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과 '사드'는 벚꽃을 닮았다. 사람의 가장 은밀한 마음을 살살 건드리는 시경의 마력은 벚꽃의 은은한 미(美)를 닮았고, 부르주아의 도적적 위선을 가차 없이 파괴하는 사드의 격정은 한순간에 불타 사라지는 벚꽃의 정열을 닮았다. <책읽는 금요일>에서 준비한 봄맞이 에로틱 선물, 시경과 ‘사드’를 차례로 만나보자.

 

 

 

1. 《시경》을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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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선생님! 제가《시경》에 대하 조금 조사를 했습니다요^^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주나라 때부터 춘추시대까지 황하강 유역 사람들 사이에 구전되던 노래를 공자가 모아서 엮은 책! 맞지요?! 그런데, 공자님 책이라면…… 그닥 내키지가 않아요. 아무리 ‘시’라지만, 옛날에는 그거 외워서 과거시험 보고 했을 텐데, 워드에 토익, 토플, 국가고시… 저는 수험서라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경미샘: 그럼 야한 시는 어때? 개인적으로는 처음 읽고는 가슴이 뛰어서 잠도 못잔, ‘사드’보다 야한 시인데…….

 

웹진: 야하다고요?! ♨o♨ 그럼 얘기가 좀 달라지는데…….

 

경미샘: 후훗. 근데 여기서 ‘야하다’는 것은 ‘외설적’이라는 것은 아니야. 왜 길거리에서 홀딱 벗은 변태를 봤다고 야하다고 생각되진 않잖아. 야하다는 것은 마음을 건드리는 힘이 있는 거지. 나의 가장 은밀한 마음, 아무에게도 쉽게 말 할 수 없었던, 아니 나 조차도 잘 몰랐던 나의 은밀한 마음을 건드리는 힘이 《시경》에는 있어.

 

‘공자’의 책이라고 하니깐, ‘경전’이라고 하니깐 사람들은 고지식한 내용, 답답한 도덕 운운하는 내용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시경》을 읽어보면 오히려 불량가요 같다고나 할까? 물론 《시경》의 내용 중에도 임금의 덕을 칭송한다거나, 올바른 덕을 권장하는 내용들이 있기는 하지. 하지만 어쨌거나 《시경》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진솔한 감정을 표현한 ‘노래!’를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읽어보면 연인을 유혹한다거나, 소박을 맞아 신세를 한탄한다거나, 남편과 헤어져 슬픔을 표현하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럽고 솔직한 사람들의 생활과 그들의 마음들을 만날 수 있어.

 

웹진: 그런 사소한 시들을 공자가 대체 왜 추천한건가요?

 

경미샘: 공자는 ‘《시경》의 시 삼백편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라고 했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 ‘연애감정을 노래했다, 왕을 칭송했다’ 이런 게 문제가 아니야. 소통할 수 있으면 삿되지 않아. 진실하되 자기 안에만 머물지 않고 흘러 갈 수 있는, 그래서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시! 굉장히 슬프고, 비탄에 빠지고, 분노하고 이런 감정들이 《시경》에 있지만 그것은 자의식 꽉 찬 현대인의 막힌 감정이 아니야. 굉장한 감응력을 가지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순환시키는 그런 힘을 갖고 있는 시들인 거야.

 

 

공자는 《시경》을 읽지 않은 자 담장과 같다고 했다. 마음이 막히고, 몸이 막히고, 관계가 막힌 것이 꼭 ‘담장’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막힌 몸과 마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말 맛있게 먹는 것도, 건강한 것도, 야한 것도,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담장’인 몸과 마음으로는 불가능 하다. 봄이다. 꽃이 피고 바람도 좋아 몸도 마음도 간질간질하다. 이참에《시경》을 읽어 담장을 면해봄은 어떠한가!

 

수유너머 웹진 : 수영밥 기자 (sprangcoo@naver.com)

 

 

 

 

 

2. <사드와 마조흐>의 위험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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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떻게 ‘사드와 마조흐’라는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게 되었나요?

 

별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고, 마침 '수유너머 강원'에서 사드와 마조흐를 읽을 기회가 생겼다. '북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동서양의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금병매와 사드, 마조흐를 읽기로 한 것이다. 예전에 바따이유가 사드의 글을 두고 '사드는 현실보다 더 끔찍한 글을 씀으로써만 끔찍한 현실을 살아낼 수 있었다'고 했었는데, 그 말이 꽤 충격적이었다. 마조흐는 들뢰즈를 공부하다가 흥미를 갖게 됐었고. 암튼 기회가 생긴 김에, 사드와 마조흐를 한번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두 인물과 당시 시대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려요.

