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지성, 춘천을 점거하다  

 

- 2010 대중지성 2학기 에세이 발표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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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를 앞두고 춘천 세미나실에 모여드는 대중지성 학인들)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수유너머 강원' 대중지성 16인의 학인들이 집결했다. 2학기 에세이 발표를 위해서다이 시간 동안 그들은 자신만의 논리와 사유를 녹여내...려고 했던 소설과 에세이를 선보였다. 세상은 월드컵 16강의 붉은 물결로 출렁였고, 이곳 발표현장 또한 선생님과 학인들의 엄정한 비평과 칼날 같은 지적으로 피바다(?)를 이뤘다. 2010 대중지성 2학기에는 루쉰, 나츠메 소세키, 프란츠 카프카 같은 문인들의 주요 저작을 공부했다. 그들의 가치관과 사유의 깊이를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가, 그 고민의 흔적이 발표 현장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것이다.

 

운명의 발표 순서는 공명정대하게 '제비 뽑기'로 정해졌다. 1번부터 16번까지 순서를 놓고도 설왕설래가 끊임없다. 중간이 좋다느니 뒤에 걸리면 안 좋다느니 곧 닥칠 파란도 아랑곳없이 시시콜콜 쑥덕공론이 한창이다. 그런 한가한 시간도 잠시. 1번 당첨자 시성이 자기 글을 읽어 내려가자 학인들은 잠시 잊었던 자신들의 숙명을 깨달은 듯 좌중에 일순 긴장감이 감돈다. 시성의 낭독이 끝나고 학인들간에 비평이 오간다. 이렇게 썼으면 더 괜찮았겠다, 이건 좋았다 저건 어땠다.. 말이 잦아들어 상황이 정리되고, 드디어 잠자코 있던 고미숙 선생께서 느릿느릿 입을 연다. “아.. 시성이는 말이야..”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신랄하게 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는 선생의 비평은 듣는 이를 아프게 하는 만큼 귀를 바싹 기울이게 한다. 정신적 충격을 다소 받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훤해지고 눈이 밝아지는 듯한 쾌감이 느껴진다. 이제야 조금 알겠다. 비난과 비평의 차이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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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인들은 각각이 처한 상태에 따라 논평을 받았다. 강지영은 살을 찌우라! 김일곤은 소심증에서 벗어나도록 엑셀을 마구 밟으라!  정아림은 기억의 프레임을 바꾸라!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독자들은 알아듣기 어려우리라. 궁금하신 이들은 해당하는 이들에게 묻거나 그들의 글을 직접 읽어보고 궁리해보시라) 선생님들께서는 무엇보다 생각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깊이 사유하지 않으니 통찰은커녕 글발이 허약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내 글에 가해진 비평이 그러하다. 글쓰기를 수단으로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욕망이 앞서, 사유의 깊이가 얄팍하고 그저 그럴듯해 보이는 문장을 구사한다. 속된말로 술술 읽히지만 남는 것은 없는 빈 껍데기 글이 내 모습인 거다.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야 내실이 다져진다. 화려한 아포리즘과 언어 유희에 현혹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이것이 무게중심이 잡히는 것 아닐까? 깊이 있게 사유하며 정신을 단련하고, 동시에 튼튼한 신체를 만드는 일. '이것이 곧 수행이며 이런 성장의 고통이 서사요 사건이다. 그게 다 고스란히 글이 되는 거다'라는 고미숙 선생의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 글은 수행한 정도가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에세이 발표회인가", 정아림학인)

 

