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自性/無我  무자성, 무아는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비생명들은 반드시 외부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연기적인 조건 안에서만 존재 가능하고,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반면, 自性과 我는 인도의 아트만과 같이 외부관계가 필요 없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것과의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체다.

 

 그렇다면 자성과 아는 어떻게 생기는가?

  인식은 인식하는 주체인 인식주관과 인식되는 대상인 인식객관으로 이루어진다. 보통, 우리는 외부에 변하지 않는 대상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으로 사물을 감각하면, 외부대상을 보는 심리적 조건인 의식이 감각된 대상을 해석하고, 우리는 그 해석된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대상을 인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마음은, 내가 살아온 기억들의 총합이다. 여기서 기억이란 나의 일생의 것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 자체, 우주적 조건에 의해 형성 된 것이다. 마음 뿐 아니라 나의 몸은 우주 형성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한다. 마음을 구성하는 아뢰야식은 인식 주관이고, 종자는 인식객관이다. 종자는 잠복해 있다가 인연을 만나면 드러나는 것으로 ,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기억 중 인간의 조건에 맞는 기억들만 우리의 몸으로 드러난다. 우주가 담고 있는 기억들, 그것이 나의 인식을 만들어 낸다. 우주의 기억과 더불어 인식이 형성되는 것. "기억"이 대상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인식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현재의 사건과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미지를 고정화 하게 된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대상을 인식 할때와 명상을 통한 집중으로 대상을 인식할 때는 확연히 그 차이가 드러난다. 눈과 형색이 만나는 '조건'이 달라지면 보이는 형색이 달라진다. 형색 이라는 것은 자체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해석에 따라 그 보이는 모습이 달라진다. 사물에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무자성, 무아 라면 인식할때, 개념과 가리키는 대상은 일치할 수 없다. 조건이 달라지면 대상이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 의식이 달라지면 형색이 달라진다. 이와 같이 아는 것을 반야라고 한다. 사물이 내가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외부의 대상을 어떤 기억을 가지고 해석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기억이 일어난 곳으로, 자기가 자기를 인식 하는 그곳으로 가서 내가 만들어낸 내부의 인식객관인 相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 그렇게 인식객관이 사라지면 인식주관도 사라진다.

 이렇게 어떠한 이미지와 마음이 모두 사라진 상태를 空이라고 한다. 여기서 이제 진리에 도달했다고, 드디어 깨달았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존재는 空이라는 상태로조차도 머물 수 없다. 空 또한 근원적인 실체가 아니다.  존재의 실상은 空과 相 어느 곳에도 계속해서 머물러 있지 않는다. 공도 아니고  상도 아닌,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법도, 이것만이 불법이라고 말할만한 相이 없다. 언어로 표현된 개념과 존재의 실상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열반'의 개념을 잘 안다고 해서 열반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존재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열반'이라는 한 가지 이미지를 끌어 낼 수 없다.  한 개인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리고 과거의 이미지에 매이지 않는 삶. 그것이 깨닫는 삶이다.

 

 불교는 깨어있는 수행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이다. 사건과 사물에 특정한 상(이익, 손해, 칭찬, 비난)을 따라가지 않고 행위하는 것으로, 과거의 기억으로 판단하고 행위하지 않도록 행을 닦는다 하여 수행이다. 실체적인 사고가 지배했던 때, 불교가 비실체적인 사고를 들고 등장했던 것처럼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마음 조작. 허물을 살펴보면 청정한 자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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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기억에 끄달리지 않고 인식하고, 사유한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존재의 실상은 연기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무자성이라면, 왜 인간은 기억을 버리지 못하고 구지 그것을 잡아서 계속해서 끌고 가려고 하는것일까. 존재는 무자성, 그리고 몸과 마음은 우주의 조건에 의해 형성... 인식은 우주적 조건에 의해 형성되었다. 기억, 인식 또한 조건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계속 고정된 상을 가지고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정리한다고 했는데,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다. ㅠㅠ 

 그리고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다른 종교들과 달리, '불법도 버려야 한다'  '공 조차도 실체가 아니다' 라는 스님의 말씀은 4주동안 들어온 금강경 강의 동안 일관되게 마음을 울리는 것들이었다. 이것이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진리에 대한 의심을 허락한다. 그로 인해서 나, 그리고 우리들은 '대단하게 보이는 것들을 깨뜨려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해도 되는구나.' 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