 

사드는 프랑스 혁명 전후를 지나온 사람이다. 그는 귀족 출신인데, 그가 쓴 작품 대부분은 부르주아 도덕의 위선을 가차 없이 벌거벗기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사랑, 모성, 법, 도덕, 인간성 등이 여지없이 파괴된다. 사실 그의 작품이 불편한 건, 묘사가 야해서가 아니라(그의 작품에서 '야한' 걸 기대하시면 곤란하다^^) 그런 점들 때문이다. 사드 스스로가 그런 부르주아의 모랄을 파괴하는 삶을 살았고.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아주 우아한 방식으로 부르주아의 가정과 성의식을 비판했지만, 사드는 정말 하드코어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내파시켜 버린다.

 

보통 사드와 마조흐는 세트로 묶어서 이해되지만, 마조흐는 사드로부터 한 세기 후인 1835년에 태어났다. 태어난 곳도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부인 갈리치아였고, 슬라브와 스페인, 보헤미아 혈통이 뒤섞인 인물이다. 자유와 민족주의를 탄압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정치적 분위기와 고조되는 혁명의 열기 등이 마조흐의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소수집단의 문제, 민족주의, 전쟁, 죽음, 소유와 돈 등의 문제가 에로티시즘과 결합되어 나타난다.

 

Q. ‘사드’와 ‘마조흐’라고 하면 대부분 ‘SM'을 떠올립니다.(^^;) 이들에게서 전복적 글쓰기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사디즘', '마조히즘'이라는 말을 대립적으로 사용한 인물은 19세기말의 독일 심리학자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 에빙이다. 사디즘을 가학적이고 지배적인 욕망으로, 마조히즘을 피학적이고 복종적인 욕망으로 기술하면서 'SM'으로 묶이기 시작한 거다. 들뢰즈는, 마조히즘이 사디즘의 '보완물'쯤으로 인식되면서 마조흐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었다고 했는데, 맞는 말 같다.^^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되지만, 사실상 이 두 개의 욕망은 대단히 다른 메커니즘을 따르고 있다.

 

물론 그들의 글쓰기도 다르다. 사드의 글쓰기는 대단히 정교하고 논증적이며 명령적이다. 심지어 수학적이기까지 하다. 들뢰즈의 표현에 따르면, '교관의 언어'다. 반면 마조흐의 글쓰기는 설득적이고 교육적이며 신비적이다. 사드의 기계적인 묘사에 비하면, 마조흐의 묘사는 훨씬 미학적이고 유려하다. 여하튼 두 작가 모두 극단적인 에로티시즘을 다루고 있으며, 그것을 극단적인 감각과 언어로 표현한다. 그들의 글쓰기에는 '극단'에 이른 사유가 보여주는 극단적 언어와 전복적 리얼리티가 있다. 이 둘의 글쓰기 전략이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어떤 식으로 '진단'하고 있으며, 그 둘의 에로티시즘이 어떤 식으로 사유와 글쓰기의 '전복성'을 드러내는지를 보는 게 이번 강좌의 핵심이 될 것이다.

 

 

영화 <살롬 소돔의 120일>에 대한 기억때문에 강좌신청이 망설여 지는가. 이런, 이를 어쩌나. 책이 영화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란다. 그래도 주저하지 마시길. 강의를 맡으신 채운 선생님은 "그냥 담담하게 읽으면 된다. 아까 말한 것처럼 '현실보다 더 잔혹한 글쓰기를 통해서만 잔혹한 현실을 살아낼 수 있었던' 한 인간의 기록으로 읽다보면 연민도 느껴지고... 실제로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다는 희망섞인 조언을 건내 주셨다. '사드, 마조흐'와의 위험한 만남. 매력적이지 않은가.

 

수유너머 웹진 : 유일환 기자(crispinn@naver.com)

 

 

 

 

<책읽는 금요일 2기 - 시대를 노래하는 시대를 넘어서는 글쓰기> 4월9일 저녁 7시 개강합니다.

마감임박! 서둘러 신청하세요.^^ 신청 및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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