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청소년 인문서당]  소외되는 노동, 소비되는 삶 - 카를 마르크스 <경제학 철학 초고>


                  치장을 위한 노동, 결국엔 자기소외다

 

최태람(남산 강학원 연구원) 

 

 대학시절에 유명 패스트푸드 점에서 아르바이트(알바)를 한 적이 있다. 알바 초짜였던 나는 10대 알바 선배들의 지시에 따라 정신없이 콜라를 따르고 햄버거 패티를 구웠다. 패스트푸드점의 알바 노하우는 하나다. 패스트 패스트! 알바생은 점심도 10분 내에 후다닥 해치워야 한다. 골라 먹을 수 있는 자유? 그런 건 없다. 알바생이 먹을 수 있는 햄버거는 저렴한 가격대로 한정돼 있었다. 야채 보관창고에서 점심을 ‘해치우고’ 찬물에 맨손으로 야채들을 씻다가 된통 체하고 말았다. 일당도 안 받고 그곳을 도망치듯 나오는 것으로 나의 패스트푸드점 알바는 끝났다. 그때 내가 만난 10대들은 이 모든 걸 기꺼이 감내했다. 대체 왜? 딱히 생계에 대한 절박함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왜 기꺼이 ‘알바생’이 되려 한 것일까?

 패스트푸드점뿐만 아니라 편의점, 주유소, 어딜 가든 알바의 세계에서 메이저는 10대다. 시간당 4000원 조금 넘는 최저 임금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10대들은 알바의 세계를 박차고 나가지 않는다. 경제적 자립? 그것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아이폰도 사야 하고 노스페이스 패딩에 운동화, 게다가 시즌마다 업그레이드되는 화장법에 맞춰 화장품을 구비하려면 용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10대들에게 알바의 목적은 ‘소비’다. 게다가 이 소비에는 일종의 뿌듯함이 자리한다. 내 돈 벌어 내가 쓴다! 어쩐지 근사하지 않은가? 비굴하게 용돈을 타 쓰는 대신 ‘당당하게’ 내 힘으로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만족감에 묘한 자긍심까지. 그래서 10대들은 오늘도 알바시장을 기웃거린다.

 사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돈이 부족한 10대들은 기꺼이 자신의 노동력을 판다.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는? 쇼핑이나 회식으로 풀면 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는 물건들이 나를 위풍당당하고 근사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믿음이, 그걸 위해 부당한 대우도 참고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유행에 따라 자신을 가꾸고, 거기 드는 비용 마련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아직 자기를 표현하거나 충만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10대들에게 소비는 그럴듯한 속임수다. 긴 시간 동안 스스로를 힘들게 단련하지 않고도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래서 10대들에게 돈은 언제나 절실하다. 소비하기 위해 일하고, 소비로밖에는 존재를 표현할 길이 없는 현실. 학교 밖의 10대들은 그렇게 알바시장을 전전하면서 노동을 착취당하고, ‘자유로운 소비’를 하면서 욕망을 봉쇄당한다.

“노동자는 그의 노동 속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느끼며, 자유로운 육체적·정신적 에너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고행으로 그의 육체를 쇠약하게 만들고, 그의 정신을 파멸시킨다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노동 바깥에서야 비로소 자기가 자신과 함께 있다고 느끼며, 노동 속에서는 자기가 자신을 떠나 있다고 느낀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 1844년 경제학 철학 초고)

 19세기, 자본주의라는 유령이 전 유럽을 배회할 때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33)는 인간의 노동력이 상품으로 거래되면서 노동자가 가장 비참한 상품으로 전락한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나의 행위가 나의 삶과 분리되어 있는 것, 내가 나의 행위로 인해 충만해지지 못하고 외부의 것으로 충족된다고 느끼는 것을 ‘소외’라고 정의했다. 임금을 받고 자유롭게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처럼 보이는 노동자가 사실은 자본과 자본가에 예속되어 소외된 노동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한 마르크스. 200년이 지난 지금, 그가 말한 소외된 노동을 10대들이 가장 극명하게 체현하고 있다. 잔혹한 현실이다.

 10대들이여, 그대들의 몸은 소중하다. 그 소중한 몸을 꾸미고 일하느라 혹사시키지 말고, 소외시키지 말라. ‘존재감’은 패션이나 미모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대가 일할 때 느끼는 기쁨, 그대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감, 그대를 충만하게 해주는 건 그런 것들이다. 제발, 꾸미기 위해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노동으로부터 도망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