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 있던 나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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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 대학생 강학원에서는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를 읽습니다. 성의 역사? 제목   만 들으면 섹슈얼리티의 역사를 생각하게 되는데 실제로 읽어보면 더 많은, 우리가 만나지 못 했던 시각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번에 강학원에서는 무엇과 만날 수 있는 걸까요?

 

 

Q. 이번 대학생 강학원의 주요 테마가 무엇입니까? <성의 역사>를 고르게 된 이유는?

 

A: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대개가 소설이나 ‘자기 개발서’이고 어학원, 자격증 학원에 같은 곳에 몰리는 걸 보면 사람들의 자기 개발 욕망이 대단한 것 같아요. 새벽엔 운동하고 회사 가서 일하고 점심 먹고 엠피쓰리로 어학공부하고 퇴근 후엔 업무 능력 개발을 위해 또 뭘 배우고...(생각하니 뼈빠짐-_-;;) 그런데 푸코는 그런 것 말고 다른 식의 자기 개발(자기 배려)를 말해요.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자기 개발 말고 정말로 자기를 배려한다는 것, 자기 신체를 배려한다는 것. 이런 게 뭘까요? 푸코는 <성의 역사> 2권인 <쾌락의 활용>에서 고대부터 형성된 자기해석학을 중심으로 <성의 역사>를 연구했다고 해요. 현대의 개인이 어떻게 스스로를 성의 주체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는가. 이를 위해서 푸코는 이론적 방향 전환이 필요했고 고대 그리스의 문헌에서부터 계보학적 탐색을 시작하죠. 푸코는 이렇게 연구하게 된 이유가 ‘호기심’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가 말하는 호기심이란 “알아야만 하는 것을 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해요. <성의 역사>라고 하면 호기심이 많이 생길테지만...^^. 강학원이 끝날 무렵엔 얼만큼 자기 자신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열공해 보길 바라요.

 

 

 

Q: <성의 역사>라는 제목을 들으면 19금이 떠오르는데 실체로도 그런 내용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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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마도 <성의 역사>를 읽으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들을 많이 깨면서 공부해야 할 거에요. 우리가 ‘쾌락’이라고 하면 자기가 원하는 성적 쾌락을 다 추구하는 것을 쾌락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푸코는 그것이 아니라고 확실히 이야기해요. 오히려 욕망에 휘둘리는 것보다 자기를 ‘절제’하는 것, 성적 욕망은 쉽게 과도해지는데 어떻게 적절한 쾌락을 얻을 수 있도록 제어하는가. 이런 것을 그리스 문헌에서 찾아내죠. 개인적 삶에서 가장 영광스런 승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승리이고 가장 수치스러운 패배, 가장 비열한 패배는 자신에 의해 정복당하는 것이라고 하니까요.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를 주체화한 거죠.<쾌락의 활용> 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양생술, 가정관리술, 연애술을 자세하게 언급하죠. 자기와의 관계, 아내와의 관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푸코는 자기 주체화의 문제를 찾아보고 싶었던 거예요.

 

 

 

Q: 푸코라는 철학가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그의 스타일?!ㅋㅋ 폴벤느가 금붕어와 사무라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금붕어는 어항 속을 살아가잖아요. 어항 밖을 볼 수는 없어요. 그러나 어항 끝까지는 갈 수 있어요. 그리고 거기서 막 몸부림쳐요. 최소한 푸코는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사유의 테두리들을 계속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는 최선을 다해서 사무라이가 칼을 쓰듯 그 외형을 깨뜨리려고 했어요. 어항을 깨뜨리는 것처럼요. 항아리 속의 검객!들뢰즈가 푸코에 대해 했던 말과 비슷한데 푸코가 매력적인 게 그는 항상 위험한 선을 탔다는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그 선이 난폭하게 돼요. 그가 열정적이었던 것도 광기라든가 열정이라든가 하는 위험한 선을 탔기 때문이고, 그래서 자칫하면 미쳐버릴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사람을 흔들리게 하면서도 사람들을 계속 새로운 길을 가게 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의 철학에서 ‘불안’같은 것을 만나요. 푸코의 작업은 이런 위험한 선을 타는 작업이었던 거예요.항상 삐딱하게 위험한 선을 타고 가면서 자기의 테두리였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봤던 사람이에요. 푸코는 언제나 자기한테 솔직했고, 자신의 한계와 항상 싸웠어요. 대단히 열정적인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계속 보고 그 한계 속에서 길을 찾고자 했어요. 그게 푸코가 가진 매력이고 성의 역사도 그런 식의 문제의식 안에서 나타났던 것 같아요.

 

 

 

Q: 또래 사람들, 대학생들이 주로 배우게 되는데, 보통 ‘학교’에서 하는 공부와 수유너머에서 하는 공부에 어떤 차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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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글쓰기를 중요시 여긴다는 것. 학교에서도 물론 ‘레포트’ 제출이 있지만 그것이 피드백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학교 레포트가 학점을 매기기 위해서 그냥 ‘제출’하는 거라면, 강학원의 경우에는 조교와 1:1로 대면해서 자기 글을 가지고 이야기하거나 혹은 세미나 시간에도 ‘자기 글’에 대해서 모두에게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자기 글을 통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한다는 것 때문에 굉장한 압박을 받지만 이 압박을 통해 나아가게 하는 힘도 얻을 수 있어요. 또 다른 점은, 학교에도 물론 조별 토론 같은 것이 있지만 강학원에서처럼 철학책 한 권을 통째로 읽어가며 세미나하는 일은 드물죠. 20대가 주축이다 보니, 한국에 사는 대학생으로서 갖게 되는 공통분모 속에서 공유되는 문제의식이나 질문들을 나눌 수 있어요. 거기에서 해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문제의식을 보다 구체화 시키거나 아니면 그 다음의 질문 또는 다음 스텝으로 가게 해주는, 그런 과정에서 서로가 힘이 돼 주는 것 같아요.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해석하고 사유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되고 또 글을 쓰면서 자기 바닥이 어디인지도 알게 되죠. 나는 지금 이 모양이구나. 나는 이 정도를 사유할 수 있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이 정도구나.

 

 

 

Q: 마지막에 참가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약속 지키는 것. 최소한의 신뢰는 약속을 지키는 거니까요. 서로에 대한 긴장이 그래야 있을 거고, 그 속에서 뭔가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단지 스터디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여기 ‘수유너머’에 와서 공부하는 거잖아요. 두 달여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와서 여기서 사는 사람을 보고, 이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보고요. 이 공간도 푸코의 책도 흡수할 수 있는 만큼 다 흡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산행이나 연극도 하잖아요. 간식도 먹고. 먹고 공부하고 놀러다니기도 하고요. 2달동안 재미있게, 그리고 치열하게 끝까지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수유너머 웹진 기자 박희사 kisa_night_umbrell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