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돈을 쓰는 순간,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고미숙이 제안하는 인문학적 돈 쓰기와 비자본 생존
노하우!!
강연에서 만난 한 청년과 고미숙과의 대화 한 토막.
고미숙:얼마나 벌고 싶은데?
청년:10억! 먹고살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돼요.
고미숙:그럼 지금 굶고 있냐?
청년:아파트랑 자가용 사야죠.
고미숙:그건 지금도 이미 있잖아?
청년:더 큰 집이랑 더 좋은 차…… 암튼 그냥 맘이 편할 거 같아요.
고미숙:그럼 지금 그냥 맘 편하게 지내면 되잖아?
더 많은 돈을 갖고 싶은 것 말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면서 고미숙이
만난 사람들, 혹은 그 주변에 있는 청춘들은 꿈이 10억이기는 했는데, 그 꿈의 10억에는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 숫자 자체를 갈망하게 된 현대인의 자화상.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모두가 “나 돈 없어!”를 입에
달고 사는 이 기이한 모습에 문득 의문이 생긴 고미숙은 마침내, 어린애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두 돈타령을 하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시작했다.
이 책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성(性) 담론보다도 훨씬 쉬쉬 되고 있는 ‘돈’ 이야기를 정면에서 다루면서, 화폐와 삶이 어떻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갈 수 있는가를 실험해 보고자 하는 일종의 탐구서다.
당신이 쓰는 것이 당신이 버는 것을 규정한다!
이상하다. 계속 돈을 벌고 있는데도 계속 빚에 허덕인다는 것은. 더 이상한 것은 돈 들어올 구멍이
아예 없는 백수보다, 다달이 월급이 들어오는 정규직들이 더 돈이 없다는 사실. 당장 우리 주변만 슬쩍 둘러보더라도 입만 열면 다들 돈타령1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이 시대의 승자들, 곧 정규직들은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생의 의지를 헌납한 채” 살아가며, 그런 이들에게 직장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죽어 가는 현장’이 된다. 매달 돌아오는 ‘카드빚’에 허덕이며 살기 때문에 늘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은
충분히 벌고 난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굶어죽는 아이들을 보아도, 쪽방에서 너무 덥거나 혹은 너무 추워서 혼자 죽어 간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가슴은 아프지만 기꺼이 나의 지갑을 열기에 내 수입은 아직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러한 가슴과
머리와 손과의 거리감은 돈을 벌고 쓰는 것을 관념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막연히 허구의 1억, 10억을 꿈꾸고, 그 돈이 들어오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당장 어딘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만 원, 십만 원에 대해서는 일단 젖혀두고 보는 것이다.
2그러나 우리 모두 ‘돈의 달인’이 되자고 하는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돈은 생각이나 관념이 아니라, 행동이다. 나의 통장에 실제로 얼마가 있는지, 내가 얼마를 버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 돈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 쓰는가가 돈과 나의 관계를, 나아가 내가 버는 것까지도 규정한다. 연봉이 7,8천이 훌쩍 넘더라도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노예가 될 수 있고, 한 달에 44만 원을 벌더라도 즐겁고 건강하게 살면서 저축까지도 할 수 있는 부자, 아니 ‘돈의 달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롭게 돈을 쓰는
순간,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고미숙이 제안하는 인문학적 돈 쓰기와
비자본 생존 노하우!!
돈의 달인이 되고, 돈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이런 것들은 사실 우리 모두가 꾸는 꿈이 아니던가? 그러나 사람들은 화폐에 대항하기 이전에 “먹고사는 데”, 혹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고 그저 남들처럼만 살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상정한다. 그래서 입만 열었다 하면 “돈! 돈! 돈!”을 외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기엔 ‘서울 중산층의 삶’이라는 기준이 버티고 있다. 넉넉한 평수의 아파트, 주눅 들지 않을
정도의 차, 적당한 해외여행……. 따라서 ‘서울 중산층’을 내적 기준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냐”는 질문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정말로 내가 돈이 없거나 부족한지, 부족하다면 얼마나 어떻게 부족한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고찰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평균 혹은 합리적이란 이름의 덫에 걸려 명확한 것 하나 없는 ‘기준’에 삶을 잠식당한다. 이 책에서 고미숙이 실험하고자 하는 것은 각자의 욕망과
각자의 윤리를 가지고 각자의 삶을 살 때, 경제와 일상은 재구성될 수 있을까, 혹은 화폐와 삶이 어떻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갈 수
있는가이다. 여기서 관건은 단지 허구일 뿐인 돈에 대한 기준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우리 스스로 헐떡거리는 삶을 중지하고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한발을 내딛는 것이다.
현장성을 획득한 인문학적
화폐 탐구의 가능성!
▶백수들 가득한 <수유+너머>
경제의 비밀 아닌 비밀!
2고미숙의 활동 기반인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박사 실업자, 혹은 그냥 백수들로 가득하다. 혹시라도 방문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넉넉한 공간에, 주방과 넓은 강의실까지
있는 연구실은 그 규모가 꽤 크다. 그래서 드는 의문― ‘제대로 돈 버는 사람도 없는 이곳이 어떻게 굴러가는 걸까?!’
이 책,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정규직 하나 없이
다양한 계층과 나이대별의 백수 및 비정규직을 망라하고 있는 연구실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제적 어려2움에 처한 적이 없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밝히며 그와 함께, 이 자본주의의 포화 속에서 어떻게 돈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큰 규모의 연구실을 꾸리고 있는지 그 실상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연구실 경제의 비밀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미스터리가 따로 없다.
