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공자), 우리시대 광자를 기다리며 : 미쳐야 미친다

 

최정옥(남산강학원)

 

 

우리시대에 '미치지' 않고 살아가기란 얼마나 힘든가. 청소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다양한 적성을 계발한답시고 자기 몸보다 더 큰 캐리어를 끌고 학교로, 학원으로 이동한다. 점심, 저녁은 학원버스에서 대충 때운다. 안 놀고, 안 먹고, 죽어라 달려야만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은 특목고 입시를 위해, 고등학생은 일류대 입학을 위해,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그러니 도리가 없다. 일단 '미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갈 만큼 용기가 있는 청소년들은 없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홀로 도도하게 거스르기에는, 그들은 너무 여리다. 더구나 그 '혼자'라는 게 왠지 불안하다. 남들처럼 안 살면, 나만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싫어도, 미친 척 '남들처럼'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닥치고 공부(!)다. 조심스레 부는 바람에도 옷깃을 여미는 고3 수험생의 일상. 신체는 무력해지고, 정신이 얇아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부모가 짜놓은 계획과 스케쥴에 맞춰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순응하며, 대한민국의 소년, 소녀들은 '미쳐가고' 있다. 이들에게 현재란 도대체 뭘까. 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과연 가능할까. '되어야 하는 나'에 대한 기대치가 클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비하와 소외감은 증폭된다. 그리고 이는 종종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묻지마 질주와 묻지마 폭력의 악순환이다.

 

괴로운 게 어찌 수험생들뿐이랴. 교통경찰도 잡지 않는다는 고3을 둔 학부모도 수험생만큼이나 바쁘다. 목표한 대학을 향해 질주할 수 있도록 주변의 모든 방해물들을 없애주고, 콩밭으로 마음이 달려가지 않도록 번뇌를 치워주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게다가 합격은 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니, 부모도 죽어라 뛰어야 한다. 너는 대학을 가라, 나는 돈을 벌 테니! 자식의 합격은 부모의 자랑이, 불합격은 부모의 수치가 된다. 이처럼 자식에게 올인하였으니, 부모도 "광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모도 아이도, 살려면 우선은 미쳐야 한다. 브레이크 떼고, 무조건 질주해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 '광기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미침(狂)'은 어떠한가. "공자가 말하길, 중용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얻어 함께하지 못할 바에는 반드시 광자나 견자와 함께 할 것이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부질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子曰, 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 狂者進取, 狷者有所不爲也)."

 

여기, 좀 미쳐 보이는 자들(狂者)이 있다. 그들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른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뜻은 원대하나 아직은 지혜와 식견도 부족하고 행동력도 부족하다. 공자는 이런 광자를 "진취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공자가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광자에게 본 것은 무한한 잠재력이다. 잠재력은 속에 가만히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것들과의 접속, 부딪힘 속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다. 항상 미지의 것들과 온몸으로 만나고자 하는 자들에게서만 불끈불끈 싹을 틔운다. 공자는 미숙하여 좌충우돌하는 젊음의 열정을 꽃으로 피워주고자 한 것이다.

 

'광자'는 호랑이를 무서워할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와 닮았다. 모습은 하룻강아지일지언정 뜻은 사자인 자들이 어찌 호랑이를 두려워하랴. 온 몸으로 부딪히리라! 그까이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이게 광자들의 태도다. 어리기 때문에, 젊기 때문에 가능한 용기와 도전과 저항! 그것이야말로 청춘이 아니던가. 광자는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이다. 모자란 것 투성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향해서 돌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 그것이 21세기가 원하는 청춘, "유쾌하게 미친 자(광자)"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不狂不及)”라는 말이 있다. 어떤 분야에 “홀릭”이 되라거나, 전문가 내지 “오타쿠”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저질러보는 것, 간단하게는 지도 없이 오프로드를 내달려보자.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듯, 오늘 하루를 100%로 살아내는 것. 그렇게 자신을 믿고 여기서 한 발작 발걸음을 떼어보는 것, 그러면 나는 항상 도달할 것이다, 새로운 내가 탄생하는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