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영

1. 진지 버전

애초부터 고전을 공부할 생각은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꽤 오랫동안 현대문학을 할 생각도 했었고, 심지어 영문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전전하며 계속 겉돌고 있던 나를, 고전은 끈질기게 기다려주지 않았나 싶다. 그 기다림에 감복해서 진지하게 사귀어 보기로 했다, 이 한결같은 친구와.

한문 잘은 모른다. 아직도 한문을 읽는 시간보다 영어 원고 교정을 하거나, 영어책을 읽으면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그 물에서 좀 놀았던 탓이다.) 한문은 학부 3학년을 마치면서 느지막히 (늘그막에...^^;;;) 시작을 했다. 아직도 한문을 한다고 말하기엔 어림도 없는 형편이지만, 실력이 없어서 괴롭다기보다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즐겁다.

그런데 잘하지도 못하면서 굳이 공부하고 싶은 것이 고전이고 한문인 이유는 뭘까? 아주 원초적인 차원에서는 아무리 읽어도 재미있는 것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전을 몇 번이나 뒤적거리고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간신히 의미를 알 것 같은 문구나 시구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있으면 마냥 흐뭇하고, 다시 보고 싶어진다. 조금은 한다고 하는 영어로 된 텍스트나, 마치 내 살갗처럼 익숙한 한글로 된 현대의 텍스트들보다 그 텍스트들이 나에게 훨씬 많은 말들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냥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학자들이 물론 있을 터이고, 옛날이라고 해도 그렇지 않았던 문인들이 있었겠지만, 최소한 내가 읽고 감동했던 삶을 살았던, 고전 텍스트를 썼던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학문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아니라, 공부를 삶으로 삼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이 자신의 철학이 되기도 하고, 한 편의 소설이 되기도 하고, 선 굵은 역사가 되기도 했다. 이건 그들이 소설 같은 삶을 살았다거나 그들의 삶에 남다른 역사적인 의미 같은 게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에겐 삶과 괴리된, 삶 바깥의 초월적 관념이나 철학 같은 게 없었다는 말이다. 그들의 글이 그들의 삶을 투영할 수 있는 그런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추스르고 사람들과 관계맺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과정들이 그 자체로 삶이고, 그것도 아주 즐겁고도 진지한 삶이었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공부가 그런 것이기를 바라기에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현대에도 그렇게 살다간, 그리고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라며 사례를 들고 와서 보여준다면 나는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다. 아, 정말 그렇네요. 내가 고전에서 발견하고 감응한 그런 속성들이 고전만의 본질적, 배타적 속성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고전 속에서 그런 삶을 발견하고, 그 공부를 하고 싶다면, 그 부분은 인연의 탓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그 무수히 많은 다른 가능성들 속에서 어쨌든 내가 마주쳤고, 나에게 강렬히 각인된 것이 한문 고전의 드넓은 세계였다면, 그 자체로 정말 대단한 인연 아닌가? 그냥 허투루 보고 떠나보낼 수는 없는 친구 아닌가?



2. 코믹 버전
(이래놓고 안 웃기면 어쩌지?ㅡ.ㅡ;;;;)

거창한 이유 다 필요없다.
그냥 내가 "풍기폐인"이기 때문이다.
(뭔 소리인지 잘 모르신다 싶은 분들은, 교장 선생님 존함을 참고)

그리고 그냥 내 얼굴 딱 보면 안다.
고전 말고 다른 거 공부하는 게 정말 안 어울리게 생겨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