한편 이번 발표회에서 특히 감동받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방치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자기 방구석을 쓰레기통으로 만들면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일이다. 그런 일상의 소소한 태도가 모여 나와 내 주변, 나아가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합숙은 끝났다. 꿀맛 같은 1주간의 방학을 뒤로 하고 학인들은 3학기를 바라고 있다. 3학기 에세이는 어쩐지 23일로 추진될 것 같은 예언(?)을 남기고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 수유+너머 남산 객원기자 김동철(2010 대중지성 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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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대중지성 2학기 에세이 발표회는 '수유너머 강원'에서 1박 2일로 진행되었습니다. 고속버스 한 차를 거의 독점하며 학인들은 춘천으로 향하였고, <수유너머 강원>식구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발표회를   시작하였습니다. (날리던 '강원'의 복사기 매상을 급! 올려준 덕택에 환영은 더욱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1박 2일이라는 시간 덕택에 이번 발표회는 더 특별했습니다. 황홀한(?) 에세이 발표는 기본. 아찔하게 자기 에세이를 발표하고나면 한동안은 멍-해있다가 이내 복수의 정념을 불태우며 타인의 글을 읽었지요-.- 몇몇은 그 초저함과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가 비 맞으며 축구를 하였고, 늦은 밤을 틈타 망각의 노란 음료수(?)가 있는 곳으로 도주하기도 하였습니다. 첫날 발표가 끝나고는 몇 분 남지 않은 월드컵을 보느라 수유너머 강원 OA실을 가득 채웠고, MT 온듯 떼거리로 드러누워 각자의 츄리닝을 감상하였습니다. <수유너머 강원>식구들은 상다리 휘어지는 음식을 준비해 주셨고, 우리들 역시 MT식 요리(잔반처리 한 그릇 음식로 배를 채웠습니다. 학인들의 처참한 글에도 불구하고 곰숙샘은 춘천의 명물 '닭갈비'를 쏘아 음덕을 쌓으셨습니다. 어쨌거나 평소 보지 못했떤(?) 편안한 츄리닝 차림에, 맛있는 밥, 발표, 간식, 밥, 발표, 간식을 반복하며 꿈같은 1박 2일을 보냈습니다. 아래에는 1박 2일의 발표회가 낳은 3편의 BEST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즐겁게 감상해 보시어요^*^

 

  

<진정한 자기 본위의 삶>, 강민혁 _ 2회 연속 BEST 에세이 수상. 평소 성실한 강민혁 학인은 2학기 말 갑작스레 결석이 잦아졌다. 회사일이 갑자기 바빠져서 그렇다는 소문에 많은 학인들이 안타까워하였으나 실은 아들과 월드컵을 보았다고. 회사에서는 야근이 잦았으나 야근하면서는 한 일은 대중지성 숙제와 에세이 쓰기!  <진정한자기본위의삶_Click!>  

 

<사표>, 김면수 _ 노신의 소설 <복을 비는 제사>에 등장하는 '샹린댁'에서 모티브를 얻어 쓰여진 '김면수'씨의 처녀작! 작품 완성 몇일 전부터 작가가 급격히 늙어가고, 그런 채로 춘천에 가서도 타이핑을 멈추지 않아 많은 이들이 걱정하였으나 자신의 경험과 어우러져 멋진 작품이 탄생하였다. <사표_Click!>

 

<학원을 지키는 사람>, 류시성 _ 학원강사 '공자'의 탄생! 노신의 '고사신편' 스타일로 공자의 삶을 재조명하였다.는데... 수유너머 구로의 냉장고 사정과 류군과 그 주변 인물들의 생활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적(?) 작품이다. <학원을지키는사람_Click!>  

 

  

    

수유너머 남산/대중지성 2학기 에세이/2010.06.26/류시성

 

 

학원을 지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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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

 

 

1

학원엔 파리들만 날아다니고 있었다. 낮잠을 자고 있는 공자의 얼굴에도 몇 마리의 파리가 앉아 있었다. 공자가 가끔씩 몸을 뒤척일 때 파리들은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수강생들이 있을 때 파리는 보이지도 않았다. 공자를 위해 수강생들이 파리를 모조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성에 법가니 병가니 도가니 하는 대형입시학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부터 도성의 파리란 파리는 모두 공자 곁으로 몰려드는 것 같았다. 무한경쟁에 돌입한 입시학원들 사이에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자는 낮잠 자는 버릇만은 버리지 않았다. 제자들은 먹고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자 공부보다는 구직활동을 최우선으로 삼기 시작했다. 제자들이 아르바이트를 뛰러 나가 있는 동안 공자는 이렇게 홀로 학원을 지켰다.

공자가 낮잠에서 깨어난 시간은 벌써 누항(陋巷)에 있는 공부방으로 출발했어야 할 시간이었다. 학원 재정은 심각한 지경이었지만 공자는 돈도 되지 않는 공부방으로 매주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다. 누항은 저소득층이 밀집해서 사는 지역으로 교육이 열악하다는 보고서들이 제출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공자는 그런 보고서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공자는 공부방에 갈 때마다 안회를 떠올리곤 했다. 안회를 만난 것이 바로 누항에 있는 공부방이기 때문이었다. 안회는 공자처럼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무엇이든 배우려고 했다. 하지만 가난해서 늘 배고픔에 시달렸다. 공부방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는 하루에 삼각 김밥 하나와 생수 한통으로 버티기도 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공부방에 있을 수 없다는 조항 때문에 그나마 김밥과 생수의 공급도 끊어지고 말았다. 결국 영양실조에 걸려 서른도 채 안 된 나이에 그는 이미 백발이었다. 공자는 자신보다 늙어 보이는 안회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지금은 공부방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늘어 안회처럼 굶주린 아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반찬 투정을 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공자는 안회를 떠올렸다. 공자가 공부방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도 순전히 안회 때문이었다. 공자는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수업준비를 했다.

