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_낭송하는 금요일] 라틴소설을 읽다



경이로운 현실- 황홀경 속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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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북이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겁니까, 아니면 정말로 살아 있는 것입니까?" 그러자 상인이 말했습니다. "이건 플라스틱입니 다. 하지만 살아 있지요."



-콜롬비아의 현실과 허구에 대해 묻는 어느 질문자에게 마르케스 가 한 대답

 

 

홍루몽에 이어서, 이번엔 중남미 문학이다! 2기 「책 - 낭송하는 금요일」에서는 '경이로운 현실- 황홀경 속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5주 동안 중남미 문학을 함께하게 된다. 이번 강의를 맡은 안명희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앞둔 나는, 자연스럽게 올해 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월에 '청소년 케포이필리아'를 통해 처음 <수유+너머>에 왔을 때, 나 역시 ‘중남미 문학’이라는 주제로 안명희 선생님과 함께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중남미 문학을 통해서 처음 <수유+너머>를 접한 셈이다. 강의도 강의지만, 나 자신이 중남미 문학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캐물어 보리라는 각오로 인터뷰에 임했다.

  

용택 안녕하세요. 또 '중남미 문학'으로 만나게 됐네요.

명희 왠지 취조 받는 분위기야. (당시 방이 무척 어두컴컴했다) 

 

용택 그럼 바로 취조(?) 시작 하겠습니다. '중남미 문학'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하나의 장르처럼 인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만큼 특성이 강하다는 얘기일 텐데, 이 중남미 문학의 특성이란 과연 어떤 걸까요?

 

명희 일단, 중남미 문학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는 항상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말을 써요. 중남미의 몇몇 작가들은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로는 이 땅의 현실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스페인의 침공을 받으면서 피가 섞이고, 문화가 섞이고, 종교가 섞여서 중남미는 완전히 혼종의 땅이 되어버렸죠. 게다가 아즈텍이나 마야 같은 고대 문명들은 모두 짓밟혀버렸고, 아마존 강 같은 곳에는 여전히 이름 붙여지지 않은 미지의 생물들이 들끓고 있고……. 이런 땅의 현실을 그려내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낸 결과로, 우리가 지금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부르는 소설들이 나타난 거에요.

 

용택 그런데 사실 아직 감이 잘 안잡혀요. 마술적 사실주의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 건지, 소설 속 장면을 예로 들어서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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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 마르케스의「백년의 고독」을 보죠.  

이 소설은 부엔디아 가문과 그들이 세운 마콘도라는 마을의 탄생부터 소멸까지를 다루고 있어요. 시간상으로 보면 굉장히 호흡이 긴 소설인데, 그 긴 시간 동안에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오래전에 죽은 조상이 몇 대 뒤의 후손과 만나 이야기를 한다던가, 어떤 여자가 빨래를 널다가 갑자기 승천을 해버린다던가 하는 장면들이죠.

 

 

미녀 레메디오스는 자기를 떠받치고 공중으로 떠올라서 날개를 치는 담요의 한복판에서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고, 풍뎅이와 다 알리아가 있는 정원을 뒤로 두고 오후 네 시의 하늘을 날아 올라 서, 아무리 높이 나는 새도 쫓아가지 못할 만큼 높은 창공으로 영 원히 사라졌다. -「백년의 고독」中

 

그런데 정작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그런 이상한 일들을 모두 '있을 법한 일'로 생각한다는 거에요. 굉장히 태연하게 말이에요.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뭔가 희한하고 낯선 느낌을 받게 돼요. 완전히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얘기할 수가 없게되니깐요. 이런 식으로 현실과 환상의 점이지대가 만들어져요.

 

용택 제가 보기엔 「뻬드로 빠라모」도 그런 거 같아요. 소설 속에 나오는 '꼬말라'라는 마을을  보면 온통 뻬드로 빠라모에 대해 원한을 품은 유령들로 가득하잖아요. 그런데 그것 자체가 무슨 신기한 일로 그려지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명희 왜냐하면 중남미의 시간관이라는 게  그렇기 때문이에요. 서구인들이 시간을 선형적인 것으로 생각했다면 동양이나 중남미에서는 원형으로 생각하거든요. 생과 사가 딱 나뉘어진게 아니라 공존한다는거죠. 왜 「뻬드로 빠라모」를 보면 누가 유령이고 누가 산 사람인지 잘 구분이 안 가잖아요? 나중에는 주인공인 후안 쁘레시아도조차 혹시 유령인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죠. 이런 사고 방식 속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란 어쩌면 자연스러운 산물일지도 몰라요.

   

“우리 언니는 내가 열두 살 되던 해에 죽었어. 당시 우리집 식구가 전부 열여섯 명이었는데, 자네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던 시절을 상상할 수 있겠지. 잘 보게, 여전히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죽은 자들을. 그러니 앞으로는 얼마전에 죽은 자들의 말소리와 메아리 소리를 듣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게, 후안 쁘레시아도." -「뻬드로 빠라모」中

 

 명희 앞에서 말한 내용들을 다 떠나서, 중남미 소설은 일단 정말로 재밌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가 소설에서 가장 우선시 하는 건 재미에요. 아무리 고전 명작이라고 해도 재미가 없으면 못 읽겠더라구요. 그런데 이번에 다룰 중남미 문학들은 정말 화장실 변기 위에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들이에요.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어떤 분야를 너무 좋아해서 공부를 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돼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 언어는 오히려 처음에 내가 느꼈던 재미에 못 미치게 되는게 있어요. 딱딱하게 얘기를 하게 돼죠. 그래서 제가 이번 강의에서 노리는 일종의 도전이 있다면, 그 책만큼 재미있게 얘기를 하겠다는 거에요. 내가 읽은 그 소설만큼 재미있게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책 비평가' 보다는 '책 읽어주는 여자'가 되는거죠.

 

여러분도 그냥 책을 재미있게 읽어오세요. 안 읽어와도 제가 재밌게 얘기해주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읽어오면 읽어온 만큼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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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 문학의 매력은 끝이 없다. 그 이국적인 정서를 '낭송'을 통해서 만나보는 것은 또 어떤 느낌일까. 2기 「책 - 낭송하는 금요일」은 오는 8월 27일부터 시작한다. 안명희 선생님이 이토록 강조하는 중남미 문학의 '재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중남미의 경이로운 현실이란 어떤 것인지, 이번 기회에 한껏 맛볼 수 있을 것이다.

 

 

 

*2기 「책 - 낭송하는 금요일」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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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웹진객원기자 오용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