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이성복

 

아직 저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 마음 속에는 많은 금기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될 일도 우선은 안 된다고 합니다.

 

혹시 당신은 제 금기가 아니신지요.

당신은 저에게 금기를 주시고

홀로 자유로우신가요.

 

휘어진 느티나무 가지가

저의 집 지붕 위에 드리우듯이

저로부터 당신은 떠나지 않습니다.

 

 

  이 시를 읽고 외우기(?)까지!

 

  아직 저를 자유롭게 해 주지 않는 당신(=금기)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 '당신'은  최근에 혹은 옛날에 강렬한 기억으로 제게 각인된, 사랑했으나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어떤 사람,이었습니다. 두번째로 '당신'은 직업이나 심지어는 책일 수도 있겠구나, 했습니다. 오랜 직업이 갖게 하는 편견들, 사고의 경향이 반영된 책읽기는 오히려 단단한 규칙 속에 저를 꼼짝 못하게 가두고 생각의 포로가 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자 사람을 이루고 있는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나는 자유롭지 않은데)당신은 자유로울 거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도록,  당신이 휘어진 가지여서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떠나지 못하도록 그 생각을 쥐고 있는 저라는 사실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시를 알게 되고 바깥으로 소리내어 읽으니 스승님 말씀처럼 몸으로 오는 말들,이 있었습니다.

  <논어> 낭금을 마치면서도 풀리지 않던 의문이 있었거든요.  '仁은 무엇인가,하는 문제요. <논어>낭금을 신청할 때 저는 한겨울에 무리하게 산행을 반복하여 발톱이 네 개나 빠졌었습니다. 그 때 저는 위에서 말한 '첫번째 당신'의 부재를 처절하게 견디고 있었거든요.  그 상황에서 읽게 된 <논어>는' 仁을 그저 참고 견디는 것'으로 저만의 정의를 내리게 하고 그 생각 속에 사로잡히게 했습니다. 仁은 피곤하며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란 제 글에, 스승님이 한계를 긋지 않고 가라고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그 때는 머리로만 이해해서/ 仁을 자유로움이라 해석하였던 논어 남금 붕우의 생각을 잘은 몰랐던 것이지요.

 

    순환시키지 않고 꼭 쥐고 있으려는 그 마음이 사욕이 되어 <논어>를 읽는 동안과 읽은 이후에도 저는 (제가 내린 仁의 정의에 갇혀) 사사건건 인내하며 살아왔습니다. <전습록>을 읽으면서 '(적어도 공자님이 말씀하신)仁은 자유로움'이란 말뜻이, 갑자기 와 닿았습니다. 가르고 구분하는 분별심을 내고 그것을 금기로 만들어 저를 속박하는 일을 그만두면 저절로 '자유롭게' 되는 것이겠지요. 仁이 '자유로움'이란 말뜻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이제 나는 금기 없이 살아가면 되겠구나(금기less로 살아가면 되겠구나. ^^) ,하는 답을 얻게 되었지요.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 는 말을 열심히 하지 않는 자의 비난이라고 생각했던 마음.

  태도를 바꾸면, 틀을 새롭게 창조하면 내 양지를 지키면서도 다른 이의 양지와 부딪치지 않는다는 스승님 말씀.

 

  <논어>를 읽었을 때는 강을 건너서 저편 기슭에 가 닿기 위해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전습록>을 읽으면서는 강에 떠서 강의 이편과 저편 기슭을 다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가 닿는 곳에서 내가 행하겠구나, 하자 (마음을 둘 데 없어)불안하던 것이 사라졌고,  나의 행함이 (내) 마음에 비추어 떳떳하니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용기도 생겼습니다.  

 

  전습록 216조목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 반드시 용기가 있어야 한다. 공부가 오래되면 저절로 용기가 생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이 호연지기는 의로움을 쌓아서 생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위대한 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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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또 한 번의 금요일,

부천에서 '의리 넘치게' 환대해주신 붕우들에 대한 저의 '성의'입니다.

<전습록> 공부하길 잘 했습니다. 즐거웠고 고마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