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아, 여자, 어린아이

 

<제인 에어>는 일단 그 주인공 설정자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고아이고 어린아이이며 여자인.

그런데 이런 상황들이 진짜 문제적으로 되는 것은 제인에어의 캐릭터 그 자체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주변에 기댈 사람 하나 없으면서 싹싹하게 굴 지도 않습니다.

도도하게(?) 혼자 책이나 읽는 아이.

덕분에 주변으로부터 애정도 동정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니 동정을 구하지 않는 존재죠.

 

이게 정말 대단했습니다.

우리는 제인에어보다 가진 것이 많을 수 있지만 

아니 제인에어처럼 가난해 질 수는 있으나 제인에어처럼 도도하기는 어렵습니다.

적절히 주변에 맞추고, 자기 자신을 가립니다. 자신을 돌봐주는 이들에게(만) 관대합니다.

그건 역시 두려움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꼿꼿하게 했을 때 닥쳐올 일들에 대한 두려움? 

싹싹하지 못한 여자-고아-어린아이가 맞닥뜨려야 했던 일은 고립과 배제였습니다.

그녀는 붉은 방에 갇혔고 곧 (기숙학교로) 쫓겨납니다.

 

멋있었던 한 구절. 제인에어가 스스로를 '위화違和의 존재'라고 회고했던 부분을 읽어 보아요-

 

게이츠헤드 저택에서 나는 위화의 존재였다. 나는 그곳의 아무와도 같지가 않았다. 리드 부인과도 그 자녀들과도 또 그녀가 좋아하는 하인들과도 조화되는 면이 전혀 없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았다면 내 편에서도 똑같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 편에서도 자기들과 맞지 않는 인간을 사랑으로 대할 의무가 없었다. 사실 나는 자질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나 성벽에 있어서나 그들과 정반대되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그들의 즐거움을 더해 주지도 못하는 무용지물이었고 그들의 취급에 노여움의 싹을, 그들의 판단에 경멸의 싹을 안겨주는 해로운 존재였다. 내가 만약 쾌활하고 명랑하고 태평스럽고 깐깐하고 귀엽게 생긴 장난꾸러기였다면 - 똑같은 군식구요, 사고무친의 처지라 하더라도 - 리드 부인은 좀 더 너그럽게 대해 주었을 터이고 그녀의 자녀들도 나를 같은 또래로 좀 더 후하게 대해 주었을 것이다. 하인들도 나를 육아실의 속죄양으로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일 결혼사기(-.-;;)를 당하고 로체스터를 떠나 제인에어가 홀로 황야에서 떠도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쩌면 '위화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삶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매완 말처럼 그녀는 사랑하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얻기 위해 저 자신을 가둔다거나 억지 웃음을 짓지는 않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슬퍼하며 황야를 떠돌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행복하고 편안해 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는 차라리 도마뱀이나 꿀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서 영원한 살 곳과 적당한 음식물을 찾을 수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었고 사람만이 가지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언제까지나 머뭇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방금 일어난 내 잠자리를 돌아보았다. 미래에 대한 아무 희망도 없이 나는 이것만을 원했다. (...) 생명은 모두 요구와 고통과 책임을 그냥 지닌 채로 아직도 나의 것이었다. 지워진 짐은 날라야 했다. 욕구는 충족되어져야 하고, 고난은 견디어야 하고 책임은 다해야했다. 나는 출발했다.

 

도마뱀이나 꿀벌이 되어 부족할 것 없을 것 같은 삶을 꿈꾸지만 역시 자신은 사람이고 사람만이 가지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시 한 걸음을 옮긴다는 겁니다. 고픈 배를 달래려 발을 떼고. 자신이 겪었던 불행한 사건들을 안은 채 또 발을 뗍니다. 두려워했던 것은 사실 이와같은 삶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불행도 배고픔도 고통도 기쁨도 스스로 감당하고 가는 것. 동정받는 고아이길 포기했을 때 그가 얻는 삶의 기쁨이자 고통같은 것일까요?.

 

 

2. 이렇게 연약하면서 이렇게 고집이 센

 

로체스터와 헤어지기 전 둘 사이에 있었던 마지막 대화 중 한 구절입니다.

