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5일 수요일, 빨간 날임에도 불구하고 ‘다윈’ 열혈분자들이 이른 낮부터 연구실을 찾았다. 다름 아니라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출간 기념으로 저자인 박성관 선생님과의 만남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강사와 수강생이 모두 파김치가 될 만큼 뜨거웠던 대화들. 그 1시간 30분의 기록을, 여기에 살짝 공개한다.

참석 : 박성관, 정철현, 조지훈, 하민용, 황지현(가나다순으로)

 

 

#1. 10년의 사랑

 

Q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10년 동안 쓰셨다면서요? 전 그렇게 오랜 세월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사람을 보면 너무 대단해보이더라고요. 게다가 1000여 쪽에 육박한다니. 이런 책을 쓰시는 과정이 어땠을지 궁금해요.

 

성관 한 10년 전 쯤 계약을 하고, 그 때 ‘써야지’ 마음먹었지만 엄밀히 말해 10년 동안 쓴 건 아니에요. 그 사이 다른 일도 하고 그랬죠. 사실 처음에는 금방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중간에 생각의 전환이 있었어요. 원래는 스티븐 J. 굴드 등 현대 생물학자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다윈의 『종의 기원』을 해설하고, 현대에도 창조론이 없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6-7년째쯤 되면서 굴드나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이 아주 강한 인간 중심주의를 갖고 있다는 걸 발견한 거에요. 그들의 자연선택설에 대한 이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 그들은 생물을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것으로 봐요.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다는 걸 굉장히 대단한 얘기인 것처럼 말하죠.

 

그 두 사람을 포함해서 현대 생물학자들은 대체로 자연선택설을 적자생존설로 이해합니다(물론 굴드는 이 점을 명시적으로 부정하긴 합니다만, 그 얘기까지 다 하면 여러분이 싫어하거나 최소한 졸겠죠?!). 반면 저는 적자생존이 아닌 자연선택설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적자생존이 아니라 자연선택”. 이게 다윈의 핵심인데,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죠. 사실 이런 내용을 다윈이 구사는 하고 있지만 저작으로 충분히 이론화‧개념화돼 있지는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대의 해석이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분명 『종의 기원』에서 기존의 적자생존설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 박성관 샘은 이런 부분들을 자연선택설로 봤을 때 확 와닿고 이해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셨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경험해보고 싶다면, ‘위대한 장’인 4장을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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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랜 기간 책을 쓰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었나요?

 

성관 공부 시작할 때부터 생각이 그랬는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 찾고, 그걸 열심히 하고, 건강하다.’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 잘 먹고 잘 살 거라 생각해요. 그 세 가지가 합쳐졌는데도 너무 가난하다 그러면 그건 아주 일어나기 힘든 일, 그야말로 비극이죠.

어려움이란 게 주로 경제적 문제일 수가 있는데. 저는 진짜로 이 책을 과학을 바꾸기 위해 썼어요. 이렇게 말하면 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진짜로 지난 몇 백년간의 과학을 바꾸려고 쓴 거에요. 우리에게는 ‘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하나의 틀이 있는 것 같아요. 변화를 말하면서도 ‘대단한’ 미국․프랑스 사상을 소개하고 해석하는 데 그치죠. 처음부터 ‘세계’를 닫아놓고 시작하는 거에요. 우리 모두가 세계적인 학자가 되자는 얘기가 아니라 너무 강하게 이런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겁니다. 어떤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는 건 위대하고 세계적인 일이죠. 이때 ‘방금 유럽에서 태어난 누구 아기가 더 대단할 텐데’ 이런 생각은 안하지 않을까요? 저는 우리 모두가 신이고, 각자가 특별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썼는데 경제적인 게 크게 문제가 될까요? 물론 책을 쓰면서 힘들기도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이 책이 나오면 돈도 잘 벌 것이고, 상도 받고 칭찬도 많이 받을 거라는 생각도 많이 했죠.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용의 질이나 진실성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어요. 칭찬받고 싶고 돈 많이 벌고 싶고 이런 게 문제라기보다는 거기에 좌지우지 되어 ‘할 말을 못하거나, 없는 말을 하는’ 게 문제 아닌가 싶어요. 저도 책을 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면 실망했을 겁니다. 여기에 초연해져야 될 필요는 없다고 봐요.

 

 

