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총총


< 무엇을 최선으로 할 것인가 >


“문학이란… ㅋㅋ 정말 나 같이 아직 덜 배운 민초라도 희망을 갖고 이 방대한 분량을 끝까지 읽게끔 한다.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종잡을 수 없는 전개 앞에 좀처럼 지루하지가 않았다. 영미소설을 모방한 문학에 익숙해진 오늘날, 러시아 거장들의 작품은 얼마나 신선하고 독보적인가.”

2012.10.29. SD

들어가며

  이 소설에서 특별한 기교나 도선생에게서 볼 수 있는 어떤 예민하고 주도면밀한 성찰이며 관찰은 보이지 않는다. 복잡다단한 사실들 대신 저자가 준비한 이야기는 배꼽 아래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솔한 외침들로 가득하다. ‘참을성을 요구하는 낭만이며 비관적인 방관은 이제 그만!’ 책을 읽다보면 그가 외향적이며 유난히 발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전의 고골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는 골 아프게 앉아 있는 민중들에게 무력감 대신 생기를 불어넣어주고자 한다. 비록 소설의 첫 부분은 지독히 어둡고 신파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으나 우울함은 곧 유쾌함으로 움직여 나갈 것이다. 그의 시선은 ‘지금’에 있지 않고 늘 한 발 앞에, ‘미래’에 향해 있기 때문이다.

  자살 소동과 이로 인해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연인 이야기로 시작하는 전개 자체는 줄거리 상, 큰 의미가 없다. 앞의 내용이 점점 가물가물해져 갈 때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되어서, 오히려 도통 어지럽게만 됐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이렇듯 예견된 사건의 클라이막스는 이 소설에서 줄거리 자체가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화자인 N씨(저자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가 서론을 대신하여 말했듯이 소설 속에는 독자들을 위한 어떤 ‘진리’가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저자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그의 방식대로 결론부터 미리 말해두자면 사람들의 삶이란 단순하다는 사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인간이란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이기심’으로 움직이며 민중들은 이것에 솔직해야 한다는 걸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이기심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1. 弱者 : 여성을 이야기 하는 까닭

  우선 어떤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보자. 배경은 19세기 중반, 베라 빠블로브나는 뻬쩨르부르그에서 관리인으로 가난하게 사는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인 마리아 알렉세예브나는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깍쟁이지만 딸을 귀족에게 시집보내려는 야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딸에게 기꺼이 투자할 줄 안다. 어쨌든 베로치까는 다만 황금알을 낳아 줄 ‘거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베로치까는 더 없이 헌신적인 관심을 받지만 그녀의 의사나 취미, 개성 따윈 관심 밖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모든 일들, 옷 입는 것이며 어디로 가고 누구를 만날지 등의 일들을 마리아 알렉세예브나의 지시에 일일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인형에 불과했다.

  잘 교육받은 베로치까는 정숙하게 자라서 어머니를 거역하는 법이 없었으나 미하일 일당들에게 수치를 당한 것에, 자신을 희롱하려 했던 남자와 결혼을 강요당하는 것에 분노한다. 이 모든 횡포들이 괴롭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에게 어머니를, 결혼을 진정 거부할 길은 없다. 여성이 집을 홀로 나선다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시대에 베로치까는 ‘여성’이라는 계급에 속했던 것이다. 여성이란 존재는 남성의 소유물이어야 마땅하며 가정에 속할 때만 여성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사회에 의해 가장 억압받고 개성이 희박한 존재, 사실상 러시아 사회에서 여성은 가장 무력한 민중들을 의미했다.

이 소설의 초점은 여주인공 베로치까(그리고 까쨔)가 성숙하고 독립해 가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베로치까가 로뿌호프를 통해 항간의 진보적인 지식을 배우면서 결혼을 거부하고 집을 나오게 되는 과정은 그러니까 사회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가 탈주하여 자유를 얻게 된다는 희망,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말한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혁명의 역동성을 말한다. 그러나 약자가 어떻게 기존 틀에서 벗어나 살 수 있을 것인가? 베로치까에게 자유란 단순히 기존의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2. 自由人 : 이기주의가 될 것