제인에어의 특징을 정말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 "이렇게 연약하면서 이렇게 고집이 센 사람은 내 보다 처음이로군. 손에 쥐고 보면 갈대같이 밖엔 생각되지 않건만! (그는 세차게 나를 흔들었다.) 인지와 엄지손가락만 가지고도 꺾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꺾고 찢어발기고 깨뜨려 버린다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랴? 저 눈을 보라. 용기 이상의 것, 엄정한 승리감으로 내게 도전하며 저기에서 내다보고 있는 단호하고 격렬하고 자유로운 것을 보라. 가령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다 해도 그 옥 속에 든 것, 야성적이며 아름다운 생물에는 손이 닿지를 않아! 우리를 부수고, 약한 감옥을 깨뜨린다 해도 나의 폭행은 갇혀 있는 수인을 놓쳐버릴 뿐이야. 나는 그 집의 정복자가 될 수는 있지만, 내가 저 진흙으로 지은 집을 나의 소유라고 주장하기도 전에 그 주민은 천국으로 도망치고 말겠지.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오. 연약한 육체뿐만이 아니고 의지와 힘을 가지고 미덕과 순결을 갖추고 있는 당신의 정신이오. 당신으로 말하면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고 나에게 소리 없이 날아와서 내 가슴에 깃들 수 있소. 또 당신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붙잡힌다 하더라도 정기처럼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거요. 당신의 향기를 내가 들이마시기도 전에 당신은 사라져버릴 거요. 아, 내게로 와요, 제인, 어서!

 

기숙학교에 있을 때 한 학생의 곱슬머리를 빡빡 밀어버리라던 선생님을 보며 제인에어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마음속까진 간섭할 수 없다고.

가진 것 없고 정말 '갈대같이' 약한 여자인 제인에어이건만 누구도 그녀의 '정복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제인에어만이 아니지요. 손필드에 갇혀 있었던 로체스터의 미친 부인 역시 마침내는 불을 내 손필드 전체를 태우고 로체스터의 눈을 잃게했습니다.

 

<제인 에어>를 읽으면서 누구라도 어떤 처지에서라도 어떻게든 자유로워야 한다고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진 것은 애초에 별로 없었고, 겨우 얻은 것들도 한 순간에 잃을 수 있지만 반드시(!) 어떻게든 자유로워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속이는 일은 할 수가 없고. 설령 혼자 되더라도 설령 슬퍼지더라도 자기 영혼을 속이는 말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자기자신의 말을 해야 합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저 자신 밖에 없을 때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분노이고 "억울해! 억울해!하고 소리치는 것 말고는 달리 없을 때라도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비롯해 모두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일 때 조차도요.

제인에어는 그렇게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세상과 대면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수경샘은 책 시작 부분에 책에 관한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며 강조합니다.

<제인 에어>는 산보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말하기를

'그날은 산보가 가당치 않은 날씨였다. ~ 나는 그것이 기뻤다. 오랫동안 산보하는 것이 나는 싫었다.'

 

제인에어에게나 브론테에게나 살아간다는 것이 기분좋은 산보같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낭만적인 기분에 취해 있을 수 있던 날이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산보라기 보다는 차라리 황야. 산보를 나간다 해도 '산보가 가당치 않은 날씨'들을 만납니다.

저는 여전히 '산보'와도 같은 삶을 바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제인에어가 보여준 삶에도 어떤 감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 때도 읽었던 장면들인데 후기에 다시 정리해보았습니다.-..-

약간 제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군요-...-쩝쩝. 

다음의 내용들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 기존의 질서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억압된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다

-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자의 모습, 그 때의 두려움과 그 때 직면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제인에어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분투의 과정이다. 집안의 천사도 타락한 괴물(버사)도 아닌 제 3의 길을 가고 있다

 - 그래도 이 책에서 제인에어는 다시 로체스터와 맺어지는데요. 이 후 샬롯 브론테에의 작품에서는 이만큼의 해피엔딩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현실을 알아버렸던 것이다.-.-;;

 

 

어쨌거나 급하게 읽어서 아쉬운 책이니 다음 번에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싶습니다.

다음 시간은 낭금 '방울방울'편 마지막 날입니다.

이방인 열심히 읽고 또 풍성한 시간 보내봉앙요~