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하나도 없었다.

막막하고 깝깝하다는 느낌도 없고 그냥 백지 상태였다.

푸코 철학을 배울 때 들뢰즈의 이름을 몇 번 들어서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고

채운샘 강의를 더 듣고 싶어서 신청했다.

강의 인터뷰에서 삶을 TRY 하라는 말을 듣고 시작하여

벌써 다섯 번의 강의를 듣고 마지막 강의만 남았다.

 

사실 그동안 TRY 하기를 잊어버린 채 강의를 들은 듯하다.

후기를 쓰라는 명을 받들고 지난 강의안과 인터뷰 내용을 다시 읽어보았다.

 

리좀과 나무, 흰 벽-검은 구멍의 얼굴, 전쟁기계, 홈 패인 공간과 매끈한 공간 등등

너무 생소하고 이상해서 머릿속을 발칵 뒤집어놓는 들/가의 개념들이 둥둥 떠다닌다.

그리고 개념의 바다에서 살포시 가라앉은 TRY 라는 과제.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는 -되기. 그리고 기존의 틀을 비틀고 깨부수는 질문하기.

 

천개의 고원의 들/가도, 청지 철학 시간에 배우고 있는 융도, 시스룩 고문 채운샘도

사유의 틀에 갇히지 말고 지층을 뒤흔들라고 말한다.

하지만 틀과 지층은 아무리 내가 거부하더라도 존재하고

난 벗어나겠다고 하더라도 난 틀 안에서 지층 위에서 사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거부하고 벗어나는 것 자체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더 문제지만)

틀과 지층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교란시키는 데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망상과 환상이 아니라 현실적·실재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구멍을 내겠답시고 그동안 배운 것들을 무작정 들이밀고 있다.

그러다보니 머릿속이 엉망진창 조잡해지고 자꾸만 비현실적인 꿈으로 빠지고 만다.

점점 틀과 지층이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어떻게 하면 조잡하고 비현실적이지 않은 섹쉬한 질문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요~!

질문을 던졌다가 너무 유치하게 느껴지고 머리만 복잡해져서

자꾸 생각을 더 밀고 나가지 않고 질문을 거둬들이게 돼요.

조잡하기만 하고 맥없이 허무하기만 한 꿈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얼 조심해야 하나요?

아직 어리고 잘 모르니까 질문들이 조잡한 건 자연스러운 건가요?

비현실적인 질문이라도 되는대로 끌고 가 터무니없는 답이라도 내보는 게 의미 있을까요?

철학하는 데 있어서 빠지면 안 될 함정들은 무엇인가요?

 

질문들이 막연하고 추상적인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