  로뿌호프는 베로치까의 동생 표도르를 과외 해주러 오는 젊은 의대생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잘 알고 능란하게 대처할 줄 아는 로뿌호프는 금세 마리아 알렉세예브나에게 이익을 챙길 줄 아는, 뭘 좀 아는 청년으로 호감을 샀다. 그는 미하일과의 결혼 여부로 고민하고 있는 베로치까에게 ‘먼저 무엇이 최선인지 숙고하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서 행동하고 그 행동은 늘 좀 더 우세하고 강한 동기의 영향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기심이란 행동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때 그 행동을 유발하는 자극을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란 바로 이기심의 계산된 다툼 이외의 것이 아니며 사람들은 늘 이기심의 동기와 일치되게 행동하게 마련”(142)이라는 것이다. 그에게는 ‘이기심’이야말로 행동의 근거라 할 수 있는 확고한 진리다. 이기심을 따르라! 그것이야말로 한 영혼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단 한 가지 길이다.

  미하일과 결혼하는 것을 선택하든(어머니를 거스르지 않고 얌전히 남성의 소유가 되겠다는 의미다) 아니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개인의 영혼의 자유는 오로지 자신의 마음, 자신의 이익에 응답했는가 하지 못했는가에 달렸기 때문이다. 앞서 그녀를 곤란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준 쥘리에게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단지 내가 누군가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만 알뿐이에요! 나는 자유롭고 싶어요! 나는 누군가에게 신세를 끼치고 싶지도 않지만 누군가가 <너는 너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 감히 말하는 것은 더욱 참을 수 없어요. 나는 단지 내 마음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려고 할 뿐이에요. 다름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그 무엇을 요구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요. 한마디로, 타인의 자유를 빼앗고 싶지 않아요. 나는 자유롭고 하도록 싶을 뿐이에요!”(72)


  그녀의 자유는 ‘마음을 따를 수 있는’ 것, 남들 또한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자유를 말한다. 베로치까는 어머니를 연민하는 마음과 자신에게 쏟아질 온갖 원망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집을 나왔다. 그렇게 한 첫 번째 여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당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수많은 베로치까가 이렇게 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녀는 마치 깜깜한 지하실에서 밝은 햇볕 아래로 나온 듯한 기쁨과 자유를 만끽한다. 이제 그녀는 무엇을 할 것인가?


3. 自立 : 정직할 것


“정직하라, 그것은 신중하라는 것을 뜻해. 어떤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지. (358)”


(1) 생계

  베로치까와 로뿌호프는 탈출(?)을 계획할 때부터 결혼을 마음먹고 있었고 둘이 함께 할 새로운 거처로 방이 세 개 달린 집을 구했다. 베로치까는 남편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고 가르치는 일로 돈을 벌었으며, 전부터 계획했던 봉제 공장을 세웠다. 조합으로 이루어진 공장의 직공들은 베로치까가 엄선한 정직하고 친절한 여성들이다. 공장에서 벌어들인 이윤은 모두 그녀들의 몫으로 분배되도록 했다. 곧 공장의 주인은 여직공들 자신들임을 의미했다. 이는 곧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공장의 모든 이윤은 곧 모두의 것이다 보니 공동으로 재산을 관리하게 되었고 노동조합은 신용조합과 소비조합으로까지 이어졌다. 공동 주거는 이윽고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이 ‘봉제 공장’의 존재는 베로치까에게, 여성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노동조합은 여성들이 경제적으로나 자립 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기반, 어쩌면 새로운 사회의 대안으로 구상된 것이다. 여성들은 다른 데 의존하지 않고도 정직하게 일해서 먹고 살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나갔다.


(2) 이기심

  로뿌호프와 베로치까의 동거 생활도 별 일 없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한 마음이 평온을 가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로뿌호프와의 삶이 불편한 가운데 남편의 절친, 끼르사노프에 대한 마음이 싹트고 있었던 게 발단이다. 끼르사노프는 일찍이 그 마음을 깨닫고 이들 부부의 집을 점차 방문하지 않았던 반면, 그녀는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로뿌호프는 모든 갈등을 단 번에 종식시킬 행동을 벌인다. 자살 사건은 이런 배경에서 벌어졌다. 그는 두 사람을 위해 사라져 준 것이다. 로뿌호프는 이기주의자다. 희생이란 것을 경멸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왜?

