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16 / 2012주제학교 / 트루게네프 [아버지와 아들] / 이기원

 

니힐리즘은 왜 죽어야만 하는가

 

 이 소설이 씌어졌던 시기는 유럽전역이 1848년의 2월 혁명(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그 해 바로 있었던 12월 선거(나폴레옹3세의 대통령 당선)의 영향으로 몸살을 앓던 때이다. 인간에 대한 믿음, 자연과 예술에 대한 경외. 이러한 것들은 한낱 무용한 것들이 되어 버렸다. 진보를 외치던 사람들이 다시금 전제정치의 폭압 속으로 들어간 것은 누구의 탓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 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러시아의 폐해에 대해 계속 떠들기만 하는 것은 헛된 공론에 불과하고 그 모든 것은 속물성과 교조주의만 야기할 뿐이며, 소위 진보적인 인사들과 폭로자들로 불리는 우리가 쓸모가 없다는 것을요." "당신은 그 모든 걸 확신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진지하게 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말이군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바자로프는 우울하게 되뇌었다. 그는 왜 자기가 이런 귀족 앞에서 장황하게 떠들어댔는지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저 욕설을 할 뿐이오?" "욕설을 할 뿐입니다." "그것이 니힐리즘이라는 거요?" "그것이 니힐리즘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문학동네, p83)

 

 이 시대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러시아의 젊은이도 니힐리즘(허무주의)에 빠져버렸다. 왜 그랬을까? 젊은 세대의 눈에는 변화는커녕 점점 더 망가져 가는 러시아가 보였을 것이다. 제도, 종교, 문화 그 어느 것도 러시아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농노제도는 러시아 농노들을 비참한 상태로 몰아가거나 나태한 농노들을 생산할 뿐이었다. 종교는 어떠한가? 기독교의 내세적 구원은 현세에서의 구원을 막아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허세와 허영이 난무하는 귀족들의 파티에도 그들은 두드러기 증상을 보였다. 이런 것들로 어떻게 삶을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귀족은 귀족대로, 농노는 농노대로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엇이 러시아를 구할 수 있을까? 젊은 세대가 러시아를 변화시키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부딪힌 벽은 너무나도 컸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확인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것은 결국 '이전 세대에 대한 모든 부정' '아무 것도 하지 않음' 이었다. 스스로 선택했다기 보다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자신들도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실 그들도 모든 것을 부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연에 대한 경외, 사랑의 감정, 예술적인 것에 대한 이끌림. 이러한 것들은 전 세대나 현 세대나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인간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 대세와 자신들을 이어주는 그 어떤 연결고리들도 부정했다.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구세대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바자로프와 아르카디가 의식적으로 그런 것들을 부정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보편적 힘에 이끌릴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바자로프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적 힘으로서의 페네치카에게 키스할 수 있었고, 아르카디는 음악을 통해 자신이 카챠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자네 같은 귀족은 고상한 겸손이나 고상한 흥분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어. 다 시시한 것들인데 말이야. 자네 같은 사람들은 싸움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훌륭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그러나 우리는 싸우고 싶어. 그럼 어떻게 되겠나! 우리의 먼지가 자네들 눈에 들어가고, 우리의 진흙은 자네들의 옷을 더럽힐 거야. 자네들은 우리를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네. 자네들은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자책하는 걸 즐거워하지. 그러나 우린 지겨워. 우리에겐 깨부숴야만 하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해! 자네는 훌륭한 젊은이지만 나약하고 자유주의적인 도련님에 불과해. 우리 아버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게 전부'." (아버지와 아들, 문학동네, p284)

 

 아르카디와 바자로프, 둘 다 러시아의 니힐리즘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둘은 갈 길이 달랐다. 사회를 변혁하는데 있어 아르카디는 귀족 출신이 갖는 사회적 계급이 가질 수 없는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민계급인 바자로프의 급진성에 동의하지 않는 면이 있으면서도 무조건 그를 모방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르카디는 자신이 거부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에 동요되면서 자신이 바자로프와 같아질 수 없음을 직감했고, 바자로프도 이에 동의한다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시대의 벽에 부딪힌 순간 산산조각 날 수 밖에 없었던 바자로프. 때문에 변화의 열쇠는 아르카디에게 넘어갔다. 결혼이라는 구습의 제도를 택했지만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사랑의 방식이었고, 또 그것으로 인해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는 세계로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