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여, 네 몸을 알라

 

  생명의 차원에서 누구보다 내 몸을 잘 아는 것이 내 몸을 존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동의보감>은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각각 '양'과 '음'이라는 '기운의 배치'로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양'과 '음' 중에 '양'이 더 우월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사실 <동의보감>은 남성의 몸을 일반적인 경우로, 여성의 몸은 특수한 경우로 보고, 여성의 몸에 관한 부분을 따로 분류해서 다루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남성보다 열등한 신체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해서 의학적인 설명을 좀 상세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한편 현대의학에서는 자신의 다리를 쫙 벌리고 눕는 여성 환자와 여성의 다리 사이를 들여다보는 산부인과 의사의 기이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병만을 찾기 위한 시선!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면 이런 수치스러운 자세를 환자에게 요구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또 왜 여성은 수치스러워하면서도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이렇게 함부로 다루도록 허락하는 것일까요? 수업시간 내내 발견한 것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병이나 지금의 외적인 미의 기준에서 내 몸을 바라보면서 내 몸을 소외시키고 있었던 거예요.

  예를 들면, 저한테는 생리통은 없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는 얘기가 충격이었습니다. 보통 생리통은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고, 고통은 원래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라고 듣고 그대로 믿었거든요. 문제는 생리통에 대한 정보를 몰랐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인식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지를 모른다는 것. 그것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외모에는 그렇게 신경을 썼으면서 '왜 나는 이렇게 생리통이 심할까? 내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내 생활 습관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알아야하는 지를 아는 것'이 지혜인 것이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앎이 내 생명을 존중하도록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그런 앎은 의심해봐야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