  결론적으로 그는 전적으로 자신의 이기심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말마따나, 좋아하는 것을 부정할 만큼 위선적인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에게 정직하게 행동했다. 자살 사건이 지나고 날라 온 편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대체 사교성이 고립성보다 더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게다가 이미 완성된 성격을 재조정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의 성격을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네. 그리고 그것은 결국은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네. 뿐만 아니라 재조정을 장요하는 것은 공연한 정력의 낭비로 그칠 수도 있네.”(487)


  그런 까닭으로 결별은 그에게 자유를 의미했다. 그는 오히려 베로치까가 본성을 다 드러내지 못하게 한 데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녀가 진정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외면하고 사랑이 아닌 선의로 대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선의와 편안함에 기대서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볼 줄 몰랐다.


“세 사람은 서로 견주기 어려울 정도의 대등하고 강한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그(드미뜨리 세르게이치)가 물러선 것이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강자에 대한 약자의 굴복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물론 나도 괴로워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 그가 양보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선의에 의한 것입니다. (...) 문제는 내가 드미뜨리 세르세이치의 선의에만 기대고 있었을 뿐 내 스스로 자립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괴로워했던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498-499)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남편이 사라진 후에 비로소 깨닫는다. 베로치까는 자유롭긴 했으나 자유롭게 서는 것에 아직 미숙했다. 그 증거로 이 사건에서 그녀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쩔쩔 맸던 것이다. 그녀는 한 발 한 발 진정한 민중이 되어 왔다. 자신의 이성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홀로 선 인간이 되었다.


“진정 완전한 독립 없이는 완전한 행복이란 없는 법이다.”(534)


4. 强者 : 특별한 인간

  종종 베로치까의 내면을 드러내거나 앞으로의 미래를 보여줄 때 등장하는 꿈의 암시도 재밌지만 이 사건을 둘러싸고 등장한 가장 독특한 요소는 라흐메또프일 것이다. 그는 아주 특별한 인간이다. 그는 사랑하는 것을 구속이라고 말하고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을 하는 법이 없다. 그의 임무란 누구든 구속을 푸는 것이다. 이 특별한 인간이 베로치까에게 당도했다.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이곳을 떠나려고 하는 그녀의 죄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다.


“당신의 죄가 두 가지 있습니다. 무관심과 횡포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죄는 이보다 훨씬 더 잔인한 것입니다. (...) 당신은 무책임하게 이 공장을 파괴의 위험에 내맡긴 것은 물론 그 실천적 성과의 증거를 무(無)로 돌려, 그러한 시도가 실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관념을 확산시킬지도 모르는 그러한 과오를 범한 것입니다.” (450)


  그는 사건을 분석해 나간다. 이 사태의 갈등은 ‘내연’에 있지 않다. 오히려 본질은 관계에 대한 불만이고 그 불만이란 베로치까 부부의 성격의 불화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 세 사람 가운데 누구에게 잘못이 있다거나 비난할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평범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직하고 신념이 확고한 사람들로 바로 그러한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469) 신념이란 자연의 본성, 즉 이기심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며 강자란 전체가 어떻게 그려지는지 볼 수 있는 자에 한하여 행동할 줄 아는 자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자유를 누리려면 먼저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해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희생도 있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어떤 박해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필요치 않다. 오직 행복해지도록 노력하라! 그것이 전부이다. 오직 그러한 욕망만이 요구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472)


나가며

  베로치까는 결국 끼르사노프와 재혼했으며 새로운 공장을 짓고 두번째 조합을 만들었다, ‘<평등한 권리>란 다른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강자가 되는 데 핵심이 있다, 끝!!’ 하면서 마치려고 했는데 양이 방대하다 보니 텍스트 자체만 해도 얘기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고 제대로 소화해내지도 못했다. (뭔들 제대로 소화하겠냐만은ㅠㅠ) 아쉬운 부분, 못다한 질문들은 여러분들의 공통과제들과 못 다한 구절을 낭송해 가면서 달래야겠다.





발제 할 때 특유의 긴장감 때매 덜 매끄럽게 되고 중언부언 줄거리전개만 늘어놓곤 하는 것 같다.

결국 하려던 말을 끝까지 못 가져가고, 특히나 옆가지들을 많이 놓치고. 

쩝.  가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