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집에서 호가 많다고 놀림 받는 이덕무에 관한 글이 있었다.

내게 이덕무에 대한 인상은 그래서 결의를 다질 때마다 꼭 호를 짓는 사람 = 티 내는 사람,

이른바 허세 덕무? 쯤으로 남아 있었다.

 

 <한서이불과 논어병풍>을 읽으니

그가 왜 수많은 호를 지으면서 자신을 다독거려야 했는지 알 것 같다.

마음은 士인데 신분은 그러하지 못했고

타협하는 대신 평생 가난을 옆에 두마 했기로서니 부침이 없을 리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비수 꽂기, 통쾌한 복수극을 연출하는 대신

이덕무는 선비의 마음가짐으로 호를 짓고 책을 읽고 자연과 함께 하며 극기했다.

 

수업 시간에 나눈 이야기 중에서는

벗에 대한 것과 자연을 관찰하는 태도 등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어울리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음에도

지기가 없음을 한탄했다는 글은 좀 의외였다.

그들이 그저 같이 술 먹고 글 짓고 시간 보내는 친구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것들이 친구들끼리 우애를 다지는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마저 지기라 부르기에는 아쉬운 무언가가 있다면

정말 나를 알아주고 나를 바라봐주는 '지기'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자연을 소재로 삼은 글들에서는 단백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의 상황을 투영시키면 빗대어 읽게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난 그가 자연을 바라볼 때, 최대한 자기를 비웠다고 생각한다.

내 상황이 이래서 자연을 보니까 이런 모습이 보이더라.. 가 아니라

무념무상하게 자연을 느끼고 생명을 느끼고 세상을 느낀 것 같다.

그러기가 쉽지 않다.

 

깊은 산속 눈 덮인 집,

꽃망울을 맺는 매화와 솔바람소리를 내며 끓는 차 사이에

턱을 괴고 앉아

모락모락 푸르게 피어오르는 향연을 후후 불며 장난을 치는 이덕무가 떠오른다.

물론 그 앞에는 한참을 읽던 책이 놓여져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