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도토리 수업이 끝나고는 대체 얘네들이 오늘 수업을 어떻게 기억할까, 오늘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궁금하더군요.

오늘 공부한 박노해 시인의 <졸음>! 일단 너무 길어서 다 베껴 쓰는데도 한참이 걸렸어요.

다 못쓴 친구들도 많고^^^

 

졸음 - 박노해

 

 

선적 날짜가 다가오면

백리길 천리길도 쉬임없이 몰아치는

강행군이 시작된다

어차피 하지 말라 해도

올라간 방세를 메꾸려면

아파서 밀린 곗돈을 때우려면

주 78시간이건, 84시간은 먹어치워야 한다

 

전생에 일 못하고 잠 못 잔 귀신이 씌었나

꼬집어도 찔러도 혀를 깨물어도

고된 피로의 바다 졸음의 물결에

꼴까닥 꼴까닥

눈앞에는 프레스의 허연 칼날이 쓰을컹 툭탁

미싱 때려밟는 순정이는

눈감고도 죽죽 누비는 자동기계가 되어

망치질하는 어린 시다

깨어진 손을 감싸 울면서도

눈이 감긴다

작업장 스피커에선

마이클 잭슨의 괴성,

조용필의 흐느낌이 지침없이 흘러 나오고

주임 과장이 악을 써대도

졸음은 밑도 끝도 없이 휘감아들어

차라리 차라리 우린

자동기계가 되었으면,

잠 안 자는 짐승이 되기를 원하며

피 흐르는 손가락을 묶는다  

아침에도 대낮에도 밤중에도

단 한순간 맑은 날이 없이

미치게 미치게 졸려,

꿈결 속에 노동하며 아직 성하게

용케도 붙어 있는 내 두 손이 고맙구나

 

시커먼 무짠지처럼

피로와 졸음에 절여진 스물일곱 청춘,

그래도 아침이면 코피 쏟으며 일어나

졸음보다 더 굵다란

저임금의 포승줄에 끌려

햇살도 찬란한 번영의 새아침을

졸며 절며

지옥 같은 전쟁터

저주스러운 기계 앞에

꿇어앉는다.

 

 

 

 

이 시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고, 자기 의견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이 시인이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얼마나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만큼 그가 서 있는 곳은 '실감' 하기가 어려운 곳이었거든요.

 

일주일에 84시간을 일하려면 하루에 14시간을 일해야 하고.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밥먹고 7시부터 일한다고 해도, 점심 저녁 1시간 씩빼고 몽땅 일을 한다고 해도

밤 10시가 되어야 일이 끝납니다.

 

남우랑 준영이는 "우리 아빠는 3일 동안 회사에 있어던 적이 있었다." "크리스 마스때 일하러 가서 안왔다."

하며 노동 정보를 고발했지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 아빠들'과 이 시인이 하는 일, 일하는 장소는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프레스가 뭔지, 미싱이 뭔지를 알게되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구절들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왠지 자신의 상상을 부정하고 싶어졌는지 정태는 수업 중에 무려 5번(?) 정도

"선생님, 이거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선생님, 근데 이 시인 손은 어떻게 됐어요?"를 물어 왔습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해야 하는데 계속 졸리니깐 차라리 잠 안자는 자동기계가 되고싶은 거예요."

엄청나게 까불거리고, 온갖 농담 경쟁을 일삼는 도토리 친구들인데

처음으로 '장난스러운'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놀랐습니다.ㅎㅎ

왠지 해결책을 주고 싶었는지  자기들끼리 토론(?)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돈을 빌려주면 어떨까요?" - "평생 먹여살릴 수 있어?"

"손이 떨어지면 로봇 손으로 붙이면 되지 않아요?" - "돈이 없는데 그 수술을 어떻게 하냐!"

"사장님이 망해서 이 일 그만하게 되면 좋겠다." - "그럼 돈 못벌잖아 바보야."

ㅋㅋㅋㅋ

결국 답같은건 찾지 못했고 시인이 서있는 그곳 '전쟁터'를 이해해보는 것으로 도토리 수업은 끝났어요.

똘똘이 영환이의 정리

"너무 졸린데 앞에는 총 날라오는 것처럼 칼날이랑 바늘이 뚝뚝 나한테 오고,

  기계는 너무 크고 저주스럽고. 소리도 전쟁터처럼 굉음이랑 신음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피가 나고, 다치고. 그래서 전쟁터에요."

 

도토리 친구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 전쟁터를 충분히 이해했는지는 잘모르겠습니다만

혹시나 비슷한 상황이나 장면을 맞닥뜨린다면 다시 생각날 것 같은 시입니다.

 

몇몇 친구들이 이 시를 외워오겠다는 도전을 했는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다음주에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