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고자장구편에서는 유독 고자도 말 많고 맹자도 말이 많고 더불어 학인들도 말씀이 많았습니다.^^

(전 매번 끝나던 시간에 맞춰 저녁식사약속을 잡았는데... 그 시간을 훌쩍 넘겨버려서 약속이 날아갔다는...)

 이번 토론시간 제가 속했던 조에서는 상범샘의 깐깐한 진행 덕분에 맹자의 성성설이 좀 가닥이 잡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극악무도한 짓을 하면, 저 사람은 종자부터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교화의 여지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고 봐야 할 까요? 아니면 자라온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걸까요?

나쁜 종자가 있다면 좋은 종자도 있겠죠? 그럼 그들은 어떤 험악한 환경에서 자라도 절대로 나쁜 짓 같은 건 안 하고 살게 될까요? 어떨까요?

 

공도자가 묻습니다.

“사람의 본성에는 선한 것도 없고 선하지 않은 것도 없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의 본성은 선한일 도 할 수 있고 선하지 않은 일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 또 어떤 사람은 ‘본성에는 선한 것도 있고 선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래서 요 같은 임금을 모시면서도 상 같은 못된 자가 있고, 고수 같은 아버지에게도 순 같은 아들이 있는 거 아니겠냐’고 말하는데, 선생님처럼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고 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모두 잘 못된 것입니까?”

 

맹자가 답하죠.

“바로 사람의 본성대로 라면 선을 행하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성선(性善)이다.”, “선하지 않은 짓을 하는 것은 그 본성이 악해서가 아니다. (…) 사람은 본시부터 인의예지를 갖고 있다. 다만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고수 같은 아버지, 순(舜) 같은 아들, 요 같은 임금, 상(象)같은 아들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번 <고자장구> 편에서 

고자는 '사람에게 성이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식욕 성욕과 같은 생명을 유지시키고 증대시키는 경향성만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선·불선 같은 가치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은 태어날 때는 없었답니다. 굳이 가치평가를 하자면 관계맺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경향에 따라 나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性)을 인(仁)으로 본다면 인이란 버들가지로 의(義)란 버들가지를 구부려 만든 그릇이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자에게 의란 외적 제도나 억압에 의해 꺾일 수밖에 없는 외재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맹자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의예지라는 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사단을 잘 살피고 물주고 키워서 선으로 갈 수도 있고 불선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답니다. 말하자면 맹자의 성선설은 선을 행하며 살지 불선을 행하며 살지는 다 자기 하기에 달려있습니다. 맹자의 성선설을 인간의 본성으로 전제할 때는 모든 가능성을 내 안에 품고 태어났다고 볼 수 있죠.

 

맹자의 ‘성선설’을 전제로 할 때, 환경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자포자기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자포자기를 선택했을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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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을 쉬고 (야호~!) 

다음 맹자시간 공지합니다. 10월7일(일) 이군요.


<진심장구 상,하> 읽습니다. 버뜨! 오늘 읽은 <고자장구>편도 함께 이어서 얘기되니까 다시 한 번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발제는 현옥샘, 미영샘 입니다.


간식은 정은하, 이수정, 정정애 샘입니다.


<그리고 미리공지>

10번째 맹자수업은(10/14) 한 페이지 짜리 에세이를 발표한다고 하시네요.

더 쓰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려도 안됩니다. 한페이지 단! 한페이지 입니다. 

하지만 시작과 결론을 담은 글이어야 한다는 군요 켁! 

준비들 해 두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