#2. 진화와 자연선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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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이 책에서 굴드와 도킨스의 논쟁이 다른 논쟁에 비해 매우 의미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굴드는 다윈의 ‘점진적인 진화론’에 대해 비판을 하고, 그런 굴드의 주장을 도킨스는 다시 비판하는데, 이런 논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성관 정통 다윈주의에 가까운 건 도킨스죠. 굴드는 다윈의 생각을 많이 뒤집어버렸고요. 도킨스를 정통이라 했을 때 굴드는 굳이 말하자면 수정주의자인데, 저는 굴드 얘기를 더 많이 밀고나가서 다윈 얘기를 더 수정해야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어요. 둘 사이의 논쟁이 없었더라면 제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만, 그들의 논의에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었거든요. 또 다른 학자들의 의견을 결합시켜서 아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야 된다는 생각을 한 거죠. 큰 변화는 오히려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작은 변화가 점진적이고 누적적이라는 걸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거에요. 일반적인 상식이나 논리학으로는 이게 말이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이 얘기는 13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사회학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래요. ‘혁명이 무르익었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혁명이 진짜 혁명일까요? 실제 현실에서나 이론상에서나, (점진적인) 개량과 혁명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Q 그럼 큰 변화는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갑자기 일어나는 건가요? 진화도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제 머릿속에는 외부와의 충돌이나 지구내부 폭발 같은 예 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성관 그렇죠. 개체의 차이가 누적되면 종이 되고 그게 더 커지면 속이 되고… 이게 일반적인 생각인데, 굴드는 거꾸로 갑니다. 새로운 문이 생겨나고, 강이 생겨나고 하는 식으로요. 그러니 얼마나 욕을 먹었겠어요. 모든 토대를 밀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 이게 제가 밀고 나갈려고 하는 거에요. “가장 큰 변화는 순간에 일어난다.” ‘빅뱅이론’도 따지고 보면 그런 거죠. 순간적으로 빵 터졌다고 하지, 누적돼서 일어난 거라고 하지 않잖아요. 진핵생물의 탄생(진화)이나 동물과 식물의 탄생(진화) 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그게 경미한 변화가 누적된 결과 생겨났겠어요? 그건 기존의 관계가 누적되던 흐름이 싹 바뀌는 찰나의 무시간적 도약입니다. 게다가 이건 기존의 종류에서 가지치기하면서 분화된 것도 아니예요. 바로 이 대목에서 린 마굴리스의 세포내공생설이 결합되어야 합니다. 가지치기식 종분화가 아니라 공생인 거죠. 요컨대 굴드의 단속평형설과 마굴리스의 세포내공생 이론을 엮어 새로운 진화관으로 상승시키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흠. 잘 모르시겠죠? 그런 분들은 역시 13장을 봐주시길...).

 

 

Q 자연학이라는 말도 익숙지가 않은데요. 선생님께서 책 제목을 『인간 소멸의 자연학』이라고 쓰셨는데 이 말을 어떤 의미로 쓰신 건지 여쭤보고 싶어요. 인간 중심의 과학이나 분석적 과학에서 벗어나서 다윈이 열고자 했던 새로운 과학을 나타내고자 하신건가요?

 

성관 두 가지로 말하고 싶네요. 우선은 ‘자연현상을 중심으로 보자’는 것. 무슨 얘기냐 하면, 지금 자연과학은 ‘법칙’을 발견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자연 현상들이 법칙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연현상 자체가 이질적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법칙들이 생산된다는 거죠. 즉 혼란스러운 자연을 뚫고 거기에서 밝은 법칙을 만들자는 건 잘못됐다는 거에요. 지금의 과학은 법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법학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분리가 너무나 보수적인 태도라는 거에요. 소위 인문학자들이 요즘 자연과학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건 굉장히 이분법적인 태도입니다. 대상과 방법 모두에 있어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다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오히려 경계를 깨야할 사람들이 인문학의 가치를 지키자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죠. 그래서 대중들이 인문학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기존의 철학이나 문학이 왜 특별한지에 대해 정교하게 연구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만’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예컨대 철학을 한다면, DNA의 철학적 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건 자연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자연학’이란 어떤 분과학문이라기보다는 태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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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앞으로의 계획

Q 요즘 물리학과 수학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세요?

 

성관 계획이 되게 많았는데 건강이 좀 안 좋아지면서 약간 의욕이 사라졌어요. 좀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해요.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은 다윈의 다른 저작들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소개해볼까 하는 것이고요. 현재 구로에서 하고 있는 ‘굴드 대 도킨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현대 생물학에서 좀 비주류적인 학자들의 생각을 잘 구성해서 다윈과 함께, 혹은 다윈을 넘어서서 생물학의 새로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Q 강의 때 들은 기억으로는 다윈 책들은 대부분 따분한 게 많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다윈의 어떤 책을 염두에 두고 계신가요?

 

성관 『지렁이와 땅』 그런 책도 괜찮죠. 『식물의 운동력』 이런 것도 궁금하지 않아요? 아니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라든지. ‘성선택’, 이것도 좀 다르게 읽을 필요가 있다고 봐요. 지금은 너무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여기엔 아주 매력적인 주제들이 들어 있어요. 사실 다윈은 ‘성’에 대한 내용으로 예술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다고 생각해요. ‘암컷이 수컷을 예술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에서 ‘따라서 예술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끌어낼 수 있죠. 물론 다윈이 직접적으로 이 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는 거죠. 이게 맞든 틀리든, 어쨌든 토론은 될 수 있잖아요? 어때요, 이런 얘기라면 읽어볼 마음이 들지 않아요? 그럼 고전이 살아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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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당일 저녁에 종의 기원 강좌가 예정돼있어 시간관계상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되었다.

진화가 뭔지 아리송해 공부하고 싶어도 도중에 참여하기 마땅한 프로그램이 없어 아쉬웠던 이들, 주목하시라. 다음달 23일(수) 부터 바로 이 책,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을 함께 읽는 세미나가 열린다. 새로운 자연학, 생명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맛보고 싶은 당신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마지막 7주차에는 저자인 박성관 샘의 특강도 예정돼 있다고 한다.

세미나안내(http://www.transs.pe.kr/xe/?document_srl=373778)

 

 

 

 

·정리/ 수유너머웹진 황지현 기자(mobetter_ing@naver.com)

사진/ 수유너머웹진 조지훈 기자 (clone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