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낭송하는 금요일 : 버지니아 울프를 읽자! 

버지니아 울프, 세상과 정직하게 마주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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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정작 읽어본 소설은 없네요. 울프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합니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 이름부터 특이하죠. “늑대처녀”라니! 이 묘한 이름만 봐도 울프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다양한 모습들을 상상할 수 있지요.


 저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교과서에 실린 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에서 처음 알게  됐어요. 우리에게 울프라는 이름이 왠지 친숙한 건 박인환의 시 때문일 거예요.^^ 그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는데,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들으면 왠지 비극적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광기, 죽음, 성추행 사건 등. 사람들은 울프가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정신 발작과 우울증의 원인을 의붓오빠에게 당한 성추행의 충격 탓으로 돌려요. 병적이고 신경증적 이미지. 영화 <디 아워스>에서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울프의 모습도 그랬지요.

 

그런데 울프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니 저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어요. 울프의 글에서 제가 발견한 건 작가적 성실성과 강인함이었어요. 그는 병으로 드러누운 해에도 『댈러웨이 부인』과 에세이집을 수정해서 출간했고, 여덟 편 정도의 단편을 썼고, 평론 37편을 발표했고, 꾸준히 일기와 편지를 썼고, 많은 책을 읽었어요. “일 계산서”라고 부르는 하루 시간표를 꼼꼼하게 구성하고 매일 체크했어요. “결혼을 직업으로 삼은” 여느 부르주아 여성들과 다르게 울프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자립 기반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거예요. 자기 기반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생계형 작가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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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오두막 작업실. 그녀는 이곳에서 읽고 또 썼다!

 

 

또 후에 울프가 자신의 성추행 사건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오빠를 비난하거나 상처를 자위하기 위한 게 아니었어요. 울프가 주목했던 건 자기 삶에서 작동하는 역사적 지층이었어요. 그는 자신이 느낀 성적 수치심과 두려움이 ‘청교도 정신’이나 ‘조상 대대로의 두려움’을 물려받은 탓임을 깨닫게 되었던 거죠. 나 이전에 내 감정이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 지는 세계에 대한 통찰. 어떻게 보면 울프에게 글쓰기는 자기 기억과 싸우는 작업이었어요. 특정하게 기억을 만들고 간직하고 괴로워하는 자신과 싸우고 특정한 방식으로 갇혀버린 이 세계와 싸웠던 거죠. 세계를 부정하거나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눈으로, 다르게 감각하며, 다르게 살기 위해서요. 제가 울프에게 배운 건 바로 이런 점들이에요.  


 

울프에 관한 영화가 많은데, 저는 방금 말씀하신 <디 아워스>라는 영화가 인상적이었어요! 

dddd.jpg  <디 아워스 The Hours>는 아마 많이들 보셨을 거예요. “시간들”이라는 이 작품의 제목은 『댈러웨이 부인』의 원제이기도 해요. 영화는 각기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삶의 문제를 지닌 세 명의 여인들이 무언가를 준비하며 보내는 하루 동안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댈러웨이 부인』이란 작품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작가의 삶,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독자의 삶, 극중 인물인 클러리서의 삶이 교묘하게 얽혀 각기 다른 시간선들이 교차하며 직조되는 이야기죠.


『댈러웨이 부인』에서 울프도 ‘시간’의 문제에 주목해요. 우린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시계의 시간’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누구에게나 다르게 작동하는 내부의 ‘시간들’을 살고 있다는 것. 울프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목격하지만 서로 다른 기억을 구성하면서 서로 다른 시간 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댈러웨이 부인』이라면 낭금 첫 시간에 읽는 소설이네요! 제가 가장 궁금한 작품이기도 한데요. 작품 소개 부탁드려요. 

사실 이 소설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어요.(^^) 이야기가 특별한 인과도, 정해진 인칭도 없고, 성격묘사나 교훈도 없이 흘러가기 때문이죠. 이 소설을 이루는 건 오직 기억과 의식, 감각뿐이거든요.

 
이야기 배경은 1923년 6월, 런던의 어느 멋진 날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때 열릴 파티를 준비하는 상류층 댈러웨이 부인의 하루를 담고 있어요. 이 짧은 하루의 기록 안에서 울프의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어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생기를 되찾은 런던 거리. 전승 기념물과 왕과 국가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는 멋진 대리석 조각들이 가득한 이 거리에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라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읽으시면서 이 두 사람의 관계에 주목해보시면 좋을 듯해요. 이야기의 두 축을 이루는 이들은 같은 공간, 같은 ‘시계의 시간’을 공유하지만 한 번도 만나진 않아요. 하지만 복잡한 시간의 그물망 속에서 서로 얽혀 있는 존재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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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피카디리 거리. 댈러웨이 부인과 함께 런던으로!)


댈러웨이 부인은 “끔찍하도록 민감하게” 느끼면서 복수의 시간들을 통과하고, 마주치는 사물들, 바람, 꽃, 나무에조차 스며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셉티머스도 댈러웨이 부인처럼 세계를 민감하게 느끼지만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전하는 비밀의 암호는 혐오와 증오와 절망”뿐이라고 느끼며 끝내 자살하죠. 세계는 그것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빛깔을 띠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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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 검은 선들, 1913)

단 하루일지라도 산다는 것이 아주, 아주 위험하다는 느낌을 언제나 갖고 있었다. (…) 그녀는 피터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리라. 그녀는 자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으리라. 나는 이거다, 나는 저거다하고 말이다.(『댈러웨이부인』중에서) 

 울프는 마치 파도처럼 특정한 시간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시간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댈러웨이 부인의 죽음충동이 삶 충동과 다르지 않음을 통찰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시간들” 안에서 언제나 죽음과 삶, 비정상과 정상이 공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아이러니한 세계에서 울프는 나를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호기심이 생기네요. 왠지 흥미진진할 것 같단 예감이! 

울프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읽으면서 더 자세히 나눠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 낭금에서 는 울프의 소설과 함께 『자기만의 방』이나 『3기니』 등의 에세이를 함께 읽을 예정이라서 그에 대한 흥미로운 점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는 금요일(3월 15일) 낭금이 시작한다. “다른 눈으로 다르게 감각하며, 다르게 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본격적으로 읽어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6주간 멋진 여행이 되기를! 같이 여행하실 분 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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