서재에서 공자는 오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책을 뒤적였다. 뒤적거리다보니 다들 어려운 문장뿐이었다. ‘말할 수 있는 도(道)는 영원불변하는 도가 아니요,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초요, 유명(有名)은 만물의 모태다.(노선생님)’

“제길! 이게 무어람! 나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자나! 노인네하고는!”

공자는 그래도 스승한테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온갖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눈곱만큼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9척이나 되는 키에 무더운 여름날이었기에 땀이 삐질 삐질 나기 시작했다. 공자는 짜증이 일었다.

“수업을 듣긴 들었는데... 그거 참! 그 노인네하고는! 그래! 오늘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말하는 게 좋겠다. 이제 나도 내 인생을 슬슬 정리해볼 때가 되었지.”

공자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는 스스로 살아온 날을 떠올리며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이렇게 쓰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렸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것과 15살에 배우기로 마음먹은 일, 30살에 겨우 자립할 수 있게 된 일 등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자 공자는 과거가 무겁게 느껴졌다.

“제길! 과거가 다 무어람!”

하지만 딱히 가르칠만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 문장을 가르치기로 하고 공부방으로 향했다. 누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장을 반드시 거쳐야만 했다. 시장은 활기찼다. 공자는 간혹 누항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아름씩 장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학원 재정이 그나마 괜찮을 때의 일이었다. 시장을 볼 때만큼 공자의 기억력이 비상하게 발휘된 적은 없었다. 시장 아주머니들은 그런 공자를 속일 수가 없었다. 예전 가격을 모조리 꿰고 있던 공자에게 예전 가격으로 물건을 넘기거나 그렇게는 도저히 팔 수 없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니! 언제 적 가격을 들먹이고 있어요! 지금!”

그랬다. 학원 사정이 악화되자 공자는 장을 많이 볼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시세에서도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장을 본다 해도 먹을 사람이 없어서 썩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공자는 이럴 때가 가장 가슴 아팠다.

‘먹지 못해 백발이 되어버린 안회도 있는데……’

이런 기억을 떠올리자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공자의 옷은 이미 반이 젖어 있었다. 하지만 공자도 오늘은 기어이 여기서 학원홍보를 좀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예전부터 생각해왔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하고 있었다. 이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운영이 힘들다는 것을 공자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체면도 있고 그래도 도성에서는 조금이나마 알려진 자신인데 이런 곳에서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부탁하는 일은 좀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책을 세권이나 냈는데……’

공자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시장 끝에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거기다 말까지 탄 사람도 보였다. 공자가 운영하는 학원에서는 재정난으로 말을 구입할 수가 없었다. 입시의 여섯 가지 필수과목 가운데 하나인 말타기를 연습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공자는 누굴까 궁금해 하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확성기로 큰 소리를 지르며 오고 있었다. 오는 도중에 일일이 모든 사람과 악수를 나누며 ‘법가! 법가!’를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공자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탓에 그 소리를 금방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좀더 가까이 오고 나서야 공자는 그 소리를 뚜렷이 들을 수 있었다.

“법가학격, 유가낙방! 법가만이 이 치열한 취업난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입니다. 법가합격! 유가낙방!”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자 공자는 화가 치밀었다.

‘제기랄 놈들! 꼭 저렇게까지 해야 속이 후련한가!’

하지만 법가는 도성에서 한창 뜨는 명문입시학원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몇 년 전엔 거물급 스타를 배출해내기도 했다. 데모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도성 한 복판에 청동으로 만든 바리케이드 산성을 만든 인물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자는 그들을 단지 무식한 놈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확성기로 노골적으로 외쳐대는 법가 사람들을 보자 공자는 그들이 무지막지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세력이 점점 누항에까지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아는 놈들! 사람 사는 데는 인의예지가 있어야 하거늘. 더구나 누항은 안회가 살던……’

공자는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법가 대열에 뛰어들 태세였다. 그러나 이때, 누군가 공자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자로였다.

“선생님! 참으세요. 지금 나가셔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구나. 이걸 참을 수 있으면 세상에 무슨 일을 참을 수 없겠느냐!”

