불어넣으려 했으나 이 영화 역시 스타일과 주제의식이 어울리지 못하는 범작에 머물렀다.

 4년 뒤에 내놓은 <잭 Jack>(1996) 역시 범상한 휴먼드라마였다. 다만 <레인메이커 The Rainmaker>(1997)는 정의감을 버리지 못하는 젊은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단순한 드라마지만, 인물 묘사와 극의 리듬에서 대가다운 원숙함을 보여, 이후 코폴라의 행보를 주목하게 만든다. 영화감독사전, 1999                                                                                       (출처: cine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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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폴라 家라고 불려도 될정도로 온 집안이 식구들이 영화 감독, 배우, 디자이너, 작가, 지휘자 등으로 가득하다는.

(코폴라 감독의 조카 니콜라스 케이지, <마리 앙뚜아네트>의 감독 딸 소피아 코폴라, 영화감독 여동생, 조카들... ㄷ)

 

 

8월 26일 일요일 저녁 7시 반입니다!

잘 기억해 두셨다가 다다음주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