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늦은 느낌이지만 복습하는 의미로 제리쌤의 강의 후기를 올립니다. ㅎㅎ;;

 

몰랐던 사실인데, ‘atomic sunshine' 라는 것이 원자력의 햇빛이라는 것을 뜻했더군요. 이것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아토믹 선샤인 속으로-일본국 헌법 9조 체제하의 전후(戰後)미술이라는 이름의 전람회”(한겨레, ‘아토믹 선샤인과 오키나와의 그늘)에서 쓰였다는군요. 자세한 내용은 좀 더 공부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강의는 밀양 이치우 할아버지의 분신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효율적으로 가져오기 위해 송전탑을 짓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보상금을 주고 쫓아내려 했지만, 조상에게서 물려받고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던 그 땅은 이치우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한평생 국가에 대한 의심을 품어오지 않으셨던 이치우 할아버지가 국가에 의해 땅에서 쫓겨났을 때 느낀 감정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하고 싶은 내용은, 이치우 할아버지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분신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사건들은 정당한 법집행으로 포장된 폭력이 자행된다는 점에서 강정, 용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폭력을 정당한 법집행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뿐일까요? 우리 역시도 각자가 폭력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살아있는 인간이 자신의 생명에 대해 가지는 주권은 즉각 어떤 경계선의 설정, 즉 그것 너머에서는 생명이 어떤 법적 가치도 갖지 못하며 따라서 그러한 생명을 죽여도 살인죄로 처벌 받지 않는 어떤 경계선의 설정을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호모 사케르, 268)

그렇다면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남습니다. 4대강 공사반대나 FTA 반대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항상 냄비정신으로 들끓어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지는 분노가 정말 필사적인 분노였을까요? 이번 집회에 한 번 참여하고 마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저항일까요? 만약 그 사람들이 이치우 할아버지처럼 자신의 온전한 믿음이 깨지는 경험을 한 뒤에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문제의 상황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필사적이 되겠죠. 너의 문제에서 내 문제를 끌어내고 추적해나가기, 그 균열을 더 넓히고 그간의 믿음을 완전히 타락시키면서 실로 근본적인 문제와 마주하지 않을까?”(!5)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서명운동 하고, SNS에서 같이 화를 내고, 대모행진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내 문제를 포착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연대를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것이 아닐까요?

강의를 듣고 나서 내 문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부터 주거 공간, 먹거리, 교육, 일자리 등등 너무 많은 문제들이 저와 엮여있었습니다. ㅋㅋ;; 그래서 이제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연대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가 할 수 있는 연대는 그렇게 시위를 계획하고 사회적 혁신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 모임에 참여하고, 이렇게 남산강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에 타오르고 마는 거대한 집회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소소한 연대가 아닐까합니다.

강의안의 쪽수가 15쪽이나 돼서 미리 겁을 먹었지만, 재미있었던 덕에 금방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나의 생활 속에서 포착되는 많은 실존적 상황들을 떠올리게 되니 마냥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연대는 지금 여기서 할 수 밖에 없는데. 꾸준히 연대하다보면 언젠가 바뀔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연대 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