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송하는 금요일>(이하 '<낭금>')은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쓰고, 입으로 낭송하고, 귀로 들으며 온몸으로 책과 만나는 훈련을 하는 수유너머 남산의 프로그램입니다. 연애문학, 마르케스, 현대 중국 문학을 거치며 <낭금> 시즌 4에서는 연암과 그의 시대의 문장들을 만납니다. '연암과 그의 시대: 사유를 탐하라, 문장에 취하라!'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세요.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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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하는 금요일, 내 인생의 한 문장을 찾아서! 

 

 

 

 

1. 오, 마이 문장!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꼭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한 문장은 있는 법이다. 읽고만 있어도 의지가 되고, 왠지 편안해지는 그런 문장. 어쩌면 바로 이 한 문장을 만나려고 그렇게도 많은 책들을 읽는 것은 아닐까. 이번 <낭송하는 금요일>의 튜터 문성환 선생님은 바로 그런 문장들을 들고 나오신다. 지금까지도 본인을 설레게 한다는 ‘오, 마이 문장!’, 그건 바로 연암과 그의 시대의 문장들이다.


박지원, 이덕무, 홍대용, 이옥, 정약용. 이들이 바로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들이다. 흔히 조선하면 “공자 왈, 에헴~”하며 고담준론이나 늘어놓는 그런 고지식한 선비들의 시대를 상상한다. 하지만 이번 <낭금>의 인물들은 그런 우리들의 상식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젊은 시절 우울증을 앓고, 과거 시험을 떼려 친 선비, 기이한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또 짓다가 급기야 반성문을 쓰는 유학자. 바로 이 기이한 조선 지식인들의 문장들이 지금 우리를 부르고 있는 거다.

 

 

2. 문장에 취하라!


  사실 비밀(?)인데 문성환 샘은 한 때 소설가 지망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낭금>에서 함께 읽을 문장들을 떠올리는 선생님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이거야 말로 ‘문장에 취한 자’의 표정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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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의 <의산문답>이라는 글을 읽으면서도 굉장히 놀랐고, 이덕무의 글을 읽을 때는 한 사람을 보는 것 같았어. 글이 너무 깔끔해. 아, 이 사람은 정말 단정한 사람이구나 싶었지. 연암의 글을 읽으면 큰 물결을 만나는 것 같아. 그냥 손끝 팔끝에서 나온 문장이라면 그럴 수 없지. 정말 삶의 문제와 직결되는 글인 거야. 나도 글 쓰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문장 정말 닮고 싶기도 해.”

 

어찌 보면 이번에 <낭금>에서 만나볼 이야기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가령, 친구들과 술 취해서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은 이야기 말이다.(박지원, <취한 채 운종교 다리를 걷다>) 근데 이 평범한 글들이 왠지 마음을 짠하게 하고, 나를 불편하게 한다. 대체 왜? 그건 텍스트가 지금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 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머리보다도 먼저 나의 신체가 그 이야기에 감응하고 있는 거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도 전에 텍스트가 나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상태! 그야말로 우리는 텍스트에 취해 다른 세상으로 가고 전혀 다른 내가 되는 것은 아닐지.

 

 

 

3. 사유를 탐하라!


글은 곧 삶이다. 우리를 취하게 하는 문장에는 저자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 자신과 시대를 고민했는지 그 삶과 사유가 담겨있는 법. 그렇다면 이번 <낭금>에서 만나볼 인물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자기 시대와 만났을까.