“하지만 선생님, 저쪽은 쪽수도 많지 않습니까? 홀홀단신으로 어떻게 맞서시려고요. 안 됩니다. 안 돼요.”

자로의 말이 맞았다. 덩치로는 공자가 다 제압하고도 남을 것 같았지만 공자도 이제 늙은 몸이었다. 공자는 분을 삭이며 법가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씨는 더 덥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강의할 체력만은 비축해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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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더위와 울화통 때문에 땀으로 반신욕을 하고 공부방에 도착했지만 아이들은 없었다. 학교에서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이다.

“아이들이 요즘 학교에서 다들 늦게 오네요. 일찍 오라고 이야기를 해뒀는데. 더 주의를 주겠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곧 오겠죠, 뭐.”

공자는 귀가 어두웠지만 매번 듣는 말이라 금방 그 말에 대응할 수 있었다. 공자 역시 매번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실업자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공자와 함께 매주 공부방은 찾아가고 있었던 자로는 달랐다.

“선생님, 그래도 학생들이 너무 없는 거 같습니다.”

“괜찮다. 한 명이라도 나는 괜찮아.”

“그래도.”

“괜찮다, 괜찮아.”

이렇게 말은 했지만 공자는 내심 무슨 방법이 없을까 몇 주 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떠오는 방법이 없었다. 공자는 자로에게 물을 한잔 청하고는 벽에 기대어 앉았다. 벽은 아이들의 책으로 가득했다. 공자는 아무 책이나 집어 들었다. 공자에게 책은 금세 시름을 잊게 해주었다. 공자는 아이들의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일단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 책 저 책을 흝어봤다. 하지만 공자가 기증한 <시경>, <서경>, <역경>은 누구도 펼쳐본 흔적이 없었다.

‘아이들도 이 책을 보지 않는구나. 이 책이 그렇게 재미가 없나?’

공자는 지금 쓰고 있는 <춘추>를 생각했다. 베스트셀러가 되면 학원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춘추>를 쓰면 쓸수록 무거워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일단 쓰고 있는 자신도 재미가 없었다. 공자는 남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이토록 재미가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자주했다. 이때 아이들이 학교에서 슬슬 오기 시작했다. 9살인 자하와 7살인 증삼이 왔다. 둘은 오자마자

“서당이 싫어요!”

라고 외쳤다. 공자는 심기가 불편해졌지만 날씨와 낮에 있었던 사건 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하는 서당을 1년 넘게 했지만 여전히 서당을 싫어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공자는 언젠가는 자기 뜻을 알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안회가 그랬던 것처럼. 공자는 둘을 데리고 지하로 내렸다. 수업은 정시에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하는 공부방 아이들이 밥을 먹는 공간이기도 했다. 때문에 수업 도중에 뒤에서 나는 요리냄새들이 수업을 방해하기도 했다. 공자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 적이 많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늘 배울 문장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써본 문장이요. 자! 따라 읽어 봅시다.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순간 공자는 ‘아차!’ 싶었다. 아직 70이 되지 않았는데 70까지 말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얼른 70이후를 지웠다. 진땀이 흘렀다. 70정도 되면 그만한 도(道)를 깨우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공자는 너무 간절하게 바라다보니 그게 마치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생각이 나이보다 먼저 삶을 살고 있구나.’

공자는 아찔함과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아이들에게 외쳤다.

“연필로 꾹꾹 눌러서 써야 글자가 예쁘게 나옵니다. 그렇게 해야 손힘이 생기고 글자를 잘 쓸 수 있게 되요.”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따라 읽으라고 다그쳤다. 아이들은 글씨를 쓰면서 따라 읽고 허리를 세우라는 지시에 허리를 세우고 따라 읽었다. 쓰는데 느려터진 두 아이들이 다 써 갈 때까지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요샌 학교에서 무슨 방과후인지 하는 프로그램 때문에 서당에도 아이들이 없었다.

“요새 방과후 때문에 아이들이 늦어요. 방과후가 교장 고과하고 관계되어 있어서 교장들이 필사적으로 시키려고 해요. 그리고 선생들도 방과후 교육 수당이 월등이 많아서 되도록 아이들을 붙잡아 두려고 해요. 요샌 좀 어떠세요?”

“……”

“아참! 내 정신 좀 봐. 오늘 라디오방송국하고 방과후에 대한 인터뷰가 있는 걸 깜박했네요.”

몇 주 전 공자는 센터장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탓에 다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요지는 분명하게 들었다.

