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 OT를 시작으로 약 5개월 동안 진행되었던 '대공세(대학생공부세력화) 시즌 2'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사기열전>, <사생활의 역사>와 같은 책들을 읽으며

춘추전국시대와 혁명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 와중에 전설(?)을 하나 남겼는데, 그것은 세미나 인원에 관련된 것입니다.

맨 처음, 약 20명이 넘은 인원이 공플을 점유하며 시작했던 대공세 세미나는 시간이 갈 수록 점차 사람이 줄어

마지막에는 7명이 미니공플에서 졸업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대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한 것일까요.

2 편의 에세이를 통해 대공세 시즌2의 공부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남은것   

 

 

   지난 3월, 20명가량의 인원으로 화려하게 시작했던 대공세는 5개월 만에 7명이 남은 채 소박하게 끝이 났다. 이런 대공세를 일컬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정의 세미나’라 말한다. 하긴 최후 7인의 생존자들이 공부에 대한 열의가 남달랐던 것은 아니니 '열공 세미나'는 일단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우정은....? 애증도 우정이라면 대공세 세미나는 아마 최고의 우정을 자랑하는 우정의 세미나였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악담, 냉대, 비하가 끊이지 않았으니깐 말이다. 텍스트는 어려웠다. 정말 어려웠다! 나 역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벗어나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다보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일 수였고, 침묵이 감도는 시간도 많아졌다. 이런 세미나를 견디지 못한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갔다. 그들은 '세미나와 학업 병행이 힘들다',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쳤다'는 등 짧은 말을 남겼을 뿐이다. (그중엔 대공세 특식 날 처음부터 끝까지 감자전만 부치다 지쳐 사라진 친구도 있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공부에 대한 열의도, 우정도 아니라면 우리는 왜 놓아버리지 못하고 잡고 있었던 것일까? 정말 우리에겐 우리도 눈치체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애정이 뿌리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일까.....☞☜?

 

   7명이 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하자면 우선 '아무 생각 없었다'라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대공세 시즌2의 목표는 '역사를 통해 길 찾기'였으나 사실 그것 조차 세미나가 긑나고 나서야 알게될 정도로 (적어도 나는) 아무 생각도 기대도 포부도 없었다. 심지어 약 5개월이라는 긴 세미나 기간은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잊게 만들었고, 나중에는 세미나를 빠질 핑계를 만드는 것조차 귀찮게 느끼게 되었다. 그렇기에 다른 생각 없이! 세미나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보니 우연찮게 마지막까지 남게 된 것이다.

또 한가지 이유는 '뻔뻔함'이다. 매 시간 자신이 할당받은 부분을 친구들 앞에서 설명하며 세미나가 이루어 졌는데, 여기서 바로 우리의 '뻔뻔함'이 마음껏 활개를 쳤다. 우리 앞에 절대적으로 '어려워' 말 못할 텍스트란 없다. 우리는 잘 알건, 모르건 일단 설명을 했다. 잘못된 답과 엉뚱한 질문들을 마음껏 했다. 비난과 비웃음이 쏟아졌지만 이 역시 뻔뻔함으로 버티어 낼 수 있었다. 웬만한 갈굼에는 못들은 척 넘어갈 수 있는 뻔뻔함의 내공, 그것이 우리 안에 존재했었고, 5개월의  대공세 기간동안 더욱 커져갔다.

 

중국지도.JPG이런 우리에게도 남은 것이 있다. 첫째,중국 지도그리기!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말 큰 수확이다. 사기열전과 더불어 우리의 튜터로 참여해 주신 옥 상 덕분에 우리는 매시간 형광펜을 들고 지도를 그려나갔다. 처음에는 황하강의 위치를 바꿔가며 중국의 지리역사를 새로 쓰는 수준으로 그렸지만, 나중에는 미세한 골까지 표현할 만큼 지도 그리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wow!)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큰 해방감을 경험했다. 무언가 신경이 무지 쓰이는데 해결나지 않았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의 행복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  대공세가 나에게 그러했다.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왠지 찜찜했고, 아무리 뻔뻔함으로 버티어도 난해한 텍스트는 종종 나를 버겁게 했다. 나만 그런 것이아니었다. 우리가 세미나를 위해 모여서 세미나 시작 전 나누었던 말은 "언제 끝나"였다. 무기력하긴 했지만 우리는 그래도 끝까지 세미나를 끝냈다. 무엇인가를 벌려놓고 그것을 마무리 짓게 되면 잃어버렸던 기(氣)가 다시 생성된다고 한다. 4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벌려놓았던 대공세 세미나를 끝까지 마무리 한 것은 그동안 빼앗겼던 기(氣)를 회복하는 기쁨이었다.