“회비부터… 한마디로 중구난방이다. 세대가 다르고, 자기가 처한 조건이 다르고, 무엇보다 경제력이
다른데, 어떻게 회비를 똑같이 낸단 말인가?”―연구실에서 추구하는 평등은 수학적인 평등이 아니다. 차이가 살아 있는 평등, 그것이 진짜 평등이기
때문. 그리고 또 하나. “작년에는 백수였지만, 올해는 좀 번다 싶으면 스스로 회비를 조정한다. ……다들 수입이 불규칙하다 보니 느닷없이 수입이
생길 때… 크게 선심을 쓰는 것이다. 말하자면, 특별회비는 돈으로 하는 ‘선물’인 셈이다.”―축적을 지향해선 안 된다는 공동체적 마인드로
흘러오는 만큼 다시 흘러가게 해야 하므로,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없다가 큰돈이 들어와도 자연스럽게 특별회비를 내고, 동료들에게 베푸는 것을 잊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축적·증식이 아니라 돈을 통해 삶이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에서 요구되는 이런 식의 ‘차이/흐름의 돈 쓰기’는
평소 고미숙의 경제론과 아주 가까이 닿아 있다.
“경제력이
비슷하다고 해서 똑같은 방식으로 돈을 쓰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돈을 쓰는 데도 모름지기 개성과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다른 분야에선 그렇게
튀지 못해 안달하면서 돈의 용법에 있어서는 우째 그리 몰개성을 추구하는지. 혹시 주변에 경제력이 비슷한 사람들만 있어서 그런 거라면 그건 더
심각한 사태다. 세대와 계층, 국경을 가로지르는 이 ‘글로벌’한 시대에 그렇게 균질적인 네트워크밖에 없다니. 그거야말로 재산규모와 삶의 크기가
똑같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다.”(175쪽)
▶44만원 세대+88만원 세대+청년백수=이보다 더 리얼할 수 없는 현장리포트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사례탐구와 함께
진행되었다.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세 편의 리포트는 각각 ①탈학교한 10대 소녀, 중졸 백수의 44만 원 세대의 돈 이야기, ②친구들
중에 비정규직과 계약직 혹은 백수가 더 많은 20대의 88만 원 세대 리포트, ③마지막으로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 저소득층
자녀들의 공부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맡아서 고군분투한 청년백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의 현장감 있는 리포트는 막연히 추측만 하고 혀를
차던 젊은이들의 돈에 대한 개념도를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당장 돈 100만 원이 생기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명품매장으로 달려가겠다”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 어느 청소년, 모은 돈을 어디다 쓸지 몰라 명품을 하나둘 사 모으면서도 그 돈으로 후원을 하는 건 어떠냐는 권유에는 “나 돈
없어”라며 손을 내젓는 어떤 20대, 부유한 집에 자랐음에도 젊을 때 바짝 돈을 벌어 나중에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꿈인 어느 청년…. 고미숙은
이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임상사례를 가지고 인문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3“우리 시대 사회적 관계는 쇼핑과 회식을 통해서만 구성된다. 뭔가 관계를 맺으려면 이 회로를 따라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친구란, ‘함께 소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된다.…그러니 늘 ‘돈 없어!’ ‘돈이 필요해!’를 연발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돈이 인생의 꿈이 되어 버린다. 꿈? 이 낱말은 부적절하다. 꿈이라면 그건 한바탕 악몽에 가깝다. 삶을 소외시키고 욕망을 소거해
버리는 끔찍한 악몽.”(58~59쪽)
다른 삶이 진짜로
시작되는 몇 가지 방법―비자본 생존 노하우
▶집 없어 서러운
청춘들에게 희소식, 더부살이 프로젝트
서울의 경우, 1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가지고도 전세방 하나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놀랍지만 ‘현실’이다. 2,30대 젊은이들이 독립을 하려고 해도 어지간한 종잣돈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지방에 살다가 대학 때문에 서울에서 지내는 경우, 혹 운이 좋아 기숙사에 살게 되더라도 방학이 되면 방을 비워
주어야 한다. 그렇게 갈 곳 없어 서러운 청춘들에게 이 책이 권하는 한 가지는, “같이 살라”는 것. <수유+너머>에서는
2004년부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목돈을 보증금에 보태어 50평 규모의 큰집을 빌려 그곳에서 공동주거운동을 하고 있다. 보통
10~15명 정도의 청년들이 함께 살면서 월세를 나누어 낸다. 혹시 연구실에 외국이나 먼 지방에서 손님이 찾아올 경우 게스트룸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막차를 놓친 사람이라면 하루 5천 원에 묵어갈 수도 있다.
올해로 공동주거 6년째인 연구실의 청년 기숙사, ‘서경재’는 현재 12명의 청년들이 한 달에 15만
원씩을 방세로 내고, 월세의 부족분은 연구실에서 보조를 해준다. 연구실에서는 스리랑카의 환율이 적용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연구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데에 한 달에 30만 원이면 넉넉하다.
“천만 원을 은행에
저축했을 때 돌아오는 건 약간의 금리뿐이다. 하지만 이 돈을 더부살이에 쓰면 하나의 세상이 펼쳐진다. 12명의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상이.……금리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대가를 받는 셈이다.”(128쪽)
그래서 고미숙은 뜻있는 중년들에게 권한다. 서너 명밖에 되지 않는 식구가 4,50평 넓은 집에서 살지
말고, 알맞은 평수로 줄인 후 그 차액으로 주변의 청년들이나 독신자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주택을 운영해 보라고. 그러면서 부동산 재테크나
전략을 넘어 주거공간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 보자고 말한다. 집이란 무엇인지, 집은 무엇으로 존재하는지 등등 우리가 지금껏 가족과 혈연의
테두리 안에서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집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이제는 바꾸자고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자의 말처럼, 도시 안에서도 얼마든지
마을과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