‘아이들을 동원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공부방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정부에서 돈을 지원받다보니 매년 그 돈에 대한 성과를 발표해야만 했다. 또 갖가지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았다. 캠프니 대장정이니 하는 것이 공부방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자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서당도 아이들에게 그런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건 실로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잠시 이런 생각에 몰두해 있으려니 벌써 문장의 뜻을 설명해야 할 때가 되었다. 공자는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연필 놓고 앞에 봅시다. 연필을 붙잡고 있으면 1장 더 쓰게 할 거에요. 나중에 쓰는 시간을 다시 줄 겁니다.”

증자와 자하는 얼른 연필을 던졌다.

“오늘 배울 문장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나는 15살에 배움에 뜻을 뒀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때는 그것만이 살 길 같아 보였어요. 30살에는 경제적으로 자립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어요. 40살에는 공부를 접어야 하나 하는 유혹에 흔들리기도 했어요. 50살에는 하늘이 내려준 운명이 가혹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는 참 많이도 떠돌았어요. 60살에는 급기야 신장이 약해졌는지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되었어요.”

자기 삶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보자 공자는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 번도 기구한 운명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으나 이렇게 문장으로 정리해 놓고 보니 파란만장해 보였다. 하지만 60여 년 동안 굶어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굶주려서 사람을 잡아먹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공자는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눈물을 닦고 뒤돌아섰다. 증삼은 잠들어 있었고 자하는 쓰지 말라는 한자를 몰래몰래 계속 쓰고 있었다. 공자는 증삼을 깨우고 자하에게 주의를 주며 계속 수업을 해나갔다.

“15살을 알아요? 지금으로 따지면 중딩 정도 되겠죠?”

이렇게 말했지만 아이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공자는 눈치 빠르게 알아챘다.

‘이 아이들에게 15살이란 없는 나이구나.’

공자는 수업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농담을 날렸다.

“내가 지금까지 서당을 이토록 오랫동안 해 왔는데 15살을 이해시킬 수 없었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공자를 따라온 자로만이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그래요. 나는 자하나 증삼이 아직 한참이나 남은 15살에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15년이 걸렸어요.”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공자는 60까지 말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립이고 천명이고 유혹이고 일단 15살을 이해해야 다음 진도도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배움이 중요하다는 것만을 강조하기로 했다. 이것 하나만 아이들이 알아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수업을 재밌게 하자는 식으로 공자는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증삼은 금세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공자의 수업이 마무리되자 자로가 아이들에게 시경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자로의 불같은 성격이나 주먹맛도 모르고 마구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자로는 당황했다. 어디서나 당당했던 자로였지만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곤욕을 치루고 있었다. 공자는 뒤쪽에서 나는 고등어 튀김냄새를 유유히 음미하고 있었다. 그 사이 자로와 동고동락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하마터면 장저·걸익이 운영하는 농가공동체에 자로를 빼앗길 뻔한 일도 있었다. 그들은 자로를 보자마자 탐을 냈다. 그때는 공자도 갈등했다. 자로의 성향이나 골격으로 봐서는 공부보다는 농사가 어울려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로는 갈등하지 않았다. 자로는 공자로부터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게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잠시 옛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자로는 여전히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새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합세해 자로 앞에서 떠들고 춤을 추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직 아이들에게 수업을 해본 경험이 없는 자로는 거의 사색이 되었다. 자로가 큰 소리를 질렀지만 아이들은 그것보다 더 큰 소리로 떠들었다. 공자는 자신이 스스로 그 자리에 있지 않음을 안도했다. 공부방 아이들이 누구보다도 거칠다는 것을 공자는 잘 알고 있었다.

서당이 끝나자 공자는 아이들에게 청소를 시켰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청소를 거부했다.

“제가 왜요? 다른 애들도 많이 있자나요!”

“네가 생활하는 공간인데 네가 청소  좀 하면 안 되느냐?”

아이들은 할 말이 없는지 씩씩 대며 돌아가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어야 하는 책상이니 깨끗이 닦으라는 말에 아이들은 공자를 째려봤다. 청소도 거의 대충대충이었다. 공자는 속으로 ‘망할 자식들!’이라고 외쳤다.

‘어떻게 저렇게 자기들 생각만 할까? 배려만 받으려고 하자나! 아주!’

하지만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때리거나 타이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꾸준히 청소를 시키는 일밖에 없다고 공자는 생각했다. 그 사이 자로가 밥을 먹으라고 공자를 불렀다. 공자는 아이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일단 밥은 먹어야겠기에 밥상에 앉았다. 서당이 끝나면 공자는 자로와 여기서 한 끼 식사를 해결했다. 공자는 밥을 두 그릇이나 먹고는 입맛을 다시며 공부방을 나섰다. 무더운 하루였다.

