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아큐!

연극이 끝나고 우리가 배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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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ro] 아큐의 등장

 

소설『아큐정전』이 연극으로 되기까지

연극 <오마이아큐!>는 투애니곰 세미나팀으로 학술제에 참여한다는 것에서 시작된 작업입니다. 왜 하필 연극이었냐 하면, 우리가 노신을 잘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 진호 샘이 연극을 추천했거든요. 그리고 그 이유를 실제로 연극을 하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아큐정전이 희곡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연극을 하려면 일단 아큐정전이라는 텍스트를 여러 번 열심히 읽어야만 합니다. 그 텍스트를 가지고 우리가 보여주려고 하는 게 뭔가라는 주제가 정해지면 장편, 중편과 같은 큰 형식이냐 단편 같은 작은 형식이냐를 정합니다. 장편이 큰 나무라면 중편은 기둥이고 단편은 나뭇잎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각 형식이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이 다르고 효과도 다른데 이번에 오마이아큐는 남은 시간상 장편으로 가면 극 구성만 하다 끝날 공산이 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 놓치지 않으려는 것 하나를 가지고 짧게 그러나 강렬하게 칠 수 있는 단편으로 가기로 결정했지요. 주제는 아큐의 일관된 승리 방식이었습니다. (이걸 그냥 ‘정신승리’라고 말해버리는 건 아큐의 세상에 제대로 들어간 게 아니라 그냥 밖에서 바라본 거라는 생각에 따라 부러 ‘정신승리’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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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도박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주제와 형식이 정해지자 그걸 잘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장면을 뽑았고 그것이 도박판에서 파토나는 현장, 건달에게 맞는 현장, 농사일하다가 칭찬받고 좋아하는 현장이었습니다. (농사일하는 부분은 나중에 intro와 outro로 넣었습니다.) 그렇게 1,2,3막을 확정하고 나서 한 문장으로 기‧승‧전‧결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1막 당 총 4문장이 나오겠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문장들이 각 막의 씬이 되는 겁니다. 기승전결을 이루는 문장들은 철저하게 사실과 행동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부끄러워한다’, ‘좋아한다’, ‘편안해한다’가 아니라 ‘얼굴이 빨개진다’, ‘콧노래를 부른다’, ‘누워서 잔다’ 이런 구체적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큐가 받은 패도 그냥 ‘좋은’ 패가 아니라 정확히 어떤 패인지, 아큐랑 같이 도박하는 사람들은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더 나아가 그 전 판은 게임이 어떻게 돌아갔는지까지 다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에 따라 아큐가 이번 판을 어떻게 생각할지도 달라질 테니까 말이에요. 그런 마음들을 헤아리려면 내가 그 게임의 룰을 잘 숙지하고 있는 걸 넘어,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기‧승‧전‧결의 문장들은 ‘삼팔 광땡이다, 장땡이다, 칠끝이다’라는 것만 알려줄 뿐, 그 패가 내 손에 들어왔을 때의 기분까지 말해주지는 않거든요. 애초에 우리 사는 일이 그렇지 않던가요. ‘어떤 상황에서는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해!’라는 건 정해져 있지 않고, 개개인마다 다른 것이니까. 그래서 더 단순한 문장들이 오히려 더 많은 세계를 담을 수 있다는 역설을 기승전결 문장 짜면서 느꼈습니다. 하나의 감정으로 획일화 되지 않는, 시킬 수 없는 문장들.

기‧승‧전‧결을 확정하고, 메모를 안 보고도 그걸 줄줄 읊을 수 있는 단계가 되고난 다음에는 역할을 나누고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떤 인물인지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아큐의 세상 속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아큐에 대한 연극을 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 인물이 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자면 아큐보다도 이름 없는, 잘 모르는 건달, 도박꾼, 노인들도 쓰밍, 꾸어똥, 칠근, 소디, 왕털보, 왕룽이 되어야 했습니다. 실은 그들에게는 또다른 태산 같이 많은 시간들, 인생들이 있는 겁니다. 다만 지금 아큐와 도박을 하고, 때리는 순간만이 조명 아래로 끄집어내진 것뿐이죠.

 

 

아큐의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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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건달에게 놀림받고 실컷 얻어맞음

 

