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층과 생명 : 도덕의 지질학을 위하여 후기

 

 

 생물학적으로 작게는 양자, 좀 더 확장하면 박테리아와 결합한 세포, 그리고 DNA 정보를 가진 핵산과 단백질로 구성된 유기체인 인간기계가 있다. 사회체에도 나무 모델과 리좀 모델이 공존하며 서로 관계하고 있듯이, 인간기계역시 두 모델이 공존하고 있다. 이들의 관계는 바이러스와 생물체가 한 몸체가 되는 진화의 과정처럼 역동적이다. 인간기계를 하나의 배치로 볼 수 있다면, 인간기계는 수많은 생명의 역동적 패치워크들이 매순간 변해가며 진동하고 있다. 생물학적 차원에서 이미 인간기계는 양자, 박테리아, 단백질 이런 것들이 서로 진동하는 곳이다. 생명의 역동성은 인간이라 불리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인간만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단지 언어를 이용하여 물질을 코드화하는 방식으로만 이해를 하는 인간의 능력이 ‘인간’이라 칭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기계뿐만 아니라 지구기계 자체엔 물질과 비 물질들로 가득하다. 물질과 비 물질들이 지구기계라는 몸체를 토성처럼 혼돈 속에 있다가, 빽빽해지면서 지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어떤 지층과정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비결정화의 여백처럼 물질 혹은 비 물질들이 환경과 연합하여 공명과 잉여의 시스템이 작동하여 구성됨으로서 지구의 지각인 지층, 인간 그리고 동식물이 되었다. 물질의 결합 방식이 결정되어 있었다면 기독교의 천지창조 말고는 달리 무수히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렇게 물질, 비 물질들의 규정되지 않은 흐름이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화되고 빽빽해지는 현상을 지층화 혹은 성층 작용이라 한다. 물질이 지층화하는 과정은 항상 이중분절이다. 이중분절은 내용과 표현의 층위 두 곳에서 일어난다. 내용과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실체들이 형식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모든 유기체 무기체 지층들은 이중분절의 결과이다.

 유기체 지층은 비유기체 지층보다 좀 더 복잡하게 여러 층을 가진다. 물리-화학적층이라고 하는 형태발생의 층위와 세포화학의 층위가 있고, 유전자라는 세 번째 층위가 존재한다. 들/가의 따르면, 유전자의 층위에서 내용(영토 차원)과 표현(코드 차원)이 각각 자율성을 획득한다. 유기체인 인간기계는 자율성으로 가득한 존재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광물, 물, 공기 같은 무기체 지층의 내용과 표현은 각각 자율성을 가지 못할까? 유기체가 무기체와 연합한 환경에서 공명과 잉여의 시스템으로 진화해왔다면, 유기체 무기체를 가리지 않고 모든 물질들은 자율성을 가져야 되는 것 아닐까?

선생님께서 감시와 처벌의 예에서, 자율성의 개념을 설명했다. 감옥지층은 내용의 차원(비 담론. 신체적)과 표현의 차원(담론. 비 신체적)이 각각 자율적으로 발달 혹은 생명처럼 활동하다가 각 차원의 어느 하부분이 결합하여 탄생한다는 의미에서 자율성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유기체든 무기체를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럼으로 인간이든 인간이 생활하는 사회든, 모든 것이 이중분절의 결과이다.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이중분절의 차원을 유기체인 인간의 차원으로 영역을 한정해보자. 들/가는 이중분절의 개념을 인간과 사회의 차원까지 확장한다. 그리고 사건과 현상 등을 인식하는 다른 사고의 틀을 인간에게 선사한다. 내용의 차원을 기계적 배치, 그리고 표현의 차원을 언표적 배치로 발전시킨다. 하나의 사건(지층)은 자율성을 가진 두 차원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각 차원은 일대일로 환원되지 않고, 각 차원 간에 어떤 접속이 발생하게 될 때 사건(지층)이 만들어진다. 이 방식은 사건(지층)의 원인이나 사건(지층)이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기존의 인과론적이며 3차원적 파악 방식과 다르다. 사건(지층)을 구성하는 두 차원이 또는 각 차원의 구성물들 서로가 어떻게 작동․접속하는지, 무엇이 사건(지층)을 견고하게 하는지, 사건(지층)으로부터 도주하는지 파악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작동방식과 운동방식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보자. 소화불량이란 사건은 내용의 차원인 위, 소화를 도와주는 간, 음식물 분쇠 속도, 식생활 습관과 표현의 차원인 서양의학, 동양의학의 두 개의 차원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인과론적으로 본다면 서양의학이든 동양의학이든 나름의 의학적 증상 판별 방식으로 소화불량이라 판정하고, 사건 해결 방식을 처방전으로 제시할 것이다.

들/가의 방식은 소화불량이란 사건(지층)의 내용과 표현의 두 차원이 어떻게 접속되었는지, 각 차원의 구성물들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사건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작동방식이 중요하지 사건을 하나의 관점으로 파악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왜 그럴까? 사건을 인과론적으로 보는 방식은 사건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경제위기이후, 불황의 해법을 기업과 정부는 고통분담과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다. 이 해법은 나의 기억으로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계속되었다. 데이비드 맥낼리 라는 캐나다 진보정치 경제학자가 쓴 “글로벌 슬럼프”의 주장은 정부와 기업의 주장에 비해 파격적이다. 그는 2008년도 사건을 마치 들/가리가 사건(지층)을 분석하듯 사건(지층)을 만들어낸 것들의 작동방식을 파악함으로서, 지금의 불황은 자본주의체제의 본질적 문제라고 2008년 사건을 해석한다. 식상한 정부의 해석보다 맥낼리의 견해는 적어도 좀 더 입체적이란 생각이 든다. 정부와 기업의 지층으로 부터 탈영토화 했다. 불황을 체험하는 우리는 무엇이 2008년 사건(지층)을 견고하게 하는지, 자본주의체제 작동방식이 어떠한지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인과론적으로 사건을 분석하는 방식은 사건의 한 부분만을 보게 하기 때문에 들/가리는 사건(지층)을 이중분절의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사건(지층)에 대한 입체적 해석은 비 자율성으로 가득한 차원과 차원의 구성물들의 잠재성을 파악할 수 있기에 놀라운 힘을 가진다. 쉽진 않겠지만, 어쩌면 기업과 정부의 발표에 의존하지 않고 지금의 불황으로부터 탈주할 가능성을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질문:

1. 절대적 탈영토화와 관련된 질문인데,“우연적 관계 속에 연다. 자율성을 보장 한다”의 의미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습니다.

2. 내용과 표현의 두 차원 관계로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너무 어렵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우선 너무 복잡합니다. 어떻게 환원관계가 아닌 상태로 분석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감시와 처벌을 공부하면 알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