 

3

학원으로 돌아온 공자는 가만히 앉아 노트를 정리했다. <시경>을 패러디해서 쓴 아이들의 시를 검토 중이었다. <시경>에 나온 명구절을 이토록 무참히 패러디해버린 아이들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뭐 이게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다 자기 감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쓴 것들이었다. 자하는 이런 시를 써서 제출했다.

문제 아저씨

나는 맨날 늦게 와서 선생님께 잔소리만 듣고

나는 마음이 불탄다

공부할 때 어려운 문제가 나왔다

난 혼났다

학교가 끝날 때 모르는 아저씨가 왔다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스크림 사줄까?

아니요. 빨리 가세요.

 

공자는 ‘아저씨’가 누굴까 고민했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아저씨’였지만 공자에게만은 잘 잡히지 않았다. 공자는 나중에 더 연구하기로 마음먹고는 다음 시를 펼쳤다.

서당아이

 시경.JPG

하늘 천 따따 지

썩은 밥 한 그릇

맛있는 한 그릇

선생님은 썩은 밥

나는 맛있는 밥

선생님은 손으로

나는 숟가락으로

에 이놈 잘못 읽는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느니 뭐니 하는 말도 많은 시대지만 아이들이 쓴 시는 공자로 하여금 배꼽을 잡게 했다. 공자는 한참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시경>도 필시 이런 마음을 드러낸 노래들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공자는 책장에 있는 <시경>을 뽑아서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공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경>의 시들을 다시 읽으니 도발적이고 성적인 뉘앙스를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고 <시경>의 시를 평가하곤 했지만 그것이 잘못된 생각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의 눈에는 <시경>의 시들이 불량가요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 공자의 머릿속엔 자공이 번뜩 떠올랐다.

“선생님, 가난하면서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괜찮지. 그것도 어려운 거야.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잘 차리는 것만 못하지.”

“<시경>에 보면 ‘절단해 놓고 다시 그것을 간 듯하고, 쪼아놓고 다시 그것을 간 듯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게 이것을 말하는 건가요?”

“자공아! 이제 너와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줬더니 올 것을 아는구나.”

자공과의 일을 생각하니 공자는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 ‘절단해 놓고 다시 그것을 간 듯하고, 쪼아놓고 다시 그것을 간 듯하다.’는 것은 여인의 절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얼굴이 여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공의 말에는 여인의 뜨거운 마음은 온데간데도 없었다. 공자의 눈엔 화려한 말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 대부분이 이 화려한 말들의 세계였다고 공자는 생각했다. 공자는 써놓은 <춘추>를 뒤적였다. <춘추>는 공자를 금세 피로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안 되겠군. 30분만 눈을 붙여야지.”

공자는 쉼터로 향했다. 그날 밤 공자는 밤이 늦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4

다음 날 공자에게 계강자가 찾아왔다. 계강자는 실권자 중의 실권자였다. 정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 가운데 3분의 1을 가져가던 인물이었다. 다른 대부들보다도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월등하게 강성했다. 또 공자의 제자 가운데 염유가 그의 가신으로 있었다. 계강자가 공자를 찾아온 이유는 분명했다. 자나 깨나 노나라의 시조인 주공이야기만 하는 공자를 찾아가서 정치에 대해 묻고 그것을 통해 이미를 쇄신해보려던 심사였다. 사람들은 주공이라면 껌뻑 죽었다. 공자가 꿈에서 주공을 만난다는 소문이 돌자 한동안 공자의 학원도 수강생이 늘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소문은 순식간에 바뀌기 마련이었다.

계강자는 자기 배만 불리는 인물이라는 여론을 어떻게든 바꾸려고 했다. 여론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가져오기 위해서 공자를 이용하려고 했다. 이럴 때 소장학자를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건 오래된 정치적 테크닉이었다.

“파리가 많이 날리는군요.”

그러나 공자는 알아듣지 못했다.

“찾아오신 용건이 무엇인지요?”

공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나 얼굴은 온화했다.

“차라도 한잔 주시지 않겠습니까?”

계강자는 말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되도록 오랫동안 공자와 같이 있어야 여론이 그나마 좋게 형성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항간에는 계강자가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러니 그것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글만 읽은 공자와 오랫동안 같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공자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날씨는 덥고 공자는 비 오듯이 땀이 났다. 대부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입은 옷이 공자를 삶아죽일 판이었다.

“찾아오신 용건이 무엇인지요?”

