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징성

소라 자체는 이성을 상징하지만 불합리하게 쓰이는 상황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이성이 반드시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문명을 아는 인간들이 모인 섬,에서 그려진 악은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악의 표출 방식 자체가 습득된 것임을 보여준다. 랠프와 피기는 살아가야 할 세계를 살아가는 문제를, 잭은 생존의 부분을 문제를 다루고 있어 선악의 구도로 보기 어렵다. 봉화불과 바비큐불, 대장과 추장의 대립을 보여주지만 랠프와 세계과 잭의 세계가 계속 넘나드는 차원이 있다.

사이먼은 봉화 옆 낙하산 시체를 낮에 가서 알아본 것이다. 사이먼의 직감을 피기가 일축해버리는 것을 통해 이성이 바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이먼만 진실을 알았다. -살려고 하는 의지가 충만한 아이들과 달리 혼자 명상할 곳을 찾아다니는 사이면, 그에게서는 적극적인 삶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상황 속에 들어가 있지 않아서 파리대왕까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랠프는 제도로 들어가고자 하는 힘, 잭은 반대되는 힘, 사이먼은 그 틈새에 있는 사람.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날 때의 작용과 반작용의 힘이 느껴진다.- (어쨌든 사이먼의 죽음으로) 잭은 지배자가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고 랠프는 그의 죽음을 계기로 봉화에 더 매달린다. 진실이 중요하지도 않다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숫자도 결국 알려주지 않는다. 수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까?

 

2. 폭력

안경절도가 가장 큰 폭력이다. 가상의 두려움으로부터 폭력이 시작된다. 소라가 깨지고 기존정치체계(랠프)가 붕괴되었다. 어린아이들의 폭력(로저의 팔매질)이란 결과에 대한 상상력이 부재하므로 관찰자의 해석(시선)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폭력이란 행위나 강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보면 소라가 언젠가는 부정당할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소라가 폭력이다. 발언권을 갖는다는 것은 상징적 권위다. 그는 소라로 대장의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폭력에 반하는 발언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실 누구에게나 발언권이 있는 것이므로-잭이 존재할 수밖에! 그리고 두 번째 폭력은 이상을 제시하고 그걸 밀고 나가려는 힘이다.

폭력을 타인이 괴로워하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첫 번째 폭력은 피기,에게 돼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왕따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들 안에 폭력성이 있다고 볼 수밖에. 두 번째는 암퇘지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다. 억압이 있어야 더 큰 희열을 느끼게 되어 있다.(피기가 돼지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고 돼지라고 불릴 때마나 괴로워함) 처음에는 어른들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의 희열이 있었다. 억압이 있다는 것은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처럼 느껴진다.

()은 인간이 가진 것이라면 인간은 선악이라는 구분을 가짐으로써 차별화되는 것이 아닌가? [침묵과 어둠][(연설)과 낮]이라는 대립이 있다. 분장을 통해 멧돼지와 구분되지 않으려는 것, 언어가 사라진 점, (가장 성스러운 노래를 하던)성가대원이 주술을 외우는 것과 구별짓는 것(낮의 세계는 모든 것이 확연하다)

 

3. 두려움

사이먼이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이나 여섯 살짜리 아이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을 보면 인간에게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포나 두려움은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아이들은 사이먼을 죽임으로서 공포를 일시적으로 해소하려고 했으나 결국 또 다른 공포를 계속 상상하여 만들어내고 있다. 어린 아이들은 어두움에 대한 공포(그 속에서는 예측할 수가 없으므로)가 있다. 랠프가 두려움을 소거시키지 못하니까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해서 지도자가 되지 못했다. 사냥에는 공포를 잊게 만드는 잭만의 방식(얼굴을 칠하는 것)이 있다.

당장 닥쳐오는 것(먹을 것과 잠자리)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있지 않나? 갓난아기가 가장 처음 갖는 감정도 두려움, 공포라고 하더라. 종교는 오히려 인간의 이러한 본성을 알아서 이용하는 것 아닌가. 두려움이 본성이라면 이러한(두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인간의 행동에 결함이 있다는 것 아닌가? 책에는 두려움이란 본성에 촉발된 폭력적인 본능이 나와 있다. 그렇다면 마성을 발현시키는 조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교통사고나 보이스 피싱도 유사한 점이 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 보이스 피싱을 누가 속냐, 하면서도 자기가 전화를 받으면 당황해서 은행에 가게 된다고 하더라. 그건 자기가 자기를 잃어버리는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다. 랠프는 잘못의 원인이 뭘까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던 중에 피기의 대답은 그것도 녀석의 잘못이었어...그 패들이 달랬으면 우린 불을 주었을 거야였다. 불을 주었을 거라는 말은 뒤에 붙인 것이 분명한데도 (피기가 상징하고 있는) 이성은 을 통해 잭 일당을 악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한쪽을 악으로 규정하니 자신이 선이 된다. 또다시 진실이 문제가 된다. 진리나 진실은 만들어내는 것이란 생각!) 여섯 살 아이들이 엄마를 그리워하지도 않으면서 먹는 것, 노는 것, 잠자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을 생각해보면 열두 살 아이들은 여섯 살 아이들의 숫자도 파악하지 않고 얼굴에 점이 있던 아이가 없어졌는데도!- 랠프와 잭으로 나뉘어 대립한다.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것도 교육의 산물인가? 둘의 차이는 학교를 다니고(권력과 지위를 다툼), 안 다니고(삶에 만족스러움)의 차이는 아니었을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의 상황에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성과 합리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 죽음, 생존과 관련된 일에서 내가 얼마나 배운 만큼(죽음도 현실이다.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등)행동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경험이 나와 멀지 않다는 생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