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절차탁마, 마네킹을 만들다

 

 방학과 졸업을 맞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꿈을 주고, 자신을 사랑하게 해주며, 품격을 높여주는 병원이란다. 그곳에서 우리는 환자임을 자처하면서 의사의 사인펜이 얼굴 위를 마음껏 활보하도록 내버려둔다. 최종견적에 헉 소리가 날 법도 하지만, 그래도 눈이랑 코를 같이 하면 조금 더 싸게 해준다니까, 내 얼굴이 이참에 확 바뀌면 세상 모든 옷과 장신구를 걸칠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이를 악물고 수술 동의서에 사인한다. 무엇보다도, 지금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겨울이라 상처가 금방 아물 테고, 입학식 전에 붓기를 가라앉혀야 한다. 이렇게 해서 2월은 상처가 아무는 시기로 통한다.

 

 예전 같으면 쌍꺼풀 수술과 코 수술만 같이 해도 큰 공사였는데, 이제 이 정도는 변신 축에도 못 끼는 모양이다. 버스나 지하철 광고에 버젓이 붙어 있는 before&after 사진을 보라. 요즘 대세는 안면 윤곽술! 양악이 사람 하나를 옴팡 바꿔버린다는 건 일찌감치 몇몇 연예인들 덕분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열풍이 될 줄은 짐작도 못했다. 볼을 빵빵하게 만들고, 이마도 둥글게 부풀리고, 아래턱에는 보형물을 삽입하고… 대체 성형의 마지노선은 어디일까? 지금도 프런티어 정신은 계속된다. 병원에서는 다리알도 제거해주고, 식스팩도 만들어주고, 입술 양끝도 예쁘게 올려준단다. 자르고 깎고 갈고, 그야말로 21세기식 절차탁마(切磋琢磨)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얼굴은 내 몸의 표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 형상은 고스란히 몸 속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 뱃속의 간․심․비․폐․신과 더불어 내 마음자리도 얼굴에 드러난다. 관상학이 가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란다. “이마는 천정으로 심에 속하고, 턱은 지각으로 신에 속한다. 코는 얼굴 중앙에 있어 비에 속하고, 왼쪽 뺨은 간에 속하며, 오른쪽 뺨은 폐에 속한다.”(『동의보감- 외형편』, 얼굴, 470쪽) 어디 그뿐인가. 각 부위별로 시간적 흐름까지 다 새겨져 있다. 눈은 20대, 코는 40대, 콧방울은 50대, 턱은 60대 이후 등으로. 다시 말해 얼굴 자체가 운명의 지도인 셈이다. (고미숙,『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우리 몸은 곧 우주다. 대우주의 성질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태어난 소우주들이 바로 우리들인 셈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첫 호흡을 시작한 순간, 천지의 기운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었는지를 몸속 장기(臟器)들이 보여주며, 그런 장기를 또 얼굴이 보여준다. 때문에 얼굴을 보면 내 삶이 어느 지점에서 막히고 부딪히는지를, 내 크고 작은 병(病)들을 알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그가 어떻게 살아 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얼굴과 몸은 진정 운명의 지도요, 내 삶의 표현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소중한 지도를 가차 없이 폐기시키고 그 대신 플라스틱처럼 매끈한 몸뚱이를 세운다. 얼굴은 청순하게, 몸매는 풍만하게! 돈과 시간과 피를 희생하면서까지 우리가 하려는 것은 결국 자기 몸을 전시하는 것이다. 날 봐줘, 날 소유해줘! 우리는 그렇게 ‘몸이라는 우주’를 학대하며 상품이 되려고 안달한다. 자기만족? 자신감? 천만에! “렛美人!”이라는 외침은 시선의 노예,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의 외마디 비명에 불과하다.

 

 나이 마흔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이제는 강남의 성형외과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할 판이다.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는 데도, 변화시키는 데도, 책임지는 데도 무능력한 이 신체! 지금 우리는 존재 자체가 마네킹이 되고 있다. 마네킹이 뭔가?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고 유혹하는 포즈를 취한 채 향취도 숨결도 없이 구경의 대상이 되는 존재 아닌가. 매끈한 만큼 무능한 신체. 정녕, 마네킹이 되고 싶은가? 하지만 잊지 말자. 분명 얼마 안가 그 얼굴마저 싫증나는 순간이 도래할 테고, 그 ‘조각같은’ 얼굴 위로 그대의 몸 속 장기와 욕망의 상태가 어김없이 새겨질 터. 성형은 결코 우리의 삶까지 바꿀 순 없다. 삶은 비주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수경(남산강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