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화요일. 날씨 맑음.


오늘 초반 토론은 발제문 내용에 대한 지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발제문의 경우에는 법-의학과 정신의학을 미구분하여 동의어로 쓰고 있는 반면 푸코는 법-의학은 19세기에 나타난 조악한 형태의 제 3의 담론으로서 특정한 조건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위부적 장치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비정상인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서술한 발제문의 한 구절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푸코는 비정상인이 괴물, 교정해야 하는 개인, 자위 행위자가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이르러서 ‘비정상인’이라는 하나의 특정한 범주로 통합되었으며 이것은 규격화, 정상화 권력 작동함에 따라 나타난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발제문에서의 인용구와 그 인용구를 사용하고 있는 전체 문단의 뉘앙스는 푸코에 비교해볼 때, 비정상인을 다소 초역사적인 개념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토론을 거쳤지만 결국 비정상인이 초역사적인 현상인지 19세기 유럽에서 출현한 특정한 사회적 맥락만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합치된 결론을 내릴 순 없었습니다.

발제문에 대한 지적 이외에는
1. 오늘날에는 생명권력이 다르게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푸코 이론의 현실 적용 가능성을 둘러싼 논의가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주제는 아직 정신의학이 확고한 권력을 획득하고 규격화권력이 미시적 배치를 확고히 하게 된 19세기를 다룬 푸코의 텍스트를 아직 덜 읽었고,적용되어야 할 21세기 오늘날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가 사람마다 다르고 모호하기 때문에 좀 더 숙고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2. 아감벤과 푸코가 어떻게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아감벤의 신성한 삶은 포함적 배제 됩니다. 그리고 이 포함적 배제된 예외상태로서의 삶이 주권을 성립시킵니다. 일부에 대한 배제를 통해 주권자가 주권을 획득한다는 점과 비정상인을 배제함으로써 정상인들이 정상성을 획득한다는 점을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푸코의 비정상인은 정상성을 정체화 시킨다는 데에 선차적 초점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추방이란 것도 푸코의 권력에 있어서는 나병이라는 집단적 추방 모델에 오히려 적용될 뿐 페스트 모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은 다르고 논의 범위가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3. 푸코가 잠시 언급한 부분. - '안느 그랑장 사건' 당시에 마르크라는 의사가 성기에 대한 세부 묘사를 시도하고 적극적인 임상의학적 담론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이것은 이후에 나타나는 폭발적인 해부학적 담론들의 일종의 예고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여성의 자궁은 국부로서의 인구를 팽창시키는 하나의 생산장치로 취급받고 신성시되기 시작합니다. 권력은 여성의 자궁에 작용하여 그녀들을 생산공장으로 만드는 동시에 여성의 여권신장에도 일정정도 협력합니다. 이런 점에서 19세기 이후 권력의 작동방식은 단순히 억압, 착취로만은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생산적인 면모를 띠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더 많았는데 다 적진 못하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