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의사항. 이 글에는 작가와 소설을 제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혼란한 제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ㅋㅋㅋ

또한수요일, 목요일, 오늘 낮까지 올리겠다며 후기 업로딩을 미루고 수영반장님께 양치기 소년이 된 점, 반성과 사과의 말씀을 한껏 드려요!!  긴 변명은 다음 주에... ㅜ  버지니아 울프를 발로 배운 듯, 의식의 흐름을 반영한 듯한 급 마무리 부분에 당황하지 마시길 부탁드리며 ㅋ 몇주 후에, 다시 정리해 보도록 할게요!!  다음 주에 만나요. ;)

 

 

'등대로- '향하는 여정

 

등대로 가는 배 안에서 램지씨는 “우리는 죽는다”, “각자 홀로” 라고 읊조립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등대에 가고자 하는지, 램지에게, 제임스에게, 릴리에게 있어 등대란 과연 어떤 의미인지. 자꾸만 등대의 상징을 파헤치려는 스스로를 발견했어요. 의미를 해석하려 드는 것이 문학을 읽는 좋은 방법은 아닌데 말이지요. 뒤늦게서야, ‘등대’가 아니라 ‘등대로-‘ 향하는 그 과정, 그 여정이 이 소설이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꿈속에서 여인들의 동정이 주는 정교한 즐거움을 상상하고는 한숨짓고, 부드럽고 슬프게 다음과 같이 말했으니

 

좀더 거센 파도 밑에서
그보다 더 깊은 심연에 가라앉았노라.

 

제임스에게 등대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자 하는 램지부인 앞에서 램지씨는 “하지만 날씨는 좋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등대로 가는 여정이 램지씨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Z'를 향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것은 죽음과 맞닿을 만큼 거센 파도를 건너야 만날 수 있는 더 깊은 심연의 세계가 아닐지. , 결코 도달할 수 없기에 더욱 맹렬히 맞서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예민한 소년인 제임스에게는 저 멀리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동화같은 것이었을지도.(적어도 6살때는) 그러나 그가 마침내 등대에 도착했을 때, 등대의 자태는 ‘헐벗은 모습으로 곧바로 뻗어 올라갔으며, 눈부신 흑백 얼룩으로 칠해져 있었’고, ‘산산조각이 난 유리처럼 바위 위에 하얀 조각들로 부서’져 있는 곳이었어요.

 

‘그래, 여러 해 동안 만 건너편에서 보아왔던 등대가 저런 것이었구나, 헐벗은 바위의 헐벗은 탑의 등대였구나. 제임스는 생각’ 했다. ..... 늙은 벡위스 부인은 항상 인생이 얼마나 멋있는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얼마나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겨야만 하고 행복해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인생이란 저 등대의 모습과 같은 것이라고, ……그는 아버지가 다리를 꼬고 앉아서 맹렬하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런 사실을 함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질풍을 무릅쓰고 달리고 있다- 우리는 침몰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아버지가 했던 것과 꼭 같이 반쯤은 소리를 내어서 자신에게 말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제가 좋아하는 문학평론가 신형철 쌤의 <<몰락의 에티카>>의 서문이 떠올랐어요.예술 작품에서 왜  '침몰', '죽음', '몰락'의 이미지가  '완성', '영원' 이라는 의미와  맞닿아 있는지 알 수 있는 글입니다. (꼭 전문을  읽어보시길,  아름다운 글이에요. ;)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

_ 니체, <<짜라투르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 몰락은 패배이지만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몰락'함으로써 '전부인 하나'를 지킨 자,

 자기 자신, 또 자신을 둘러싼 사물, 공간, 추억, 관계를 신경증적일만큼 탐구하고 깨부수는 과정. (릴리처럼 말이죠.) 이것이 곧 몰락을 통해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 아닐까요. (릴리처럼 ㅋ)

릴리가 그림을 완성해 가는 동안 '사물', '비현실', 공간'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사물의 실재, 속성, 나와 타인, 추억, 관계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겪는 거죠. 그런데 릴리가 좇고 있는 ‘완벽’, ‘영원’은 되려, 어떤 사이, 흐름이 멈췄을 때, 침묵 속에서, 사소한 일상 속에서, 릴리가 혼돈 속에서 거의 의식을 잃어갈 때 발견 되요.

대신에 작은 일상의 기적들, 조명들, 깜깜한 가운데 예기치 않게 켜진 성냥불과 같은 순간은 있었는데, 지금이 그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 부인이인생이 여기에 정지한다라고 말하고 있나니, 부인이 그림을 통해서 순간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는데 - 혼돈 가운데 형태가 있었으니, 이 영원한 지나감과 흐름이 갑자기 안정감을 찾았다.

 

우리의 정체성, 감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 그것들을 말로 표현함으로써 상황은 이미 망쳐진 것이 아니겠느냐고 부인은 말했을 것이었다. .... 다시 말해 침묵에 의해 우리는 더 잘 표현하는 것은 아닌가? 이 순간은 적어도 비상하게 비옥한 것 같았다. 릴리는 모래밭에 작은 구멍을 팠다가 다시 메웠다. 마치 그 구멍 속에 그 완벽한 순간을 묻어 보존하기로 하려는 듯이.

 

‘마치 그 구멍 속에 완벽한 순간을 보존하기로 하려는 듯이’ 아, 이건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그 장엄한 과거의 시간을 지나온 사원의 구멍에 입을 대고 무언가 속삭이던 양조위의 모습과 같아요.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 관계에 있는 것을 알게 된 둘, 그런데 이들 또한(양조위, 장만옥)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결국, 그 사랑의 불구덩이로 ㅎ 자신들을 내던지지 못했고.  시간이 흐른 후 양조위는 그 구멍에 어떤 말을 했을까요. 또 다시 억겁의 시간동안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을 사원에 보존하려 했던 완벽한 순간'. 적어도 릴리는 그 순간과 조우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