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도 울프의 글이 좀 버거웠습니다. 일단은 아무래도 요즘 소설책들과는 문체가 한참 달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쉽게 넘어가지지도 않았고요. 인생, 시간, 사랑 등과 같은 이 추상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제가 여지껏 읽어본 소설가들의 이야기 방식과는 참 달랐습니다. 자연이나 감정에 대해서 묘사하는 문장들을 마주할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18-19세기 36살의 올랜도가 300여년의 시간을 통째로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다. 300년 전에 만났던 닉 그린을 만나 밥을 먹고, 사샤의 환상을 마주하고, 낯선 냄새를 맡으며 현재를 실감합니다. 인생의 고통, 혼란, 시간, 시대정신, 자아 등등 이 수많은 이야기가 3장에 처음부터 소설이 끝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끊김없이 얘기할 수 있는 건지! 전 읽으면서 무슨 얘기를 이렇게 하고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된 채로 넘어갔을 때 다음내용을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냥 화려한 수식으로만 가득 찬 문장이 되버리고. (아무래도 전 여전히 울프의 표현에 경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마셜 앤드 스넬그러브 백화점 앞에 차를 대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늘과 향내가 그녀를 감쌌다. ‘현재’가 그녀의 몸에서 열탕의 물방울처럼 떨어졌다. 빛이 여름 미풍에 나부끼는 얇은 천처럼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녀는 가방에서 쪽지를 꺼내 묘하게 딱딱한 목소리로 우선 읽기 시작했는데ㅡ사내 아이 장화, 목욕 소금, 정어리ㅡ마치 그녀가 이 단어들을 색색이 물이 흐르는 수도꼭지 밑에서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그 단어들이 빛에 닿아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목욕용 소금과 구두는 무디고 뭉툭해졌으며, 정어리는 톱날처럼 깔쭉깔쭉해졌다. 그녀는 그렇게 마셜 앤드 스넬그러브 백화점의 1층에서 이쪽저쪽을 쳐다보고, 이것저것 냄새를 맡으면서 몇 초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문이 열려 있었다는 나무랄 데 없는 이유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부드럽게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올라가면서 이제는 인생이라는 구조 그 자체가 하나의 마술이라고 생각했다. 18세기의 우리들은 매사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공중을 솟아오르고 있다.(358쪽)”


울프에게도 올랜도 만큼이나 세상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이렇게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다양하고 즐길거리, 볼거리가 많은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하나하나 충격이 되는 세상. 울프의 글을 읽다보면 그녀가 삶을 편안하게 살 수 없었다는 것, 쉽게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올랜도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300년의 세월을 살고, 남성이기도 여성이기도 한 인물을 내세웠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신기한 인물로 뭘 얘기 하고 싶은 걸까. 참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별 다른걸 말하고 있는게 아니라 지금 우리를 얘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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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으로는 울프의 글쓰기 얘기를 계속 했던 것 같은데, 제 개인적으로는 <자기만의 방>에서 했던 울프의 말이 계속 생각나네요.

3장 끝부분에서 셰익스피어의 마음에 대해서 얘기했던 부분입니다.


“예술가의 마음은 자기 속에 내재한 작품을 흠 없이 완전하게 풀어놓으려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서 셰익스피어의 마음처럼 작열해야 합니다. 그 안에 어떤 방해물이 있어서도 안 되고 태워지지 않는 이물질이 끼어서도 안 됩니다. (생략) 아마도 셰익스피어에 대해서ㅡ던이나 벤 존슨, 밀턴과 비교해 볼 때ㅡ거의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원한이나 악의, 반감이 우리에게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작가를 상기시키는 어떤 ‘계시’에 의해 방해받지 않습니다. 항의하거나 설교하려는 욕구, 자신이 받은 모욕을 공표하거나 원한을 갚으려는 욕구, 세상을 자신이 겪은 곤경과 불만의 증인으로 삼으려는 욕구, 그 모든 욕구가 그에게서는 불타올라 소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방해받지 않고 자유로이 흐르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작품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셰익스피어였습니다. 다시 한 번 서가를 보면서 생각하건대, 만일 방해받지 않고 눈부시게 타오를 수 있는 마음이 있었다면 셰익스피어의 마음이었지요. (⟪자기만의 방⟫ -제 3장-, 민음사 87,88쪽)” 


제가 맨처음 어떤 불만과 반감같은 감정 때문에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 말을 보고나니 그런 감정으로 얼마나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게 정말로 속에서 끓어올라 말해야만 하고 써야만 하는 말들이 있을까, 나는 그렇게 세상을 감각하며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꼭 울프처럼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제 자신을 더 솔직히 들여다 보게 됐달까요. 사실 울프만큼의 강도로 나는 세상을 겪고 싶지 않은 건 아닐까. 불편한 문제들을 마주했음에도 그 괴로움을 최대한 미루고 싶고 못본척 하며 적당히 살고 싶은 건 아닌가 하는. 




늦은 후기 죄송합니다^^

울프 소설의 절정이라는 <파도>. 정말 신기한 소설인 것 같아요.

좀 이따 봬요~animate_emoticon%20(69).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