 

   우리가 대공세 시작 전에 기대했던 것처럼 '역사를 통해 내 삶에 적용할 지혜를 배웠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단지 '중국의 지도를 그릴 줄 안다는 것'과 '일을 마무리 지었을 때의 행복'을 알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내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전부이다. 우리의 우정은 어떻게 되었냐고? 그것은 여전히 의문이지만 끝을 맺고 나니 힘든 싸움에 함께 참여한 ‘전우애’는 분명 생겨 있는 듯하다.  '실패한 세미나'라는 소문도 있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비난과 비웃음이 속에서, 힘겨운 텍스트 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 수유+너머 남산 웹진 객원기자 명혜원 

 

 

    

 

 

  시시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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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무엇일까? 흔히 역사를 읽는다고 할 때 그 속에서 이야기되어지는 것들은 주로 국가의 탄생, 왕들의 전쟁, 정치가들의 암투, 법률의 제정 따위다. 이것들은 아주 많은 사람들의 삶을 결정짓는 것들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표현해내지는 못한다. 한 사람의 삶을 읽는다고 할 때는 아주 커다란 사건들 외에 보다 작고 알기 쉬운 것들도 필요로 한다.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책상과 노트북 같은 소소한 물건들이나, 이 더운 여름날을 사람들이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것들에 흥미를 갖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은 흔치 않다. 이상하게도 역사가들은 폭풍이 내려치는 가운데 날붙이를 든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날의 이야기를 찾아다니지, 평화로운 날을 한가로이 보내는 이야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사생활의 역사는 위에 말했던 ‘흔치 않은’ 책의 부류에 들어가는 책이다. 물론 이런 책을 짓게 된 사람들의 뒤를 캐다보면 그들이 이런 책을 쓰게 된 연유를 찾게 될 것이다. 그 연유가 또 역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만한 아주 거대한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들 자체는 대개 아주 시시한 것들로 누구네 집안 얘기를 살핀다거나, 감옥과 병원을 훑고 다닌다거나, 그도 아니면 남의 일기를 훔쳐본다거나 하는 일들이다. 가령, 일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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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를 쓰는 행위 바로 그 자체가 죽음에 대한 고뇌를 생생히 북돋았고, 또한 이 고뇌를 쫓아내고자 일기를 썼다. 자신이 어떻게 낭비되고 있는가를 밝혀냄으로써 절제 전략을 꾸밀 수 있는 방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들라크루아는 1824년 4월 7일자 일기에 ”내가 느끼는 것의 역사를 보존함으로써 나는 이중으로 사는 셈이다. 과거가 내게 되돌아올 것이며, 미래를 항상 거기에 있을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생활이 더욱 내밀화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보다 주목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신체가 점차 쇠락해가는 데에 대한 두려움 또한 갖게 되었다. 그 ‘손실’을 두려워하게 된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 성찰에 몰두하게 되었고, 이는 중세 교회의 고해성사와도 맥락을 같이 하여 일기 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사생활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이처럼 ‘어째서 이런 물건을 사용했을까?’, ‘어째서 이런 풍습을 가지고 있었을까?’, ‘어째서 이런 장소들이 만들어졌을까?’ 따위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그 시절의 일상들을, 그 시절의 ‘당연함’을 뒤쫓는 작업이다. 이런 추격의 성과는 날에 따라 다르다. 어느 때는 답을 도통 얻지 못해서 적당한 수준에서 끊고 넘어가는 때도 있지만, 질문의 답을 쉽게 얻는 때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대개 답을 쉽게 얻을 때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비춰 보아 비슷한 부분이 발견되었을 때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묘사한 『2010년판 사생활의 역사』를 쓴다면 어떤 책이 만들어질까? 우리들의 삶은『사생활의 역사』가 담아내고 있는 근대의 유럽과 얼마나 다를까? 어쩌면 좀 더 시간이 지난 미래에 이 시대의 역사를 쓴다면 지금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현대인들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음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과 한반도 대운하 사업 등등에만 관심을 가진 채 그런 이야기들만 나오는 역사를 써내려간다면 우리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끼어들 틈이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사생활의 역사를 읽으며 우리가 했던 경험들, 곧 과거의 일상에 비춰 지금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경험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역사라는 단어가 유독 장중히 울리며 아주 커다란 산맥의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것은 그 커다란 이야기를 자기네 삶과 연결시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의 문제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에 가장 큰 흥미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뛰어든다. 결국 역사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엄숙한 얼굴만이 아니라 보다 자질구레하고 평범한 얼굴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역사에 더 가까이 다가섰을 때 사람들은 그에 비친 거울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생활의 역사는 그렇게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수유+너머 남산 웹진 객원기자 차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