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길은 내가 간다 

 

 

  이번 문턱기사에서는 곰추장(최진호)을 표적으로 삼았다. 나에게 그는 연구실의 닻 같은 존재로 느껴졌기에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며 공부를 밀고나가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싶었다. 사실 우리들은 종종 뭘 하다가 예를 들면 피아노를 배우거나 춤을 배우다가 또는 어떤 새로운 공간에 가서 적응하려고 하다가도 사소한 사건에 좌절하고 ‘난 여기에 재능이 없나봐’라거나 ‘이 공간과 나는 맞지 않나봐’라면서 다른 것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심하면 ‘난 바보 멍청이인가 봐, 난 인복도 없고 머리도 나빠서 뭘 해도 제대로 하는 게 없어’라며 자학을 하기까지 한다. 이러하니 누가 칭찬을 하거나 말거나, 욕을 들어먹거나 말거나 자기가 하던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 자신의 목표지점과 비전을 놓치지 않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곰추장에게 묻고 싶었다. 그 우직함의 비법은 무엇이냐고, 문턱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지금처럼 꾸준할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이냐고 말이다.

  그의 대답은 전혀 내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건 이렇게 하면 돼’가 아니라 “우직하다니, 그건 내가 아니다 야. 네가 생각하는 나지.”였다. 자신은 절대 우직하지 않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그. “하지만 어쨌든 질문을 받았으니까 대답은 해야지.”라면서도 금방 또 산만해져서 지나가는 이를 붙잡고 방금 보고 온 집 자랑을 한참 늘어놓았다. 나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집 자랑을 마치고 그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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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턱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 미리 ‘나는 이정도만 할 수 있어’라며 자신의 한계를 결정짓고 스스로를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은 좋지 않지요. 뭐든지 하다보면 내가 정해놓은 테두리를 넘어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라는 것. 그런 점에서 연구실에 처음 온 사람들이 온갖 세미나를 다 하다가 결국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한계를 느끼고 쓰러지곤 하는데 그건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봅니다. 이것저것 하다보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랬다. 문턱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먼저 한계지점을 설정해놓고 ‘나는 이것을 못 넘어’라는 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테두리 안에 가두어 문턱을 현실화시킨다는 점을 그는 지적하고 있었다. 머리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먼저 해보고 나서 이건 ‘맞지 않다’라거나 ‘맞다’라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궁금한 점이 생긴다. 막상 ‘나에게 맞다’라고 확신이 들었지만 그것을 또 꾸준히 해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곰추장이 “나는 공부하며 살겠다.”라고 마음먹은 이후 그 끈을 놓치지 않은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말이다. 사실 공부하다보면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도 많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좌절하거나 질투로 몸부림치다가 다 포기해버리고 싶어지는 때는 없었는지 궁금했다.

 

  “저는 빨리 빨리 가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사실 감각이 좋은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요. 질투도 나고. 하지만 그걸 안 견딘다고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어떤 이가 똑똑해서 내가 맘이 아픈 것이 아니라 자기가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남의 눈치를 보고 질투가 생기는 거지요. 걔가 똑똑해도 나는 나고 걔가 못나도 나는 나인겁니다. 내 상황이 달라질 건 없는 것이지요.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이 똑똑하고 잘 되어야 내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흔들리고 잘 안될 때 그냥 지금 하고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없는 거죠. 원래 불공평하게 태어나잖아요. 그러니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지요.”


  누가 주변에서 난리 브루스를 춰도 나는 나라는 것. 내 진실을 믿고 간다는 그의 뚝심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억지를 부리고 싶었다. 왜 그래도 너무 쓸쓸하거나 짜증나서 세미나에 가고 싶지 않은 적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물론 그런 적 있었지요. 하지만 그 세미나를 내가 하겠다고 한 거잖아요. 그럼 약속을 지켜야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에게는 억지가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공부는 무엇인 걸까. 그것이 무엇이기에 이리도 추호의 의심 없이 자신의 길을 밀고갈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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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재주가 없어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뭐 이런 거 아니고, 재주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 공부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딴 거 잘 못하니까 저는 공부를 그나마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하긴 노가다 이런 거 했으면 잘했을까.(웃음) 어떤 재주가 있다면 그걸로 다른 세상과 접속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러지 못하니까 책을 통하는 것이 빠른 겁니다. 어떤 책을 만나던지 그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싶어요. 이런 말 하는 인간은 어떤 인간인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그 사람이 봤었던 세계를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요. 니체를 보면 니체가 봤던 세계가 궁금하고 노신을 보면 노신이 어떤 세계를 봤는지가 궁금한 거죠. 그 사람이 어떤 실감을 느꼈는지 그 상을 잡고 싶고 그걸 실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너무 문자 속에 빠져있다 보면 그게 잘 되질 않아요.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과 만나는 내 나름의 코드를 잡고 싶습니다. 그 사람과 만나는 코드, 회로가 있는데 그게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걸 잘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그에게 공부는 다른 세상과 만나는 통로였다. 거장이 바라본 세상과 통하는 그만의 회로를 만들고 싶어 하는 곰추장, 그는 앞으로도 망각해버렸던 것이나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접속하게 된 그만의 코드, 회로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이다. 이미 그는 묵자, 노신과 접속하며 그들이 바라본 세계를 읽어낸 그만의 방식을 글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 목표냐는 나의 질문에 “아니, 난 그냥 쓸 때 가장 많이 배우기 때문에 쓰는 거야.”라고 그는 대답했다. 책을 잘 이해했을 때 다른 세상이 열리기에 책은 늘상 새롭다고 말하는 그,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늘 있으니까 그것 자체가 마냥 즐겁단다. 그는 그야말로 ‘공부장이’인 것 같다. 공부를 향한 이런 천진함이 문턱을 넘어서는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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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왔다 갔다 할 때도 있고. 하지만 뭔가 거창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다르게 살 수 있는데 안사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런 거 없어요. 나는 그냥 이 모습대로 사는 겁니다. 그냥 내길 가는 겁니다.”

 


 

※ 수유+너머 남산 곰추장 최진호는 연구실 십년지기이다. 지금도 연구실 친구들과 공부하랴 글쓰랴 탁구치고 카페지기하고 주방당번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유너머 남산 웹진 기자 : 강애경(aenystor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