계강자는 할 수 없이 말했다.

“요새 백성들 중에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고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계강자는 공자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공자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몇 마디를 듣고는 금방 계강자의 의도를 알아챘다. 공자는 이미 말을 준비해놓았다는 듯이 계강자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백성을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백성들도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먼저 총성을 울리지 않으면 백성들도 총성으로 대항하지 않을 겁니다. 잘하는 자를 들어서 쓰고 잘못하는 자가 있으면 가르치고. 그렇게 하면 될 것입니다.”

계강자는 속으로 보통 노인네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경과 충성을 바로 공격과 총성으로 바꾸어 말하는 솜씨에 자못 놀랐던 것이다. 하지만 공자의 제자들은 오금이 저리기 시작했다. 계강자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그럼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번엔 공자 옆에 있던 자로가 공자의 귀에 계강자의 말을 전해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자가 또 멋대로 말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공자와 학원 전체가 계강자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또 이미 준비해놓았다는 듯이 독설을 퍼부었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바로잡는다는 뜻입니다. 대인께서 바름을 먼저 보여주시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습니까?”

계강자는 점점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의도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계강자는 화재를 돌리려고 했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했다.

“요즘 도성에 도둑이 많다고 합니다. 소문은 들으셨는지요. 불안합니다. 뭔가 특별한 대책이라도 있겠습니까?”

이번에도 자로는 공자의 귀에 계장자의 말을 전했다. 거기다 한 마디 덧붙였다.

“선생님,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대화가 이어지고 뻑뻑한 분위기를 바꿀 수 있으리라고 제자들은 기대했다. 하지만.

“만일 대인이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상을 주면서 도둑질을 하라고 해도 도둑질을 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계강자의 얼굴은 완전히 찌그러졌다. 제자들 역시 아쉬운 탄성을 내지르며 가슴을 두드렸다. 계강자는 생각했다.

‘입시학원 원장 주제에 정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입을 함부로 놀리나. 지금은 병가니 법가니 하는 잘 나가는 학원들도 많은데 굳이 주공 때문에 찾아왔건만 짜증만 나는군. 그러니 학원에 파리만 날리고 있지. 교만한 노인네. 어디 두고 보자.’

계강자는 분을 삭이며 공자를 실컷 비웃었다. 하지만 공자는 태연했다. 계강자가 나가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들은 공자와 나눈 이야기를 알아내려고 계강자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하지만 계강자는 묵묵부답이었다. 계강자와 취재진이 돌아가자 제자들이 달려왔다.

“아니, 선생님! 계강자를 그냥 그렇게 보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 기회에 벼슬을 할 수도 있고 선생님께서 벼슬이 싫으시면 저희 같은 제자들을 추천해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제자들의 성토도 옳은 구석이 있었다. 취업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적인 분위기로 봤을 때 계강자라는 후원자만 등에 업으면 공자도 학원 운영이 한결 손쉬울 판이었다. 하지만 공자는 이때 또 안회를 생각했다. 자신의 뜻을 알아줄 제자는 안회뿐이라고 속으로 읊조렸다. 한편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제자들이 가여워보였다. 자신이 한번 굽히기만 했더라도 제자들의 생활은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자는 단호했다.

“3년을 공부하고도 벼슬길을 탐하지 않는 녀석들이 없구나.”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공자가 계강자에게 쌔게 말한 것이 곧 화근이 되었다. 이제 그나마 염유나 자로가 계강자의 가신으로 있으면서 열었던 길마저 닫혀버릴 판국이었다. 법가나 병가 쪽에서는 이미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하고 있었지만 공자의 학원에서는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더구나 이번 일까지 터지면서 사람들은 학원이 곧 통폐합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백수신세인 젊은이들이 도성으로 몰려들었지만 공자의 학원으로 달려오는 학생은 적었다. 그리고 도성이라고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늘구멍 같은 입시를 뚫고 들어가려면 무슨 술수든지 써야할 판이었다. 돈을 써서 스펙을 갖추지 않으면 벼슬길에 나갈 생각은 접어야 했다. 그러나 이때도 공자는 묵묵히 책 읽기를 권했다. 소문은 소문을 타고 급기야 이전부터 공자를 미워하던 자들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학원 앞에는 투서가 나붙었다.

‘되지도 않는 일을 하려고 하는 자, 공자!’