이렇게 해서 밑작업이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갑니다. 실은 밑작업과 본격적인 연습으로 딱 구분할 수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같이 막을 구성하고 기승전결 문장을 만들고 건달과 도박꾼과 아큐와 노인에 대해 얘기하면서 조금씩 아큐의 세계에 가까워졌던 거니까요. 어쨌든 직접적인 ‘부딪힘’, 그 세상속으로 ‘뛰어듬’에 대한 실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습하면서 하게 됐다고 할 수 있겠죠. 그 인물에 대해 얘기하는 걸 넘어서, 내가 칠근이가 되고, 쓰밍이 되고, 아큐가 되어야만 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저는 조금씩 깨달아갔습니다. 어떤 존재를 드러내고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싸워야 되는구나! 말 못하면 아무도 모르고, 말해도 슬그머니 말하면 묻히는구나. 부딪히고 싸워야 되는 거였습니다. 싸움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몸을 사렸는데 그걸 겁내기만 해서는 칠근이라는 인물을, 그리고 나를 살릴 수가 없더라고요. 물론 이건 왕털보 윤미나 다른 캐릭터들이 받쳐주고 이해해주지 못하면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싸우는 동시에 그 싸움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제가 ‘표현해야 되는구나’라는 걸 깨닫고 있을 즈음,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있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클리셰와는 다르지만 어쨌든 ‘연기’라는 게 뭔지, 그 감에 대해서 익히고 있었다고 할까요? 아큐 용택의 경우는 “아큐처럼 겉으로 망가지는 캐릭터를 나를 던져 가지고 연기한다는 것, 그 때의 감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느꼈다고 합니다. 사실 망가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고 해요. 다만 나는 망가진다고 한 건데 감독님이나 동료들이 “표정봐라. 무슨 제임스 딘이냐”라고 했을 때 당혹감을 느끼는 동시에 ‘아, 나는 망가져서 아큐를 연기하려고 했는데, 아직까지 잡고 놓지 못하는 어떤 게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걸 넘어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힘을 뺀다’는 것. 나는 그전까지는 계속 어떤 표정을 보여줘야 될 것인가 이런 걸 의식하고 있었어요. 실은 그런 건 의식할 필요가 없는 데 말이에요. 그 순간에 그 상황에 따른 표정이 나오면 되는 것이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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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막] "그래, 내가 벌레다! 네들은 벌레라고 해 본 적이나 있냐."

 

쓰밍 아림이는 이렇게 말하네요. “때리는 게 좋았”다고. 그냥 몸을 쓰는 게 좋았던가 봐요.처음에는 맞는 애가 아플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고, 그냥 자기 좋은 감정만으로 때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꼬봉 꾸어똥과 대화할때는 시니컬한 건달이다가 아큐를 때리는 데서는 갑자기 폭력적인 건달이 되어 버렸죠. 곡선이 아니라 직선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계속 연습을 하면서 건달이 아큐를 때리는 건 커다란 분노의 감정보다는 친근하고 일상적인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사실 아큐와 쓰밍이 오늘 첨 만나서 맞고 때리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갑자기 확 치솟는 그 감정은 건달 쓰밍의 감정이 아닌 정아림의 감정과 섞여 있는 거라는 걸 깨달은거죠. “물론 쓰밍, 소작농의 아들, 아비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다른 대책은 없는 그런 불안한 영혼 이런 건 내가 캐릭터에게 덧씌운 것인 만큼, 건달과 내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 사이에서 감정의 기복을 조절하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러면서 나를 더 이해하게 됐고요.”(아림)

각자 이런 저런 것들을 느끼고 배웠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느꼈던 가장 큰 충격은, ‘누구도 아큐를 비웃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아큐가 불쌍하구나, 어떻게 저런 취급을 받고 살수가!’라는 것도 아니고요. 그가 잘났나 못났나,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그 자신의 정의를 갖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그 자체. 그런데도 아큐는 왜 도박판에 홀로 남겨지고, 건달들에게 얻어맞아야 하는걸까? 저마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누구는 잘난 사람이 되고 누구는 못난 사람이 되는 건 왜일까. 그건 남은 시간 동안 좀 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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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ro] 일꾼 아큐

 

어떻든 아큐를 이해하려고 해도, 아큐정전으로 극을 만들려고 해도 그건 아큐 혼자로는 안되고 그 옆의 인물들까지도 파고들어야만 한다는 것. 특히 대본이 없었던 만큼 예를 들어 칠근이가 뭔가를 말한다면 그건 주어진 대사로서가 아니라 언제나 그 인물들 간의 관계 속에서 말한다는 것. 그것이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껴졌기에 더 신기하고 강하게 다가오는 체험이었습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인물들은 필연적으로 부딪히고 아니 서로 이해하려고 하면 부딪힘조차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느꼈지요. 극적인 상황 속에서 감정들이 끓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도 같아요.

연극이 끝나고 이제 누군가는 전면적으로 연극의 장에 뛰어들고 싶어서 여기의 장을 정리한다고 하고, 다른 이들도 각자 자기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며 고민하고 결심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은 지금까지 속에 들어 있던 그런 생각들이, ‘연극’을 만들고 하는 과정에서 크게 일깨워졌고, 그런 것들이 폭발하면서 충돌한 게 아닐까 싶어요. 부딪히면 아프고 괴롭기도 하지만 결국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또 자신에게도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연극이 끝난 지금, 그 과정을 되돌아보고 나서의 소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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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 웹진 황지현 기자 (mobetter_i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