당시 조선에서는 써야 할 문장의 모범이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 이름도 고통스러우니 바로 ‘고문(古文)’이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마천의 문장이나 당송 팔대가의 문장을 똑같이 흉내내는 훈련을 해야 했다. 똑같은 구절, 똑같은 어순, 심지어는 그 내용도 비슷하게 문장을 지어야 했다고 하니 이거 글쓰기 참 쉬웠다 해야 하나 아니 퍽퍽했다 해야 하나. 그런데 박지원, 이옥, 이덕무 등을 필두로 기이한 문장들을 짓기 시작한다. 참으로 경박하고, 그런데도 왠지 끌리는 기이한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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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의 저자 이옥은 고문형식에서 벗어난 문체를 구사하다 성균관에서 쫓겨나 군대에 보내진다. 보통은 그런 경우에 시간이 좀 지나면 복귀되기 마련이라고 한다. 그런데 행정상의 실수였는지 이옥은 영영 복귀하지 못했고, 조선을 떠돌며 엄청난 문장들을 지었다고 한다. 연경, 상부살이 잔뜩 낀 과부이야기, 쪼갠 수숫대 안에서 발견한 벌레 이야기 등. 그런데 이와 같은 문장들의 출현은 단순히 재미있다거나 특이한 표현 형식의 등장으로만 취급할 문제가 아니다. 그건 정말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삶의 양식의 출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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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 처음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봐.  당연히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겠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리듬감일 테니깐. 근데 사실 거기에는 새로운 정신 그리고 삶이 담겨있지. 그리고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거기에 끌리는 거야. 그래서 계속 듣게 되고 찾게 되고 그렇게 그 시대를 휩쓸게 되는 거지. yeh~”

 

 

 

 

 

 

 

고문으로 표상되는 저 옛날 중원의 사유는 당시 조선의 통치 이데올로기이자 주류적인 삶의 양식이었다. 그런 고문을 거부하고 ‘지금-여기’의 이야기들을 쓴다는 것, 그건 그 자체로 시대에 대한 저항이고, 다른 삶을 생산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조 대왕이 정책적으로 문장 검열을 했을까!

 

이처럼 ‘사유를 탐하라!’는 것은 조선 후기의 문장들이 품고 있는 깊은 사유와 삶을 탐사해보자는 제안이다. 물론 우리같은 고전 초보들에게는 한 문장을 낳은 시대적 맥락이나 사상사적 배경 등을 읽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문장이 파격인지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당시에 어떤 문장이 모범으로 여겨졌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지식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유머를 쳐도 웃지를 못하고 파격을 구사해도 파격인지 모르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함께 책을 읽어야 한다. 튜터 그리고 도반들과 함께! 이렇게 함께 읽다보면 나 혼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듣기도 한다. 같은 글이라 해도 나하고는 전혀 다른 조건이나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읽힐 수 있으니깐 말이다. 풍성해지는 의미와 느낌들, 이런 것이야말로 함께 책 읽는 <낭금>의 가장 큰 소득은 아닐까.

 

 

 

4. 금요일 밤에 낭송을!


<낭송하는 금요일>의 밤 풍경을 상상한다. 때로는 저자의 팬클럽이 되어 환호를 보낼테고, 때로는 한 글자 한 글자를 곱씹으며 읽을 것이다. 어떤 날은 문성환 샘이 들려주시는 조선의 숨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지. 이 밤에 만나는 것은 딱딱한 고전도, 화장실 같은데 붙어있는 그냥 듣기 좋은 잠언도 아니다. 그건 정말 내 인생의 한 문장. “글이 나한테와서 말을 걸고 나를 건드리게 되면 정말 내 인생에 큰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문성환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당부하신다.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은 단 한편의 글이라도 자기 식으로 읽는 거에요.” 저자의 삶, 그의 시대 등을 통해 글쓴이가 이 문장에서 이야기 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익혔다면, 그 다음에는 그것이 내 삶과는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고단한 작업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 거기에는 대단한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낭송하는 금요일에서도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낭송하는 금요일>의 즐거움.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즐거움이다. 문장에 취하고 사유를 탐한다. 그리고 지금 내 한계를 살피고 문장이 이끄는 새로운 사유로 기꺼이 자기 자신을 던진다. 이 유희에 끌리는가? 그렇다면 올 여름 금요일 밤은 <낭송하는 금요일>과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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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금>으로!

 

 

 

 

 

수유너머남산워커스 밥수영기자 sprangco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