학원 내부에서도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곧 학원이 망할 거라는 둥 공자가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둥. 관직에 나간 제자들도 공무에 바쁘다는 핑계로 학원엔 찾아오지도 않았다. 계강자와 있고 나서는 더 발길이 뜸한 것처럼 느껴졌다. 공자 앞에는 새파랗게 어린 아이들만 있었다. 중간층이 모두 사라지고 웬만큼 공부한 제자들은 다 자기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공자는 학원을 그만둘 수 없었다. 당장 학원을 그만두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수강료로 받는 포 한속으로 공자도 학원도 살아갈 수 있었다. 이제 학원이 공자에게는 전부였다.

공자는 혼자 서재에 앉아 학원 회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번 달도 적자였다. 공자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파리들도 빠르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공자는 <춘추>와 안회를 생각했다.

 

5

시련은 계속 됐다. 계강자는 앙심을 품고 은밀하게 공자의 학원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학원 운영과 제자들에게 몰두해 있는 사이 아들 공리가 죽는 일마저 발생했다. 아직 50에 불과한 아들의 죽음은 공자를 극도로 슬프게 만들었다. 하지만 공자는 계속해서 학원을 운영하고 공부방에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막바지에 이른 <춘추>의 집필을 마무리하기 위해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자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원래 노인일수록 하던 일을 조금이라도 계속해야만 오래 살 수 있는 법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은 공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충격으로 몸에 다가왔다.

더구나 그 다음 해엔 안회마저 죽고 말았다. 한 끼의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안회가 결국 탈이 나고 만 것이었다. 공자는 통곡했다.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

하지만 제자들은 공자의 통곡에 난색을 표했다.

“선생님, 지나치십니다. 선생님께서 곡을 할 때는 통곡하지 않는 법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공리가 죽었을 때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으셨습니다.”

“내가 그랬나? 그런 말을 했나?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그러나 이 사람이 아니면 누구를 위해 이렇게 통곡하겠느냐!”

공자가 예전에 했던 말들은 공자를 꼼짝 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하든 ‘예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하지만 안회에게만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자는 숨겨놓은 아들처럼 안회를 사랑했다. 안회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공자는 안회의 죽음을 온전히 슬퍼하고 싶었다. 그러나 또 일이 터졌다. 안회를 존경하던 제자들은 안회의 장례를 화려하게 치르고자 했다. 공자는 거기에 반대했다. 안회 역시 그러길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공자는 주장했다. 그러나 공자의 말은 힘을 잃었다. 제자들은 공자의 지시를 묵인하고 안회의 장례를 후장으로 치르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안회의 아버지 또한 공자를 적막 속으로 몰아넣었다. 공자가 특별한 날을 위해 최후의 보루로 남겨 두었던 수레를 팔아서 안회의 외관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서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공리가 죽었을 때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찌 모두 자기 자식만 생각한다는 말인가!”

안회의 죽음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공자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사치스러운 것보다 검소하고 형식을 잘 갖추는 것보다 차라리 슬퍼하라고 가르쳤지만 막상 상황이 돌입하자 제자들은 변했다. 실전에서 공자의 말은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공자는 하던 일을 놓을 수 없었다. 학원회계를 정리해야 했고 얼마 안 되는 수강생들이라고 하더라도 강의를 준비해야 했다. 또 숙원이었던 <춘추>를 완성해야 했다.

안회가 죽은 다음 해 결국 <춘추>는 완성됐다. 하지만 큰 파장은 없었다. 학원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불안했고 사람들은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더 급했다. 그마나 몇몇 서평에는 노작가의 불굴의 의지가 만들어낸 역사서라를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판매부수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늘 공자의 옆을 지키던 자로도 위나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다. 자로가 위나라로 떠나던 날 공자는 자로를 불러 말했다.

“불같은 성질을 죽여라. 그것이 너의 살 길이다.”

하지만 공자는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상황은 공자의 짐작대로 돌아갔다. 이듬해 위나라 정변에 휩쓸린 자로는 발을 빼지 못하고 결국 정변에 희생되었다. 자로의 유해는 토막이 나서 젓갈로 만들어졌다. 이 소리를 듣고 공자는 집안과 학원의 모든 젓갈을 버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미 버릴 젓갈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극도의 슬픔과 적막이 공자를 엄습했다.

사람들은 공자가 학원에만 신경 쓴 나머지 세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비난했다.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말했다. 학원을 속속 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하지만 공자는 그런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파리가 날리는 오후엔 낮잠을 자고 공부방에 갔으며 학원 회계를 정리했다. 돌아와서는 강의안을 썼다. 몇 해 전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며 빼먹은 말을 생각해보았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는 어떤 제약도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했던 말도 이젠 그에게 걸림돌이 아니었다. ‘그날’은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