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7. 25 / 정화스님 금강경 강의 세 번째 시간 후기 / 미료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반드시 어디에도 얽매인 바 없이 마음을 내야 한다)

 

  금강경을 여는 수보리 장로의 물음.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마음을 낸 선남자 선여인은 반드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이제까지의 강의를 생각하면, 이 물음은 이렇게 풀 수도 있다. “기억에 기대어, 업으로서 살기를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물음은 어떻게 터져 나온 것일까. 조금, 소급해가보자. 반복되는 생각, 반응, 삶. 이 사건과 만나면 기쁘고, 저 사건과 만나면 슬프다. 우리에게 닥치는 사건에 말려버린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사건(돈을 많이 버는 것일 수도 있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걸 수도 있고)이 일어나기만을 바라고, 일어나게 하기 위해 애쓴다. 또 그 특정한 상태가 아닌 삶에 절망하고. 그래서 인생은 참 ‘내 맘대로 안 된다’고들 한다. 여기서 ‘내 마음’은 무엇인가? 내 바램. 내 욕망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어떤 것을 바라나? 욕망하나? 내가 그 욕망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나 개인의 것만이 아닌)욕망의 기억들로 구성된 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욕망을, 바램을 충족하기 위해서 산다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애초에 그 욕망들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하여 기억한 것이고. 살기 위해 욕망했고 욕망에 따라 산다.

  그런데 붓다는 묻는다. 그것이 “삶을 이롭게 하고 있는가.” 그렇게 살아 “삶이 평화로운가. 고요한가. 자유로운가. 괴롭지 않은가.”라고. 위와 같은 방식으로는 그럴 수가 없다, 고 그는 통찰했다. 그렇다. 우리는 욕망 때문에, 바라기 때문에 괴롭다. 속이 끓고 애가 탄다. 우리는 욕망에 마음을 내고, 그래서 욕망이 곧 내 맘인 줄 안다. 그런데 “내 맘대로 안 된다”고 할 때의 그 내 맘(욕망)이 진짜 내 맘인가?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가?

  정화스님은 마음을 ‘알려진 것’‘아는’활동으로 구분해 설명하셨다. 알려진 것은 내 감각과 의식(意)이 파악한 지각들(정보들)이다. 이는 아는 활동의 조건, 인지 조건이다. 우리는 이 알려진 것으로 안다. 그리고 그 알려진 것, 기억은 우리의 욕망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니 인간은 인간이 욕망하는 것을 인지한다. 기억의 형식은 ‘언어’. 그 언어의 특징을 정화스님은 ‘시공간을 점유하는 어떤 실체를 상정하는 것’이라 하셨다. 바로 법法(언어를 곧 법이라고도 하고)이다. “우리는 언어로 표현된 ‘법法’이라는 사유의 매개체를 통해서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가 사물, 사건을 ‘법’으로 이해한다는 데 있다. 생명은, 연기하는 사물 ․ 사건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특정한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법’은 그 중 특정한 부분을, 일반상相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이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니, 이 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다가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로인한 다툼에 중관학파가 내놓은 것은, ‘법’은 空하다는 것. 우리에게 알려진 것, 우리의 앎의 조건들은 허망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을 이해한다는 것, 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언어에 대응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아, 언어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사고할 줄 아는 것이다. 알려진 것으로서 아는 게 아니라면? 이제 기억에 기대지 않는, 안다는 활동만이 작용한다. ‘안다’는 마음 작용의 조건인 ‘욕망’, 그것만이 곧 ‘마음’이 아니다. 인지 조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마음이 작용한다. 어디에도 얽매인 바 없이 마음을 낸다(무소주이생기심無所住而生其心).

  그것을 훈련하는 건 내 몸과 마음의 기억들이 부산하게 떠오를 때, 그것을 지켜보는 것. “사물, 사건에 부착된 이미지를 객관화시켜 보면 이미지에 접근하는 마음의 상태가 달라진다.” 정화스님은 이 지켜봄을 통해서, 사건에 대한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진다고 하셨다. 이 훈련을 거듭함으로 반드시 어디에도 얽매인 바 없이 마음을 내야 한다!(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이런 부분(특히 이번주 특이체험에 관한 부분들)을 들으면 솔직히 경험해보지 않은 나로는 감이 안 온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것이 수련이 되게 하려면.. 내가 글을 쓸 때에, 내 생각의 길이 어디서 막히고 어디서 후다닥 가버리려고 하는지. 무슨 전제로 이렇게 썼는지, 차근차근 보아야한다고. 이번 후기는 주제를 못 잡고 완전 헤맸다. 헤매면 생각을 마주할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꼬인 생각들에 말려버리는 미료인생..ㅠ 청산하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