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밤은 잠들기 힘듭니다.

넘 가까워 그런지 집에 와도 토론의 열기가 가시지 않고 토론때엔 생각도 안나던 것들이 뒤늦게 떠오르고 앞 텍스트의 내용들이 문득 문득 생각나면서 좌충우돌 막연해지고 혼란스러워집니다.

봉화도 중요하다는건 알지만 자꾸만 사냥에 끌리는 잭에게는 그것이야말로 행위와 마음의 틈새가 없는게 행복이라던 소세끼의 자기본위행위가 아닐는지? 니체의 강자? 무인도라는 조건하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는지? 그들이 먹은 것은 단순히 고기일 뿐 돼지는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해요. 당하는 자의 고통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지만 잠시 그것을 접어둔다면(양을 채가는 맹금류의 본성으로 여기고) 일단은 이해가 될듯도 하고요. 사냥이 좋은건 잭이 판단할 문제이지 우리가 어떻다고 하긴 힘들다고 했던 토론장면도 생각납니다.

그런데 처음의 사냥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거니까 그렇다 하지만 점점 두려움 때문에, 또 권력에 맛을 들여 사냥이 변질되는 것 같아서 강자에서 물러나는 듯도 하고...

철학책은 읽기가 어려워도 주제파악은 어느정도 될듯도 한데 문학은 읽어놓고도 어렵네요.

니체의 책을 다시 펴니 잭의 마성과 연관되는 듯한 장면이 눈에 띄어서 옮겨봅니다.

 

이러한 모든 고귀한 종족의 근저에서 맹수, 즉 먹잇감과 승리를 갈구하며 방황하는 화려한 금발의 야수를 오해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숨겨진 근저는 때때로 발산될 필요가 있다. 짐승은 다시 풀려나 황야로 돌아가야만 한다.; 로마, 아라비아, 독일, 일본의 귀족, 호메로스의 영웅들, 스칸디나비아의 해적들,-이러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모두 같다. 고귀한 종족이란 그들이 지나간 모든 지점에 야만인이라는 개념을 남겨놓은 자들이다. 그들의 최고의 문화에서도 이에 대한 의식이 드러나고 그것에 대한 자긍심마저 들어난다.(예를 들어 페리클레스는 저 유명한 추도 연설에서 아테네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의 대담한 용기는 모든 육지와 바다에 길을 열었고 모든 곳에 좋게든 나쁘게든 불멸의 기념비를 세웠다.) 미친 것처럼 부조리한 것처럼 돌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고귀한 종족의 이러한 대담한 용기’,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그들 모험의 예측할 수 없음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사람들의 사려없음을 뛰어난 것으로 강조했다.-

안전, 육체, 생명, 쾌적함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과 경시, 모든 파괴에서, 승리와 잔인함에 탐닉하는 것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놀랄만한 명랑함과 쾌락의 깊이 이 모든 것은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야만인’ ‘사악한 적대자’ ‘코트인’ ‘반달인의 모습으로 파악되었다.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않으면서 인용하려니 조금은 불편하기도 합니다. 공통과제에서 암퇘지 사냥장면을 인용할 때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사기를 읽다보니 별별일이 다 있데요. 5개월간 적군에게 포위되어 식량이 완전 차단된 성안에서 부모들이 자식을 바꾸어 먹었다는...

육이오땐 피난가다가 공중에서 사격을 받을 땐 자식 뒤에 숨었다고도 하고.

현옥샘이 읽지 못할 것 같네요. 저는 동물의 왕국을 보지 못합니다. 언제나 피하거나 채널을 돌렸어요. 하지만 책에선 왜 이런지 알고 싶어 그런 부분은 한 번 더 읽곤 합니다.

언젠가 종의 기원을 꼭 보고 싶어요. 주니어판으로라도.^^

 

반장님 수업공지에 댓글 달다가 길어지길래 여기로 옮겼습니다.

다음주 간식당번이네요. 제주도에서 부른 식빵을 구워볼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